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오전 청와대 기자실.
박지원 청와대 공보수석과 영남지역 언론사 청와대 출입기자들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날 박 수석은 브리핑 도중 영남지역 언론사들의 지역감정 자극 문제를 거론했다.

박 수석은 “일부 영남 지역 신문이 광주 롯데백화점 개점 당시 사은품을 나눠준 것을 마치 호남은 호황이고 영남은 불황인 것의 대표적인 사례인양 보도했다”며 이를 비판했다.
이와 관련 한 영남지역 언론사 기자가 “증거가 있느냐”고 날이 선 질문을 던졌고 박 수석은 “해당 언론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서 해프닝 차원에서 끝났다.

비단 이날의 해프닝이 아니더라도 청와대 공보파트의 영남 지역 언론 보도를 보는 시각은 극히 비판적이다. 해당 지역 언론사기자들은 “증거도 없이 몰아부친다”며 볼멘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시각 차이는 여전하다.

박 수석은 최근들어 중부권, 영남권 편집, 보도국장단과 잇달아 간담회를 갖고 “지역 언론의 지역감정 보도가 위험수위에 달했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쟁점이 있을때마다 각 지역신문의 입장이 극도로 엇갈린다”며 “특히 영남 지역 언론보도의 경우 사실 왜곡 양상까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측은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했다.

가령 매일신문 98년 4월 22일자 1면 기사의 경우 대구지역에 대한 실업기금 지원이 형편없이 낮다고 비판했지만 금액이 부정확한, 의도가 짙은 기사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국제신문 7월 24일자(<정부 푸대접 ‘부산시 속탄다’>), 부산일보 4월 30일자(<대통령 지방순시 논란>) 1면 머릿기사를 대표적인 지역 감정 자극 보도 사례로 들었다. 대통령 지방순시 논란의 경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대구 지역 방문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했다.

경제청문회-인사차별 등 지역이기주의 보도 기승


실제로 최근들어 영남 지역 언론은 물론 호남 지역 언론 등 전국적인 차원에서 지역 언론의 ‘지역이기주의성’ 보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권의 쟁점 사항에 대한 시각차이도 판이하고 ‘아전인수식’ 해석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청문회 개최와 지역편중인사를 보는 시각.
지난 1월 12일 김세옥 경찰청장의 경질을 계기로 쟁점으로 급부상한 ‘지역 편중 인사 논란’의 경우 호남 지역 언론은 일제히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이에 비해 영남지역 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역 편중 인사 시정 지시를 아예 묵살 하는등 낮은 관심을 보여 대조를 보였다.

광주일보는 1월 13일자 1면 머릿기사를 통해 <호남 역차별 우려 높다>고 비판했다.
3면 와이드 해설까지 게재한 광주일보는 호남 출신들에 대한 ‘특혜’는 받아서도 안되지만 또 다시 멍에가 되어 불이익을 당해서는 더더욱 안된다고 강조했다.

무등일보도 1면 박스를 통해 “일부 세력들의 ‘호남 편중인사’ 왜곡 선전”을 비판하고 ‘호남 역차별’ 빌미를 줄 가능성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북일보도 마찬가지. 전북일보는 14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 <호남인사 역차별 우려>를 다루고 “최근의 정치권 움직임이 호남 인맥을 인위적으로 물갈이하는 역차별 인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남 지역언론들의 경우 김 대통령의 발언을 연합뉴스발로 그대로 받는 형태를 취하는 등 기사 비중을 별반 두지 않았다. 기사 죽이기는 부산 지역 보단 대구지역 언론에서 더욱 심했다.한 신문의 경우 아예 관련 기사를 다루지도 않았다.

경제청문회 보도도 명확히 입장이 갈렸다. 단적으로 1월 18, 19일자 광주일보와 대구광역일보의 1면 머릿기사를 보자. 이날 광주일보는 1면을 통해 <환란 책임 규명 ‘경제청문회’ 돌입>이란 제목을 달았다.

