LG헬로비전 고객센터에서 케이블을 설치하다 숨진 간접고용 노동자 김도빈씨(45)가 그간 위험‧과중 업무환경에 시달린 사실이 알려졌지만 원청이 노동안전실태조사 제안에 답하지 않아 시민사회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비정규직지부와 노동건강연대는 8일 낮 2시 서울 용산구 LGU+ 본사 앞에서 LG헬로비전과 LGU+에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LGU+와 LG헬로비전은 고 김도빈 조합원이 원청의 과도한 업무할당과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으로 숨졌지만 사과도, 대화도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여전히 실적을 저울질하며 죽음의 경쟁으로 내몬다”고 비판했다.

LG헬로비전 부산 서부해운대고객센터에서 일하던 김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5시께 부산 해운대구 한 가정집 옥상에서 케이블을 설치하다 의식과 호흡을 잃은 채 발견됐다. 김씨는 고객에게 심폐소생술을 받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김씨는 생전 평균 30분에 1건, 하루 평균 14건의 방문작업을 할당 받았고, 홀로 작업했다. 노조와 유족은 산업재해를 신청할 예정이다.

▲이승환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정규직지부장이 8일 고 김도빈 조합원 추모 및 LG헬로비전-LGU+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을 감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승환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정규직지부장이 8일 서울 용산구 LGU+ 앞 '고 김도빈 조합원 추모 및 LG헬로비전-LGU+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을 감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LG헬로비전은 지난해 말 LG유플러스에 매각되기 전부터 LG헬로비전 고객센터에 실적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LG헬로비전이 매각을 기점으로 고객센터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기존 7%에서 3%로 줄였다. LG헬로비전은 케이블‧인터넷 유지와 설치‧수리 작업을 전국 34곳 하청업체(고객센터)에 외주화해 운영한다. 고객센터 노동자 급여는 원청이 하청에 지급하는 수수료에 따라 지급된다.

희망연대노조는 케이블‧인터넷 설치수리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하청 구조로 인한 비용절감 압박 탓에 저임금‧위험작업‧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고 지적해왔다. 1인작업과 낮은 인건비, 과도한 업무할당과 실적 압박 등이다.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정규직지부는 노조 결성 때부터 2인1조 업무 체제와 직접고용 등 안전대책과 처우개선을 원청에 요구해왔다. 김씨 죽음이 알려진 뒤엔 LG헬로비전과 LGU+에 노동안전실태조사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으나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 사고를 언론보도로 처음 접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건 쓰러진 고인을 고객이 발견해 심폐소생술했다는 대목이다. 곁에 한 사람의 노동자만 있었다면 제때 조치할 수 있었다”며 “케이블과 인터넷 설치수리가 위험작업임을 모두 안다. 2인1조란 명백한 해법이 있다. 위험과 예방책을 알고도 시행 않는 건 직무유기이자 과실치사”라고 했다.

▲8일 고 김도빈 조합원 추모 및 LG헬로비전-LGU+ 책임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고 김도빈 조합원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8일 '고 김도빈 조합원 추모 및 LG헬로비전-LGU+ 책임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고 김도빈 조합원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씨가 속했던 LG헬로비전비정규직지부의 이승환 지부장은 이날 “우리 설치수리노동자들은 아무런 장비 없이 20층 이상 아파트 지붕을 뛰어나고, 사다리도 제대로 지급 안 돼 담벼락을 맨손으로 기고 뛰어내리는 등 온갖 위험에 노출됐다. 게다가 원청의 지표 압박으로 30분 간격의 과중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모든 상황은 지금 같은 원하청구조에선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는 이날 LGU+와 LG헬로비전에 설치수리기사들의 안전대책을 단체협약에 보장하고 노동안전실태조사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LG유플러스에는 하청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LG헬로비전 측은 노동현장 실태조사 요구에 “고객센터와 논의해 현장상황을 점검하고 조속히 개선사항을 해결할 계획”라고 밝혔다. 하청에 지급하는 유지보수 수수료를 줄였다는 지적에는 “유지보수 수수료가 줄어든 건 맞지만 인센티브를 합치면 지급비용이 0.3% 늘었다”고 했다. LG유플러스 측은 “LG헬로비전에서 (대신) 연락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저녁 서울 마포구 LG헬로비전 상암본사와 부산 LG유플러스 초량사옥 앞에서 동시 추모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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