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신년토론 ‘한국언론 어디에 서 있나’의 첫 번째 키워드는 ‘기레기’였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진행자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사실과 사실 사이의 맥락을 전달하고, 맥락을 통해 해석을 실어 보내는 것이 보도인데, 품질 낮은 보도가 나와서 이용자들이 나름의 의견을 피력해도 피드백이 없다. 계속 문제가 반복되면 이용자들은 고의라고 생각한다. 저들은 소통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기레기라는 멸칭이 기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문가의 권위가 전반적으로 상실된 시기다. 지금껏 권위에 눌려있던 이들이 전문가 집단의 폐쇄성·엘리트의식에 대한 반발을 멸칭으로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기레기는 10년 전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못 했던 이명박정부에서 탄생했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선동된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는 언론인을 향해 (기레기라는 표현을) 오남용하고 있다. ‘알릴레오’ 시청자들이 기자들 리스트를 만들어 좌표를 찍고 공격한다”며 이 같은 움직임이 조직화·일상화·전면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선 유 이사장 주장은 지난 정권까지만 타당하다고 반박한 뒤 “지금은 품질 높은 기사를 쓰는 사람도 기레기라고 부른다. 멀쩡한 레거시미디어를 기레기라고 공격한다”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전통미디어가 직면한 문제를 보는 게 토론 취지다. 한국언론은 적응의 위기에 봉착했다. 오늘날 정보통신혁명은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등장 이후 상황과 유사하다”고 했다. 그는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적대감·능동적이며 공격적인 비평은 기술변화 때문에 생겼다. 예전이라면 그냥 넘어갔던 게 지금은 넘어갈 수 없다. 언론인이 잘 대응했더라면 기레기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JTBC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의 한 장면. 
▲JTBC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의 한 장면. 

진중권, 알릴레오·뉴스공장·PD수첩의 ‘조국 편향’ 공세 

이날 토론은 자연스럽게 조국 보도로 이어졌다. 진중권 전 교수는 “JTBC 기자가 서초동 집회에서 리포트 하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보도 못 하게 막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며 “‘알릴레오’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조국 사태 관련 ‘알릴레오’ 방송을 가리켜 “사고방식이 음모론적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대중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일종의 피해망상이다. 그런데 ‘알릴레오’ 듣는 사람들은 사실로 믿는다”며 “선동이자 말장난”이라고 주장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배우지 못한 부모 밑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학벌 좋은 부모를 가진 학생에게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현 정부의 가치관과 배치된다”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장관으로서 부적격자였다고 한 뒤 “조국 일가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인데 (‘알릴레오’ 등은) 조국은 얼마나 청렴한가로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다루기가 힘들다. 우리는 아무도 정확하게 사실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 대부분은 검찰 주장이다. 검찰 주장이 언제나 사실과 진실을 담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으며 “조국 일가에 도덕적 평가는 각자가 하면 된다. 지금 문제는 (조국 일가의 문제가) 형사법상 처벌 대상이 되느냐다. 조국은 유죄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보도가 넘쳐났다. 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적 형벌의 정당성을 내리는 기준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유시민 이사장은 ‘알릴레오’를 가리켜 “우리는 편파중계다. 편파적이지만 그 과정은 공정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팀의 편파중계도 있어서 전체적으론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 교수 주장은 너무 급하다. 대중이 어떤 논리에 세뇌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려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종합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방송사(SBS)에서 정경심 컴퓨터에서 (표창장) 직인 파일이 나왔다고 단독 보도했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지만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집에서 (표창장을) 합성한 것으로 나온다. 동양대에 있던 업무용 컴퓨터는 위조와 관련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검찰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언론에 퍼뜨렸고, 처벌 여론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4개월 간 조국 보도 중에 기자 스스로 실제 의미가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았던 것들 사이의 구분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현 교수는 “조국 사태를 보면서 시민들이 언론·검찰 권력이 유착됨으로써 기소단계의 검찰발 기사가 팩트처럼 보도되면서 벌어지는 부정적 효과를 인식하게 됐다. 언론도 출입처 제도와 언론이 개선의 계기는 됐다”고 했다. 정준희 교수는 “검찰발 보도의 핵심은 검찰이 판단한 것을 사실로 확정한다는 것”이라고 전하며 “한국언론은 해외와 달리 수사단계에서 모든 보도가 집중되고 법적 판단이 들어가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며 조국 보도도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진중권 전 교수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 때도 온갖 추측 보도가 난무했다. 그 때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은 얌전하다”며 검찰과 언론에게 쏠렸던 비판을 가리켜 “조국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이들을 협잡꾼으로 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례로 “‘알릴레오’가 경향신문 유희곤 기자의 보도를 비판했던데 검찰과 유착하고 받아먹었다는 식의 음모론을 폈다”고 전하며 “망상을 구축해서 지지자를 선동하는 건 좋은데 묵묵하게 자기 일하는 기자들 제발 좀 내버려 둬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유 이사장은 “기자들도 비판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받아치며 “소비자들은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 시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유희곤 기자는 검찰을 대변하는 기사를 써왔다고 비평했다”고 반박했다.

