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기소된 탈북자 이주성씨에 대한 2차 공판이 3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렸다. 이씨 측은 핵심증인인 북한군 김명국씨(가명)의 증인 출석이 어렵다고 밝혔다. 김명국씨는 자신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북한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형사3단독 재판부(진재경 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이씨 변호인은 “사건의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으며 뜬금없이 “고소인(이희호 여사)가 진정한 의사로 이 사건을 고소했는지 의심 된다”며 김대중평화센터의 법률대리를 맡은 변호사를 증인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씨측 변호인은 “지난해 98세였던 이희호 여사로부터 직접 고소를 위임받았는지 심문하고자 한다. 작년 초부터 건강상태가 나빴기 때문에 유명인도 아닌 피고인이나 베스트셀러도 아닌 서적에 대해 이 여사가 이를 알고 자신과 성향이 전혀 다른 유튜브 방송을 보고 고소를 위임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자명예훼손죄의 경우 친고죄로 고소권자는 친족 또는 자손을 원칙으로 한다.

이에 담당 검사는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해서 어떤 증언을 듣고 싶다는 건지 의문”이라며 “고소대리인을 불러 고소 경위를 듣는 게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의 쟁점은 책에 담긴 내용과 이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허위사실인지 다투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씨측 변호인은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여서 고소인의 진실한 의사가 없었다면 혐의 성립이 어렵다”고 맞섰다. 일단 재판부는 김대중평화센터 박한수 기획실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씨측 변호인은 또한 연대 세브란스병원에 이희호 여사가 재작년 말부터 입원했던 기간에 대해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 변호인측은 “지난해 2월17일 하태경 의원이 이 사건 내용을 언급하면서 김대중평화센터와 협력하겠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이희호 여사가 입원 기간이었다면 고소인이 고소 의사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판사가 “입원하면 의사 표시를 못 하나?”라고 묻자 변호인은 “몸도 안 좋은데 법률 상담에 나섰을 거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방송 화면. 모자이크 저리된 이가 김명국(가명)씨. 옆자이에 앉은 이가 이주성씨다.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방송 화면. 모자이크 저리된 이가 김명국(가명)씨. 옆자리에 앉은 이가 이주성씨다. 건너편에 앉은 이는 김광현 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다. 

정작 이날 재판에서 이씨 주장의 허위여부를 확인할 핵심인물인 김명국씨의 증인신청은 불발됐다. 변호인은 “탈북군인 한 명이 증언을 해주시겠다고 해서 증인으로 신청할 생각이었는데 그분이 생각이 바뀌어서 가족에 대한 신변 위협이 있다고 했다”며 “증인신청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탈북군인과) 대화를 녹음한 게 있는데 그걸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판사는 “녹음은 반대 신문이 안 되기 때문에 증거능력에 대해선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판사는 또한 “책의 내용이나 피고의 주장이 진실한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공판기일은 1월29일이다.

앞서 이씨는 2017년 ‘보랏빛호수’라는 책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김일성과 결탁해 폭동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으며 북한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주장했으며 각종 유튜브 방송과 집회현장에서 김 전 대통령이 북한군의 남파를 부탁한 사실이 있는 것처럼 주장해 허위사실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정규재TV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도 지역 무기고 위치를 북에 알려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2013년 5월15일 채널A 시사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김명국씨가 출연한 이후 국내에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한 허위정보가 본격 확산됐다. 그러나 김명국씨는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김씨가 직접 재판에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주성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씨는 김명국씨의 채널A 인터뷰 당시 김씨 옆에 동석했으며 문제의 채널A 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해 김씨 주장에 주석을 달며 ‘북한국 개입’을 주장했다. 이씨가 쓴 ‘보랏빛호수’의 부제는 ‘광주사태 당시 남파되었던 한 탈북군인의 5·18체험담’으로 주인공 이름은 정순성이며, 월간조선은 “김명국과 정순성이 동일인물이거나 동일한 작전에 참여한 인물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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