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해 24일 저녁,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자신을 닭강정 가게 점주라고 밝힌 글쓴이의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쓴이는 ‘닭강정 30인분을 주문받아 배달을 갔는데 주문자의 어머니가 안 시켰다고 했다’며, ‘주문자의 어머니가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장난 주문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성인이 되어서도 괴롭힘을 이어가고 있다’는 내용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그러나 26일 저녁에 송고된 경향신문 <단독-닭강정 거짓 주문, 왕따 아닌 ‘작업대출 사기’였다>(12월26일)기사에서는 다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학교폭력이 아니라 불법대출 사기단이 범죄에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피해자를 협박하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학교폭력이라는 대목은 허위정보였지만, 글쓴이나 피해자의 어머니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워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고, 글쓴이의 행동으로 대출 사기단의 행각이 알려져 사회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또 온라인 이슈에 편승했다가 허위보도한 언론들입니다.

인터넷 이슈 성급하게 보도한 언론사들

인터넷 언론사들의 보도는 25일 오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규모가 큰 언론사 중에서는 온라인 기사 송고 시간 기준으로 부산일보(10:23), 국민일보(11:34), 머니투데이(13:37), 한국경제(16:14), 세계일보(17:21) 순으로 보도했고, 연합뉴스가 18시 30분경 보도한 후 매일경제(19:01), 중앙일보(19:59), MBC(20:04), MBN(20:12), 스포츠경향(20:37), 동아일보(21:04), SBS(21:23), 서울신문(22:44), YTN(22:58) 순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26일 9:37, 한겨레는 26일 15:08분, 한국일보는 26일 15:31분에 보도했습니다. 이 중 동아일보는 지면까지 할애하여 26일 10면에 <“학폭 피해자 집에 닭강정 30인분 거짓 주문”>(12월26일, 이경진 기자)로 보도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있는 게시글에 따르면, 위 언론사 중 그나마 보도의 이유가 있었던 곳은 서울신문과 MBC뿐이었습니다. 서울신문은 25일 12시 이전 글쓴이와 접촉했으나 보도는 22시에 나왔고, MBC의 경우 닭강정 업주가 직접 피해자 부모와 녹취록을 MBC측에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6일 오후 경찰에 피해사실이 신고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경찰에 의해 가해자들의 정체가 드러난 만큼, 언론사들은 온라인에서 떠도는 이슈를 커뮤니티 게시글만 인용해 성급하게 보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닭강정 업주가 ‘가짜뉴스’ 퍼뜨렸다고 매도한 언론들

일반적으로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허위조작정보는 주로 정치적인 목적, 혹은 특정 사회적 집단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뒤틀거나 날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말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가족이 대출 사기에 휘말렸다고 의심하기 힘들다는 점이나, 어떤 정치적인 의도 혹은 사회적 약자 공격을 위해 게시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부모나 닭강정 업주가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닭강정 업주가 거짓말을 했다거나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일보는 <닭강정 33만원 거짓 주문 사건 ‘대출사기단의 앙갚음’ 결론>(12월27일, 임명수 기자)에서 “왕따·갈취 문제로 공분 샀지만 닭강정 업주의 거짓말로 드러나”라는 중간제목을 달았습니다. 한국일보는 기사에서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채 ‘거짓주문’, ‘고교시절로부터 졸업 후에도 폭행’, ‘가해자가 피해자 휴대폰 개통 및 갈취’ 등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닭강정 업주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SNS에 관련 내용을 올리면서 논란을 가속화 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경찰 조사결과 업주의 주장은 허위로 드러났다. 업주는 경찰 조사에서 “(33만원 상당의 주문내용 등)모든 게 사실이지만 제가 조금 부풀려 얘기한 게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휴대폰 개통, 300만원 갈취 등은)제가 오버해서 글을 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고 업주의 책임을 부각했습니다.

▲ 지난해 12월27일 한국일보의 ‘닭강정 해프닝’ 사건 지면보도 내용
▲ 지난해 12월27일 한국일보의 ‘닭강정 해프닝’ 사건 지면보도 내용

이 기사는 한국일보 27일자 10면에 보도되었는데, 온라인 판에서는 <‘닭강정 거짓주문’ 전말 들여다보니…점주 선의만 왜곡된 엉뚱한 해프닝 왜?>라는 제목으로 기사 내용 거의 전체가 수정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쓴이가 한국일보 기사에 반박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는 점, 한국일보 온라인 판에서는 지면기사에 없던 닭강정 점주 C씨와의 통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일보 측이 항의를 받고 기사를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일보는 이에 대해 “C씨의 선의는 경찰의 엉뚱한 해명 탓에 사실이 왜곡됐다. ‘학교폭력, 휴태폰, 300만원 갈취’등은 C씨가 부풀리고, 추측에 의한 말이라는 것이다. 사건의 핵심은 알리지 않은 채 C씨의 진술이 허위사실이라고 언급하다 보니 혼선을 빚게 됐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고 했습니다. 즉, 점주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기사가 나간 것은 경찰의 잘못된 발표 때문이라는 투입니다. 그러나 다른 주요 언론사들의 1보에서는 ‘닭강정 가게 업주와 피해자 어머니와의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는 대목 정도만 보도하고 닭강정 가게 업주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등의 서술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한국일보의 해명은 궁색해 보입니다. 게다가, 취재원이나 국가기관의 잘못된 발언을 추가 취재로 확인하는 것은 원래 언론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조선일보의 유체이탈 보도