▲JTBC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의 한 장면. 
▲JTBC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의 한 장면. 

진중권 전 교수는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MBC ‘PD수첩’도 비판했다. 그는 “(조국 딸) 조민을 인터뷰하면서 공격적 질문 대신 피의자가 하고 싶은 말만 그대로 내보냈다. 정상적 인터뷰였다면 봉사활동을 어느 프로그램에서 했는지, 담당 교수가 누구인지 물어봐야 하는데 온갖 변명만 들어줬다”고 했다. 이어 “PD수첩에도 굉장히 실망했다. 동양대 교수 중 (조민) 표창장이 위조되지 않았다고 본 사람은 두 명이다. 모든 사람은 위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PD수첩은 두 명에게만 인터뷰를 시도했다. 우연의 일치인가. 나한테는 연락해야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처음부터 (방향을) 정해놓고 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PD수첩은 직인을 만들어주는 주물공장을 찾아가 똑같이 만들 확률을 물어봤다. 인주 묻은 표창장이 없는데 하나 마나 한 보도를 했다. 프린트 금박지의 위조가 불가능하다고도 했는데, 그건 그냥 (학교에) 남아서 돌아다닌다”고 지적한 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두 명의 동양대 교수를 빼고 나머지가 침묵하고 있다면서 총장의 색출 때문이라는 전도된 주장을 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주장에 유 이사장은 “논평을 안 하겠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지금은 듣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말하면 혐오감을 보인다. 과거엔 거짓말이 나빴지만 지금은 지루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콘텐츠도 따라가게 된다.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외려 환영받고, 거짓말로 판명 나도 비난받지 않는다. 이분들이 소비자주권 행사하는데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는 굉장한 타격을 받는다. 알릴레오·뉴스공장은 용기 있는 기자들을 공격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그렇게 조국기 부대와 태극기 부대만 남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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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의 한 장면. 

공통 결론은 기성 언론의 위기, 해법은 각자 달라 

진단은 각자 달랐지만 기성 언론이 위기라는 결론은 같았다. 해법은 어땠을까. 이창현 교수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현재를 두고) 해장국 언론의 시대라고 했다. 자기와 견해가 다른 모든 것은 기레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해장국 언론의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갖는 특성을 존중해주는 가운데 (유튜브 콘텐츠가) 균형을 갖고 함께 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기자들은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을 고르는 스트레스를 마주해온 사람들이다”며 일정한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자들은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다. 길을 잡는 직업적 저널리즘의 역할을 하면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협력 저널리즘을 강조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언론은 공적 역할을 하는 사기업이다. 사주의 지향에 따라 사실과 메시지에 영향을 받는다. 광고주 영향도 받는다”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편하게 기사 쓰는 관행도 있다. 대기업·경찰·검찰 입장 받아쓰며 사무실 제공받고 대접받는다. 정보생산 주체의 영향을 받으며 (보도에) 불신이 생긴다”며 관행의 변화를 주문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유튜브 콘텐츠는 사실 반 허구 반이다. 그곳에서 재밌게 노는 건 좋은데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다고 의식해야 한다. 제발 음모론과 사실을 구별하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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