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유해‧위험물질 등 산업안전과 직결된 정보의 공개를 사실상 금지해 논란이 이는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내달 시행을 앞두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산업현장에 미칠 영향은 광범위한데 국회 임기 내 개선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 노동‧시민사회단체 우려가 크다. 시민단체들은 헌법소원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해 8월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를 이유 불문 공개 금지하고,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는 알게 된 목적 외에 사용하면 처벌토록 한 것이 골자다. “공공기관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9조의 2)”는 규정과 “(누구든지) 적법한 경로를 통하여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그 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14조8호)”를 금한 규정이다.

이중 14조8호의 경우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유출이 우려되면 기업이 수사기관에 조사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법은 내달 21일 시행에 들어간다.

법개정 사실은 지난해 9월 삼성 측이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해당 내용을 들고 나오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찬성 의원 206명, 기권 4명, 반대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곽대훈‧윤한홍‧윤영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2018년 차례로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뒤, 대일 무역분쟁이 불거진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이들 내용을 종합하며 낸 대안이 통과했다.

▲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가 7일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발전비정규직 노동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가 7일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발전비정규직 노동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유해‧위험 작업환경을 확인하고 알리는 과정에 미칠 영향은 지대하다. 국가핵심기술이나 산업기술 관련 정보의 공개를 원천 금지하는 성격으로, 산업기술 유출 방지를 명분으로 하지만 실상 노동자·시민 안전과 생명 관련 정보 공개를 막는 용도란 지적이 나온다.

이상수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는 “반도체 식각과 세척 등 일반 공정에 흔히 쓰이는 재료가 산업기술로 지정돼 있는 등 산업기술의 정의는 광범위하다”고 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반도체제조 외에 자동차‧조선‧전력‧의료 등 33개 산업분야의 3000여개 기술이 산업기술로 지정돼 있다. 국가핵심기술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69개 기술이 여기 해당된다.

이상수 활동가는 “노동자들은 반도체회로를 찍고 녹여내는 포토공정에서 백혈병을 걸리게 할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발생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뜨거운 오븐 뚜껑을 열면 확 끼쳐오는 납 비린내가 자신을 뇌종양에 걸리게 한다는 걸 몰랐다. 제품검사 설비에서 엑스레이를 사용하면서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배운 적 없다”며 “개정법은 이처럼 작업장 위험을 알리는 활동을 겨냥한다”고 했다.

반올림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 11월 국회의원실 전체에 각각 의견서를 보내 법안 표결 당시 쟁점을 알았는지 여부와 개선 의지를 물었다. 답변한 의원실 대다수가 당시 법안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반올림은 김종훈 민중당 의원실이 서면답변으로, 정의당 측이 구두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문제점이 알려진 뒤 개정 내용을 일부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정보공개를 금지한 조항 자체는 그대로인 데다, 사실상 마무리 단계인 20대 국회 임기 내 통과도 어려워 보인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의안은 정보를 취득목적 외 용도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에 예외 단서를 달았다. “산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다. 오민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부정한 수단뿐 아니라 적법한 경로로 얻은 정보까지 사용을 금지해 문제인데,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고 단서가 붙었다. 정부 기관이나 법원 판단에 해석을 맡긴 점도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국가핵심기술’ 공개를 목적과 무관하게 금지한 조항도 여전하다.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인권운동더하기, 민변 등 노동·시민사회·법률단체들은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인권운동더하기, 민변 등 노동·시민사회·법률단체들은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반올림과 인권운동더하기, 민변 등 노동·시민사회·법률단체들은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는 이 자리에서 “발전소에 있는 현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영상들, 자료들을 언론에 공개했다. 현장에는 결정형 유리규산과 비소, 분진 등 1급 발암물질과 유해물질이 가득했다”며 “산업기술보호법이 통과된 뒤 이런 자료들을 공개해, 현장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은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개정입법 운동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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