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서 ‘입법공백’, ‘법적공백’ 등이 문제라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배(헌법불합치)되는 법률들을 개정하라고 준 시한을 국회가 어기면서, 법적 효력 자체가 사라지는 법률들이 생겨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여기에 포함돼, 당장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폭력 집회를 처벌하지 못하게 됐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집회·시위 장소를 제한하지 않으면 폭력이 생긴다는 시각은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 취지와 어긋난다.

우선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을 보자. 헌재는 지난해 국회의사당(5월31일), 국무총리 공관(6월28일), 법원(7월26일) 인근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를 2019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했다. 이 기관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은 인정하지만, 각 기관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집회까지 전면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취지다. 헌재는 집회의 자유를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하려면 어떤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할지 등을 국회가 정해서 법을 만들라고 했다. 각 기관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하지 말라는 집시법 조항은 지난 1일부터 법적 효력, 즉 위반 시 처벌 근거가 사라졌다.

이후 ‘입법 공백’을 우려하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특히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 안팎에서 벌인 집회·시위가 ‘폭력사태 선례’로 언급됐다. 지난달 18일 JTBC 뉴스룸 기사는 “2주 뒤부터 집시법 ‘공백’…국회 폭력집회 처벌 어려워”라는 제목을 달았다. 손석희 앵커는 “국회 안에서 일어난 폭력 집회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현행 집시법이다. 그런데 작년에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인해서, 이 집시법이 당장 내년부터 효력이 없어진다. 그제(16일) 같은 폭력 시위를 막을 수 있는 대체 입법이 필요한데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며 리포트를 소개했다. 리포트 영상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회 경내에 진입해 과격하게 진행한 집회 장면으로 시작됐다.

▲ 지난달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 지난달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3일자 한국경제 기사(효력 잃은 ‘국회 100m내 집회금지법’)도 “지난달 16일 국회 본관 앞에서 보수단체 및 보수정당 지지자 수천 명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이날 국회 본관 입구가 폐쇄됐고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을 고발했다. 경찰은 영등포경찰서에 전담팀을 꾸려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작년 4월에는 국회 주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내에 침입해 재판에 넘겨졌다”고 전했다.

집회·시위 금지 장소 제한이 없으면 ‘폭력집회’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전제는 성립하기 어렵다. 현행 집시법에 따라 집단적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 안녕·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는 주최할 수 없으며, 신고서가 접수됐더라도 경찰이 이를 금지할 수 있다. 확성기 등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소음을 발생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를 휴대·사용하는 것 또한 금하고 있다. 명백한 폭력행위는 집시법이 아닌 기타 법률로 처벌할 수 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집회를 이유로 한국당을 고발한 사유엔 집시법 뿐 아니라 특수공무집행방해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특수재물손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이 적시됐다. 앞서 정의당도 한국당 측을 모욕, 특수폭행, 특수상해, 재물손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가 행해지는 일정한 경우에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집시법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집회의 성격과 양상에 따른 다양한 규제수단들을 규정하고 있다.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행위나 업무방해행위 등은 형사법상의 범죄행위로서 처벌된다”며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옥외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수단들을 통하여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려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단지 폭력적·불법적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일률적·절대적 옥외집회의 금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라 밝혔다.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다만 헌재 결정이 국회, 법원, 총리공관 등 경내 집회·시위를 전부 허용하라는 취지가 아닌 데다, 명확한 대응 원칙이 없으면 혼선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일자 한국일보(국회 100m 이내서 시위 가능해져…속 타는 경찰)는 “경찰 내부에선 새해부터 국회 주변이 새로운 시위 격전지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국회 경계에서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도 집회 시위가 가능해지면 더는 기존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어려워진다. 당장 국회 담장 바로 앞에서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국회 안에서 시위를 하진 못한다 해도 사실상 국회 지근거리서 시위를 하는 게 가능해지는 만큼 자칫 흥분한 시위대가 국회 담장을 넘는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오민애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경찰과 같은 ‘관리’자들이 집회·시위를 관리나 통제 대상으로 본다면 (장소 금지 규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집회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11조 폐지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경내 행위들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 소유일지라도 경찰에 시설 보호 요청 등을 할 수 있다. 국회나 법원 등은 일반인들에게 아무 요건 없이 개방된 곳이 아니고 출입이 어느 정도 제한된 곳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찰이 사전에 일률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신고를) 검토해 허용해야만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며 “집시법 규정을 둬야만 규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 지난 2013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가 국회 앞 100m 이내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개최한 '국회를 시민 품으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집시법 개정과 국회 시설의 자유로운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013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가 국회 앞 100m 이내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개최한 '국회를 시민 품으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집시법 개정과 국회 시설의 자유로운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시민단체들은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과 장소, 방법, 내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없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집시법 11조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해 헌재 결정 이후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은 “집회를 통해 의사를 전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는 곳, 집회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발생한 곳 등 참가자들의 효과적인 의사표현을 위해 집회 장소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집회 장소는 집회의 목적 달성과 맞닿아 있다”며 “국회와 법원 등은 사회 구성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그 어떤 장소보다 치열하게 여론이 형성돼야 하는 곳이다. 국회의 의결과 법원의 판결도 입법·사법 권력을 위임한 시민들이 있기에 가능한데, 시민들의 목소리로부터 분리된 국회와 법원이 시민들을 위한 판단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 헌재 결정을 전후해 11조를 전면 폐지하는 안(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예외장소에서 국회의사당(권칠승 더불어민주당)과 국무총리공관을 삭제하는 안(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국회 금지를 삭제하고 총리공관 집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안(김삼화 바른미래당), 법원을 삭제하는 안(송갑석 더불어민주당),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삭제하되 일부 제한규정을 두는 안(유동수,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등이 발의됐으나 모두 계류 중이다. 오 변호사는 “정부가 바뀌기 전에는 민중 단위 주최 집회를, 지금은 청와대·국회 등 앞에서의 집회를 폭력적이고 시끄럽게 보는 인상이 있는 것 같다”며 “법안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양상 만을 갖고 상황을 평가하다보니 더 우려 중심으로 (보도가) 나오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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