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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인민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 시진핑의 고전 리더십 (41) ]

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
인시수견형, 시민지치부.

사람이 물을 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백성을 보면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지 여부를 볼 수 있다.

이 말은 시진핑이 ‘당의 군중노선 교육실천 활동 제 1차 총결 및 제 2차 부서회의 연설’ 때 <사기·은본기殷本紀 제 3>에서 따왔다. 인민은 흔히 배를 띄우는 배나 씨앗을 틔우는 땅으로 비유되고, 지엽枝葉의 근본으로 본다. 때문에 국정 운영자에 대해 인민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진핑은 “당의 문을 활짝 열고 활동해야 한다”면서 “당이 인민과 괴리돼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자화자찬하는 것을 절대 삼가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진핑은 “인민대중과 혈연적 연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 당을 불패의 기반에 서게 하는 근본적 토대”라고 말한 바 있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1일 천안문에서 건국 70주년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1일 천안문에서 건국 70주년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는 국가든 한 정권과 한 정당의 운명은 민심의 향배에 달려있어 인민의 옹호와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결국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당과 인민대중의 혈연적 연계를 항상 유지하고, 인민대중과 한 마음이 되어 함께 호흡하는 공동운명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인민을 어지러움을 다스리는데 귀감이 되는 물에 비유했다. 당원과 간부들이 현실생활에서 교육실천 활동 뿐 아니라 더 많은 다른 일에서도 군중을 참여시키고, 군중의 감독을 받으며 군중의 심판을 받아들여 군중이라는 거울과 잣대를 더 많이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 기대고, 누구를 위한 것’ 이란 문제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湯征諸侯. 葛伯不祀, 湯始伐之. 湯曰: “予有言: 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 伊尹曰 : “明哉! 言能聽, 道乃進. 君國子民, 爲善者皆在王官. 勉哉, 勉哉!” 湯曰: “汝不能敬命, 予大罰殛之, 無有攸赦.” 作湯征.
탕이 제후 정벌에 나섰다. 갈의 우두머리 갈백이 제사를 지내지 않아 탕이  정벌했다. 탕이 말했다. “내가 ‘사람이 물을 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백성을 보면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지 여부를 볼 수 있다’고 말 하지 않았던가”라고 하자 이윤이 대답했다. “밝으십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 도덕이 발전합니다. 나라의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면 좋은 사람들이 왕의 관직에 있게 됩니다. 노력하십시오, 노력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탕이(갈백에게) 말했다. “그대가 천명을 공손히 받들지 않으면 내가 큰 벌을 내릴 것이고 사면은 없다.” <탕정湯征>을 지었다.

<사기·은본기>의 은은 상나라를 말한다. 중국 역사상 두 번째 왕조로 개국군주는 성탕成湯이다. 기원 전 1620년 탕왕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제후 갈백을 정벌하려 할 때 재상 이윤伊尹에게 “사람이 물을 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백성을 보면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지 여부를 볼 수 있다(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고 말했다. 사람이 수면을 통해 자신의 형상을 볼 수 있고, 백성들의 생활 상태를 통해 국가운영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불’은 ‘부’와 같다. 요컨대 백성들의 ‘사정과 형편(民情)’을 거울로 삼으라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의 ‘거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성탕이 ‘거울론’을 표명한 것은 중국 고대왕조 때 이미 백성들의 민정상황을 통치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사람을 거울로 삼는(以人爲鏡)’ 관념은 역대 개명 통치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시경·대아大雅>편을 보면 ‘은나라의 거울은 먼 데 있지 않고 전 대인 하나라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했다. 남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은감불원殷鑑不遠’의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대대례기大戴禮記·보부保傅>편에는 ‘밝은 거울은 형체를 살핀다. 옛날을 돌아보면 지금을 알 수 있다(明鏡者, 所以察形也; 往古者, 所以知今也)’고 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거울론’을 더욱 확대발전시켰다. <신당서新唐書·위징전魏徵傳>에 따르면 당 태종은 대담하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위징이 죽은 뒤 탄식하며 말했다.

“구리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가져 안으로 나의 과실을 막았다. 지금 위징이 죽어 거울 하나가 없어졌구나(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 以人爲鑑, 可明得失. 朕嘗保此三鑑, 內防己過. 今魏徵逝, 一鑑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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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1-04 12: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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