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강력하게 도입을 촉구한 ‘실검조작 금지법’이 매크로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여야가 잠정 합의했다. 한국당은 여론조작 처벌이 힘들다며 불만이지만 학계, 시민사회, 업계 등은 과도한 입법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달 30일 회의를 열고 실검 조작 방지법에 잠정 합의했다. 최종 검토 후 다음 법안심사소위 때 의결할 계획이다. 다만 현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대치 국면, 미국 CES 행사가 이어지면서 다음 법안소위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실검조작 방지법’은 4가지가 골자다. 첫째,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자가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화 처리하는 프로그램(매크로)을 활용한 정보통신서비스 내 조작을 금지한다. 둘째, 일정 규모 이상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서비스가 조작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셋째, 타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한 서비스 조작을 금지한다. 넷째,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를 쓰는 등 서비스를 조작한 이용자를 처벌한다.

즉, 법이 통과되면 이용자가 포털에서 ‘부당한 이익’을 위한 목적의 매크로 사용 등을 통해 실시간 검색어를 만들거나 댓글을 쓰는 행위가 금지된다.

▲ 드루킹 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매크로 규제'법이 조국 전 장관 '실검' 논란을 거쳐 다시 고개를 들었다. ⓒ gettyimagesbank
▲ 드루킹 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매크로 규제'법이 조국 전 장관 '실검' 논란을 거쳐 다시 고개를 들었다. ⓒ gettyimagesbank

매크로를 활용한 댓글 등을 규제하는 관련 법안들은 ‘드루킹’ 논란 이후 정치공세성 법안으로 등장했으나 이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증 국면 때 ‘조국 힘내세요’ ‘나경원 자녀의혹’ 등 실검이 나오자 자유한국당이 실검 규제 카드를 꺼내들면서 관련 법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초 관련 법안 통과가 불투명했지만 정부여당이 ‘소프트웨어 산업 진흥법’ 통과를 바라는 상황에서 한국당이 실검법 통과를 연계해 요구하면서 협상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은 ‘조국 힘내세요’와 같은 실검을 규제해야 한다며 ‘여론형성’ 등을 목적으로 한 실검을 처벌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간사 등이 ‘여론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준이 분명치 않아 과도한 규제가 나올 수 있다며 반발한 끝에 ‘여론’과 관련한 표현은 제외했다. 대신 ‘부당한 목적’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 지난해 9월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미디어특별위원들이 네이버에 항의 방문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해 9월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미디어특별위원들이 네이버에 항의 방문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한국당안대로 합의됐다면 시민들의 자발적 실검도 여론조작으로 규정돼 금지될 가능성이 높았다. 잠정 합의안은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줄였으나 매크로 전반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 시민사회, 기업 등이 우려하고 있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부당한 목적’은 매우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이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용어로 사용될 수 없고, ‘서비스 조작’ 행위가 무엇인지도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며 “헌법상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등에 반해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등을 침해할 위헌 소지가 높다”고 비판했다.

사업자들도 반발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을 회원사로 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협회)는 반대 성명을 냈다. 협회는 “인터넷기업도 다각도의 대응을 하면서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선한다”면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관련 의무가 부과된다면 ‘부당한 목적’이라는 행위자 내심의 의사에 대한 판단 책임을 사법기관이 아닌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당한 목적’이란 모호한 잣대로 사업자를 강제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드루킹 논란 이후 매크로가 범죄처럼 인식되지만 매크로는 수작업을 기계가 대체하는 일반적 기술이다. 협회는 “가치중립적 기술을 일방으로 범죄 도구로 낙인찍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관련 서비스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인터넷산업 전반에 부작용이 우려되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계도 20대 국회의 매크로 법안 전반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언론학회 언론법제윤리연구회, 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는 지난달 17일 20대 국회 인터넷 표현규제 법안을 평가했는데 ‘매크로’ 관련 법안 7건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들은 매크로 행위가 사업자 입장에서 영업방해 소지가 있긴 하나 그 자체를 불법으로 보기 힘든데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한 내용이 많다고 짚었다. 

한편 사업자들은 ‘실검’ 논란이 이어지자 실검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다. 카카오는 실검을 오는 2월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버는 이용자 연령대별로 다른 실검을 보거나, 과도한 마케팅 실검을 차단하는 등의 서비스 개편을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