조선일보는 28일 ‘닭강정 해프닝’을 ‘가짜뉴스 사건’으로 규정하며 크게 다루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닭강정 사건으로 본 가짜뉴스 실태’라며, <‘33만원 분당 닭강정’ 사건은 어쩌다 가짜뉴스로 번졌나>(12월28일 권상은·곽래건 기자)에서 “확인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이 최소한의 검증 없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타고 일파만파 번지며 왜곡·확산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말한 ‘일부 언론’에는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조선닷컴도 포함됐습니다. 조선닷컴은 26일 오전 9시30분경 <왕따 피해자 괴롭히려 닭강정 30인분 거짓 주문… 처벌 수위는>(12월26일, 이윤정 기자)에서 “가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처벌 수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처벌 수위를 예측했고 이 날 오후 닭강정 점주의 고발장이 접수되자 후속 보도도 했습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온라인 이슈를 기사화한 것입니다.

▲ 조선일보가 지난해 12월28일 ‘닭강정 해프닝’ 사건 관련 기사에서 인용한 시각자료.
▲ 조선일보가 지난해 12월28일 ‘닭강정 해프닝’ 사건 관련 기사에서 인용한 시각자료.

 

그런데도, 조선일보가 가장 비판에 중점을 둔 것은 공중파 방송입니다. 조선일보는 기사 시각자료인 <‘분당 닭강정 사건’ 일지>에서는 다른 주요 매체들의 보도는 빼고 “25일 오후 공중파 뉴스 “학폭 가해자가 주문”보도”라고만 설명했습니다. 이틀 후 논설위원 칼럼 <만물상-‘가짜 장발장’>(12월30일, 김홍수 논설위원)에서는 얼마 전 미담으로 소개되었다가 단순 절도범으로 밝혀졌던 ‘현대판 장발장’ 사건과 ‘닭강정’사건을 엮어 “현대판 장발장과 닭강정 사건은 공중파 TV 방송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주요 뉴스로 다루는 바람에 일파만파로 번졌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조선닷컴을 포함한 전반적인 언론들의 문제를 공중파 TV 방송의 문제로 바꾼 김홍수 논설위원은 그 다음 대목에서 논리를 비약시켰습니다. 김홍수 논설위원은 “이 정부 들어 친정부 매체들이 진영 논리에 갇혀 입맛에 맞는다 싶으면 과장·확대 보도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중략) 청와대는 정권 비위를 비판하는 언론에 ‘가짜 뉴스’ 프레임을 씌워 본질을 흐리는 전략을 자주 써왔다”며, “정권 핵심부가 진짜를 가짜로 만들고, 코드를 맞추려는 방송이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나라다. 이 분야에서 이보다 영리한 정권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라며 글을 맺었습니다.

‘닭강정 해프닝’에서 언론들이 얻어야 하는 교훈

‘닭강정 해프닝’의 전말이 드러나기 전 유일하게 지면 기사를 냈던 동아일보는 30일 논설위원 칼럼 <‘닭강정 30인분’ 소동>(12월30일 구자룡 논설위원)에서 “온라인상에서 진실과 거짓, 미담과 악행, 선악 판정이 진위를 확인할 시간 여유 없이 순식간에 내려진 뒤 일단 퍼져나가면 사마난추(한 번 뱉은 말은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로도 따라갈 수 없다)가 되어 쉽게 주워 담을 수가 없게 된다. 온라인 시대에는 확산 범위는 물론 속도마저 번갯불보다 빠르니 참으로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세상이다”라고 이 사건을 평가했습니다. 틀린 말이 하나 없습니다.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들을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것의 위험성은 동아일보가 지적한 사실관계의 오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3~17년 대상 연구 <인터넷 뉴스/토론 게시판의 댓글·게시글 작성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2018년 9월30)에 따르면, 인터넷 뉴스/토론 게시판에서 최근 3개월 내 뉴스/토론 게시판에 댓글을 달거나 글을 한번이라도 작성한 사람은 전체의 8%에 불과했고 일주일에 1~3회 비율 이상으로 꾸준하게 온라인 의견 표명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2.1%였습니다. 인구 비율로 보면 남성이 18%나 높았으며, 20~40대, 고학력자의 이용률이 높았습니다. 즉, 온라인 여론을 언론들이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특정 여론의 과잉대표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론들은 온라인 이슈를 보도하더라도 온라인 공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온라인 공간의 발달과 그로 인한 정보 과잉으로 이미 ‘빠른 소식 전달’은 기성언론의 손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언론들이 이번 ‘닭강정 해프닝’에서 벌어진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번개보다 빠른 온라인 여론에 편승해 클릭 장사를 할 것이 아니라 훈련된 전문 기자들이 시간을 들여 생산할 수 있는 정보의 차별성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2월24~30일 ‘닭강정 해프닝’과 관련된 온라인 보도
※ 2020년 1월3일 오후 16시15분 보고서 수정 : 조선일보 측은 2일 “조선일보와 온라인판 보도를 내는 조선닷컴은 기사 생산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서로 다른 회사이며, 따라서 ‘조선닷컴도 기사를 냈는데 이는 언급하지 않고 타 언론사의 잘못만 꼬집는 것은 유체이탈 보도’라는 민언련의 평가는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론했습니다. 이에 해당 반론을 반영해 수정합니다.
※ 문의 :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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