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고찬수 KBS PD의 고민은 ‘기존에 방송을 만들어왔던 PD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였다. 

1968년 대전 출생으로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KBS 예능PD로 입사한 그는 MCN(Multi Channel Network) 사업팀장을 맡으며 웹드라마 프로젝트와 KBS MCN ‘예띠스튜디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업계 뉴미디어 전문가로 알려졌다. 2018년에는 책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을 펴냈다. 그는 스마트폰 이전 세대, 지상파 독과점시대에 연출해온 PD들이 스마트폰 등장 이후 입사한 PD들처럼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해보니까 안 되더라.” 

실패의 경험이 그에게 남긴 것은 “변화를 좇지 말고 선도하자”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전면적인 메시지다. “선배 그룹이 미래 콘텐츠산업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3일 만난 고찬수 신임 한국PD연합회장의 취임 첫 목표는 ‘인공지능과 친해지기’다. 지금까지 쌓인 PD들의 노하우가 AI와 이어지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후배 그룹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시청률 하락에 경영까지 위기다. 이럴 때일수록 현실에 매몰돼있으면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딥페이크 기술의 위험성만 기사로 접했지만 PD의 상상력에 따라 기술은 보물이 된 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예컨대 영국에선 지난해 4월 데이비드 베컴의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 영상을 중국어·아랍어·힌디어·스와힐리어·요루바어(나이지리아, 토고 지역 아프리카 언어) 등 9개 언어로 더빙하는 데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했다. 고찬수 회장은 “BBC도 인공지능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며 “앞으로 미디어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기반기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임기 중 인공지능과 PD들 간의 접점을 만들며 선도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고찬수 신임 한국PD연합회장. ⓒ고찬수 제공
▲고찬수 신임 한국PD연합회장. ⓒ고찬수 제공

또 다른 그의 중요 관심사는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 등에서 논의 중인 ‘미디어개혁’이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가 OTT 등이 등장한 미디어환경을 감안한 대대적인 방송제도 개선을 총선 이후로 예고한 상황에서 PD연합회가 영상산업과 관련한 제도변화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겠다는 것. 이 가운데서도 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시행 중인 콘텐츠진흥기금으로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고찬수 회장은 “과거 지상파 독과점 체제에서 면허세 개념으로 운영되던 현 방송발전기금을 변화된 미디어환경에 맞게 콘텐츠진흥기금으로 변경·확대해야 한다”며 “통신3사와 네이버·구글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 CJENM과 같은 거대 PP사업자는 콘텐츠진흥기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회장은 “이제 지상파 재원은 위기에 놓였고 콘텐츠 흐름은 방송에서 통신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콘텐츠의 득을 보는 모든 사업자가 콘텐츠산업 전체를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기금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콘텐츠로 적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는 IPTV 업계와 CJ 같은 거대 PP 사업자들은 콘텐츠진흥에 대한 공적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미래 콘텐츠산업을 선도할 곳일수록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넷플릭스 같은 해외 OTT사업자들도 자율적으로 한국 콘텐츠 육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찬수 회장은 종합편성채널·케이블TV PD들의 연합회 가입에 ‘열린’ 입장이다. 고 회장은 “그동안은 종편에 대해 역사적으로 가져온 반대 흐름에 의해 가입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이미 2년 전부터 가입을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 MBN PD들이 가입했다”며 “다른 종편 PD들도 의사가 있으면 적극 가입을 유도할 생각이지만 오히려 종편 PD들이 고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TV조선·채널A·JTBC에는 PD협회가 없다. 고 회장은 “나영석PD가 지금 협회원은 아니지만, 본인이 원하면 가입할 수 있다고 본다. 다 같이 PD로 일하는 사이”라고 했다. 

고찬수 회장은 특히 CJENM 소속 PD들이 협회에 가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벌어진 ‘프로듀스101’ 시리즈 조작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고 회장은 “CJ 입장에서 노조나 협회 같은 단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tvN이나 Mnet도 지상파처럼 영향력이 있는 만큼 공적 기능과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PD연합회와 같은 단체 활동이 필요하다. 협회가 있었다면 이 정도의 조작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 회장은 CJENM 조작 사태를 가리켜 “있어선 안 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말해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하며 “왜 저렇게까지 무리했는지 의문이다. PD의 욕심이 지나쳤던 부분도 있겠지만 제작문화의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 회장은 “시청률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었을 때, 직업윤리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잡아줄 수 있는 내부 장치가 필요하다”며 “CJENM에서 협회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아래에서부터 제작문화를 바꾸고 자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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