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 협의체를 만들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기자회견이 6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피해자 소송지원단 등이 주최한 한국측 기자회견은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회견장은 양국 취재진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제안된 한일 공동 협의체 구성은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변호사와 지원자, 한일 양국 변호사, 학자, 경제계 관계자, 정치계 관계자 등이다. 협의체 목적은 강제동원 전체의 해결구상을 ‘일정 기간’에 제안하는 것으로, 한일 양국 정부는 이 협의체 활동을 지원하고 협의안을 존중해야 한다.

협의체 제안에는 한국측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변호사 34인)과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지원단(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 참여했다. 일본에선 변호사 10인과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의 모임 나가사키,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 보상입법을 향한 한일공동행동, 히로시마의 강제연행을 조사하는 모임, 일본제철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는 네트워크 홋카이도, 가와사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모임 등 7개 단체가 참여했다.

▲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피해자 원고 측 해결구상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과 일본 언론인들. ⓒ연합뉴스
▲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피해자 원고 측 해결구상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과 일본 언론인들. ⓒ연합뉴스

이들은 ‘노무강제동원 문제’의 진정한 해결 방향으로 △가해자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 △사죄의 증거로 배상 △사실과 교훈이 다음 세대에 계승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법원은 결론적으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지만 원고들 피해가 강제연행, 강제노동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라고 인정했다. 이렇게 한일 양국 법원 모두 인정한 인권침해 사실을 일본정부와 일본기업이 받아들이고 사죄하는 것이 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돼야만 한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문제에 노무강제동원 문제(이른바 ‘징용공’) 외에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된 피해자의 권리구제 문제도 포함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해국 일본 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봤다. 우선 일본의 경우 1939년~1945년 노무동원계획을 기획한 정부, 피해자 연행에 관여해 탄광·공장 등에서 피해자들에게 노동을 시킨 가해기업들이 1차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에는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후 피해자 권리구제를 소홀히 한 도의적 책임이 제기됐다. 한국기업 가운데 한일청구권협정(제1조 경제협력)에 근거해 발전해온 ‘수혜기업’ 역시 과거 역사를 성실하게 마주하고 문제 해결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대리인 중 한명인 이상갑 변호사는 “최근 아베 정부에서 다르게 해석하는 주장이 나오긴 하지만, 그간 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정부 입장은 ‘외교적 보호권만 소멸하고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은 남아있다는 해석”이라며 “두 나라 정부의 해석이나 사법부 판단에 공통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부가 보여온 일련의 주장·입장에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기존에 마련된 기자석이 부족해 곳곳에 추가 좌석이 마련됐지만 자리를 잡지 못해 입구를 서성이거나, 바닥에 주저앉는 기자들도 다수였다. 20여분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주로 일본 언론매체 기자들이 참여했다. 첫 질문기회를 얻은 한겨레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질문자가 일본 매체 소속이었다.

▲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피해자 원고 측 해결구상 발표 기자회견. 사진=노지민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피해자 원고 측 해결구상 발표 기자회견. 사진=노지민 기자

아사히신문 기자는 “협의를 하자면서도 기본적으로 (일본 측의) 사죄와 배상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보 가능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대리인단 임재성 변호사는 “이번 안은 한국·일본 시민사회단체와 법률가들이 머리를 맞댄 안이라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사실 인정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원칙을 만들었다”며 “일본정부가 말하는 청구권협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늘 제시한 안과 관련해 한국 정부·여당 관계자와 협의된 부분이 있느냐”는 니혼TV 기자 질문에는 “관련 협의가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밖에 ‘중국 모델’과 한일 협의체 제안 방식의 차이, ‘피고’가 된 일본 기업이 협의체에 참여하도록 규정했는지 여부 등 질문이 이어졌다.

소송지원단 관계자들은 일본 언론을 향해 일본 사회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회를 맡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 미쓰비시 패소 판결 이후 당사자가 전혀 나서거나 응답하지 않고 한국 사법부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에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사법부 판결을 1년 이상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이 자리에 오신 (일본 매체) 특파원 여러분께서 열심히 써 달라. 일본 기업들 인터뷰도 좀 부탁드린다”고 했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한 송달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아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실장은 이와 관련해서도 “일본 외무성이 (기업에) 송달을 안 해주고 있다고 한다. 너무하지 않은가. 일본 기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

이 변호사는 “오늘 제안은 그동안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한 단체와 대리인이 중심이지만 일본 사회의 양식 있는 분들이 제안한 내용을 토대로 일본 사회 내의 공감대를 마련하고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전한 뒤 “한국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이견 해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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