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신문에서 25여년 간 사진 리터칭 업무를 본 직원이 근무 중 갑자기 뇌출혈 증세를 보인 후 병원에서 사망한 가운데, 사인이 뚜렷히 밝혀지지 않아 유족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유족들은 “업무 연관성이 없을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망인의 업무량은 법상 과로 기준에 미치지 않았다.

광주매일신문 편집부에서 25년 넘게 일한 고 김정민씨(54)는 지난해 10월25일 조선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그는 5일 전인 20일 급성 뇌출혈로 응급실에 후송돼 당일 수술을 두 차례 연달아 받았으나 수술 직후 뇌사에 빠졌다. 가망이 없을 수 있다는 의료진 말에 가족들은 25일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뇌출혈 증세는 갑자기 발견됐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일 오후 1시께 김씨가 출근할 땐 편집부 직원 누구도 이상 증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창 사진 리터칭 작업을 하던 오후 4시30분 그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사진부장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김씨가 지시에 대답은 하지 않고 멀뚱히 쳐다만 보는 등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사진부장이 편집부장을 김씨에게 데리고 가 ‘어디 아프냐’ ‘119를 부르겠느냐’ 물었으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한 쪽으로 돌아간 김씨 입을 봤고 이후 119를 불렀다. 처음엔 전남대 병원에 이송됐으나 수술실이 없다는 답을 듣고 조선대 응급실로 옮겨졌다. 김씨는 저녁 6시30분 첫 수술을 했으나 지혈이 채 되지 않아 21일 새벽 1시에 연이어 수술을 받고 뇌사에 빠졌다.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평소 특별한 지병이 없었기에 가족들은 혼란스러웠다. 김씨의 딸 A씨는 “간 쪽이 조금 안 좋긴 했지만 그것 외엔 고혈압 등의 지병은 없었다”며 “왜 돌아가셨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도 정말 궁금하다”고 토로했다.

가족들은 김씨가 평소 집 안에서 직장 얘길 자주 하지 않아 그의 기본적인 업무 환경도 추측하기 어려웠다. 김씨의 매제 B씨는 김씨가 쓰러지기 전날 술자리에서 그의 한숨 섞인 토로를 들었다. B씨는 ‘힘들다’ ‘회사가 부수 확장을 해서 구독자를 늘려야 한다’ ‘3부를 확장했는데 부족하다. 이번에 승진도 될 것 같은데 2개라도 늘리면 마음이 편하겠다’ 등의 말을 들었다. B씨는 이에 “우리 사무실과 집에 1부씩 구독해주겠다”고 답했다.

회사 측 설명은 온도 차가 있었다. 회사가 유족에 제출한 근무 자료를 보면 김씨는 오후 1시~1시30분께 출근해 저녁 7시까지 매일 6시간 가량 주 5일 일했다. 김씨는 20개 지면의 사진 리터치를 모두 맡았고 1개면 편집도 추가로 했다. 리터치는 사진부장이 지정한 사진을 트리밍, 색보정하고 RGB 형식의 사진을 인쇄용인 CMYK 형식으로 변환하는 일이다. 한 광주매일신문 관계자는 “내근직은 부수 확장에 특별히 성과 압력은 없는 편으로, 매년 1~3부 확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업무를 하나 더 맡기도 했다. 지면 기사를 인터넷 기사로 송출하는 하는 편집 업무였다. 전산부 직원의 업무이지만 이 직원이 휴가를 갈 경우 대체할 인력이 없어 김씨가 이 일을 맡게 됐다. 회사는 유족 측에 “김씨 일은 1인이 전담하는 업무로 사진의 질적 관리가 중요해 성과 압력은 없는 편이고 승진도 공헌도나 성과를 직접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역 편집부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예로 하루 28~34면을 내는 한 전국 종합지 경우 리터치 작업자가 4명이지만 광주매일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지는 1명만 두고 있다. 전북 대형 일간지 편집부에서 일해본 C씨는 “업무 강도는 회사마다, 상황마다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지역지들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 맞다. 편집기자가 통상 2면씩 맡는다면 4면을 할당하는 회사도 봤다”고 말했다.

A씨는 이밖에 “성격 자체가 남한테 싫은 소리 안 듣고 싶어해 일 하나에도 끙끙 앓는 결벽증같은 점이 있다”며 “휴가를 가더라도, 리터치 작업자가 본인 혼자니 회사에서 급히 호출하면 다시 출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휴가 22일 중 7일을 사용했다. 회사는 김씨 업무를 전반적으로 중상이었다고 평했다.

김씨는 이상 증세를 보이기 30분 전 딸 A씨와 카카오톡 채팅을 했다. 1살 난 손녀를 지극히 귀여워한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A씨 집에 가 아이를 봐줬다. A씨가 아이와 외출하는 사진을 보고 ‘좋겠다’고 남긴 카톡이 그와 가족의 마지막 대화다. 유족은 관련 상황을 최대한 조사해 산재 신청을 할 예정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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