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일하던 청년이 지난달 동료에게 사과 글을 남기고 숨지자 ‘중증장애인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에 비판 목소리가 높다. 중증장애인 특성과 필요에 맞춘 취업지원으로 전문성을 살린다는 목적과 달리, 저임금‧실적제가 종사자들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내몬다는 지적이다. 목표실적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발표에도 우려는 여전하다.

전남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로 일하던 설요한씨(25)가 지난달 5일 숨졌다. 그는 전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설씨는 지난해 4월부터 센터에서 장기 실직자인 장애인을 찾아내 취업상담‧지원하는 동료지원가로 일했다. 동료지원가는 한 달에 참여자 4명을 발굴해 각각 5번 만나 상담하고, 사업비에서 월 66만원 정도를 지급 받는다.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일자리사업’이다.

동료지원가들은 저임금‧고강도 노동과 실적 부담이 설씨를 업무 스트레스로 내몰았다고 지적한다. 노동부는 동료지원가가 하루 3시간, 월 60시간 상담한다고 간주하지만, 이들은 현장에서 여러 역할을 떠맡는다. 참여자격에 드는 장애인을 찾아야 한다. 상담할 땐 개인 비용을 들여 참여자를 직접 방문한다. 상담 앞뒤로 행정사무 처리도 한다. 이렇게 일을 해도 1명 당 5번이란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센터가 받았던 1인당 사업비를 토해내야 한다. 이는 다음달 목표실적에 더해 5회분을 채워야 하는 부담과 센터에 대한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 고용노동부가 책임져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명호 장애인노조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 고용노동부가 책임져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명호 장애인노조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동료지원가 박종희씨는 “참여할 중증장애인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하루하루 미칠 것 같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서류 작업이 많아 밤 12시까지 했다. 설요한 씨의 죽음을 생각하자면, 나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불 꺼진 사무실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노동부는 올해부터 목표실적 건수를 월 1.6명 꼴로 줄인다고 밝혔지만 당사자들은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내모는 구조는 그대로라고 반박한다.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인건비를 도로 반납하도록 하는 데다 이마저 저임금이다. 동료지원가들은 노동부가 지원비에 인건비 고정 항목을 따로 책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장애인노조지부는 노동부가 설씨 죽음에 사과하고 산업재해로 인정받도록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또 현장실태 전수조사한 뒤 취업지원 사업을 재설계하라고 요구했다. 정명호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은 “지금의 취업지원 사업은 중증장애인의 속도에 맞춘 일자리도, 몸에 맞는 강도의 노동도 아니다. 설 동지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 탓에 숨졌다”며 “장애인 속도와 노동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맞춤형으로 고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 고용노동부가 책임져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 고용노동부가 책임져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동부 장애인고용과 관계자는 이날 기자회견을 두고 “실적 위주가 아닌 인건비 차원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 재정당국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개선 논의는 계속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노동부가 현장과 동떨어진 설계한 책임을 인정하고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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