광주일보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경제청문회에 접근한 반면 대구광역일보는 <“당리당략 반쪽 청문회”>라며 경제청문회를 평가절하했다. 시민단체와 시민들 반응을 소개하는 형식인 이 기사는 경제청문회 개최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매일신문은 1월 17일 <청문회, 단독은 안된다>며 야당이 참여하지 않는 경제청문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여야 타협을 촉구했으나 이 과정에서 “내각제 논의를 현재의 경제 사정을 이유로 연기한다고 하면 청문회 또한 경제에 주는 충격이 크므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케 하기도 했다.

지역 신문의 지역 이기주의 현상은 단순히 정치적 쟁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역 현안 보도에서도 뚜렷히 드러난다. 지난 1월 21일 전라매일은 1면을 통해 <영남 경제력이 호남의 3배>란 제목으로 국민회의 지방자치협의회 비교분석 결과를 보도했다.

‘호·영남 경제 통계’를 비교한 결과 호남이 인구는 물론 제조업체수, 경제활동 인구면에서 영남에 한참 밀린다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특히 영남이 5배 가까운 고용인구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호남의 2.7%에 불과하다며 호남의 실업고통이 상대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도에 대한 응답은 1월 23일자 국제신문에서 읽혀진다. 국제신문은 이날 부산실업률이 ‘두자릿수’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통계청 고용동향 조사를 인용한 이 보도는 전국 평균이 7.9%인데 반해 부산 실업률은 12월들어 10.1%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지역에 따라 실업률을 보는 시각이 천양지차인 셈이다.


‘호남호황설’ 등 잇단 파문에 청와대서도 이례적 우려표명


최근에는 ‘호남 호황설’과 관련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주매일은 1월 22일 사설 <‘호남호황설’ 누가 악용하나>를 통해 “최근들어 영남지역에 터무니 없는 악성 유언비어가 확산돼 지역감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낄 정도라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광주지역에서는 경기호전으로 언론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데 이르면 기가 막힌다. 소문은 무성했으나 정식 창간된 신문은 1개사에 그쳤고, 언론경영 여건의 열악성이나 비리언론인에 대한 단속실태는 이미 공개된지 오래다. 광고수주가 늘어 신문사가 과실을 거둔다는 것은 교활한 거짓말이다”고 밝혔다. 전남일보도 1월 21일 1면 기사를 통해 <터무니없는 ‘호남 호황설’>을 공박했다.

전체적으로 호남 지역 언론사를 보면 “억울해 못 살겠다”는 식이고 영남 지역 언론은 “왜 우리만 이렇게 당해야 하느냐”는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 영호남을 벗어난 다른 지역 언론도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를 내 보내고 있다. 대전매일은 1월 22일 충남도를 질타하는 비판 기사를 게재했다.

“군산시는 군산공단 수출자유 지역 지정의견을 공식 건의했는데 군산과 동일단지인 장항단지가 자리한 충남도와 서천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역언론이 기본 책무 가운데 하나인 지방행정을 감시·비판한다는 점에서 성립 요건이 충분한 기사였으나 문제는 지역 대결 구도를 심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데 있다. 이 신문은 부제를 통해 ‘지역개발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데’란 표현을 사용했다.

지역 언론은 지역 여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지역 여론은 가장 중요한 편집 기준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지역 여론이 해당 신문사의 경영 전략 등과 연결되면서 지역 감정을 더욱 자극하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

서울지사에 근무하는 한 영남지역 언론사 기자는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정권 교체 초기 위로부터 현정권 실정을 지적하는 식의 기사를 많이 보내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호남지역의 한 언론사 간부도 “경영난이 심화돼 존립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과거보다 더욱 지역 여론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들어 정치권 일각에서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선동 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를 더욱 부추기는 자극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서화합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언론의 ‘전국적 시각’이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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