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처음 인정한 노동부와 법원 판단이 잇따라 나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배달라이더와 대리운전기사 등 종전 ‘프리랜서’로 취급받으며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였던 이들의 권리보호가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입법개선이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방노동청은 지난해 10월 배달대행앱 ‘요기요’ 라이더들이 제기한 체불임금 진정을 처리하며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노동부는 요기요가 이들에게 고정 시급을 주고 오토바이와 유류비 등을 지급한 점, 회사가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출퇴근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고토록 한 점 등을 주로 근거 삼았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대리운전기사들을 교섭이나 파업할 수 있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처음 인정했다. 대리기사들은 대리업체와 ‘동업계약’을 맺고 스마트폰 앱으로 기사로 등록하고 콜을 배정받아 일해 왔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이들 대리기사가 겸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소득의존성이 있다고 봤다. 업체가 기사와 동업계약에서 기사의 업무수행과 의무사항, 수수료를 일방 결정하고 있고, 복장착용‧교육의무를 지우는 등 지휘‧감독도 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고정시급 받는 특수케이스” 선그은 노동부, 노동3권 인정 판례 따른 법원

노동부와 법원의 판단은 플랫폼노동자와 대리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한 첫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라이더유니온은 언론에 “근로기준법의 의무와 책임 밖에서 실제로는 근로자로 쓰고 싶은 플랫폼기업의 본질을 잘 보여줬다”고 밝혔다. 대리운전기사 노조를 대리한 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민심)는 “대리기사가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이 그간 인정하지 않던 노동자의 업체에 대한 소득의존성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2019년 하반기 배달라이더·대리기사 등 모바일플랫폼을 이용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기준법·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단이 잇달은 한편, 실질 노동자 개념을 넓혔다기엔 한계란 지적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2019년 하반기 배달라이더·대리기사 등 모바일플랫폼을 이용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기준법·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단이 잇달은 한편, 실질 노동자 개념을 넓혔다기엔 한계란 지적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반면 이들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개념을 넓힌 사례로 보긴 역부족이다. 기존 노동관계법상 규정과 판례를 적용한 결과인 탓이다.

노동부는 라이더 진정 사건 당시 보도참고자료를 내 해당 라이더들이 일반 라이더들과 달리 고정시급을 받는 점을 들며 “일반적 배달대행기사의 업무실태와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대리운전기사 사건의 경우 지난해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적용했다. 변영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지난해 학습지 교사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며 제시한 △소득의존성 △사업자의 계약 일방 결정 여부 △관계의 지속성‧전속성 등 지표를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법원이 기존 판례를 토대로 노동자가 사업주에 경제적으로 종속돼있다면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함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풀이했다.

노조법상 노동자 개념 확대, 근로기준법상 최소 권리 보장해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보호를 사법부 판단과 해석에 맡겨둘 게 아니라 입법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는 16대부터 매 임기 노동자를 ‘계약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자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로 정하고,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해 노동자로 규정하도록 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발의돼왔다. 20대 국회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이 지난 2017년 2월 제출됐지만 논의되지 않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 등 노조법상 권리뿐 아니라 임금과 해고, 노동시간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 보장도 과제로 남는다. 변 변호사는 “노조법상 권리를 인정해준다고 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신분상 불안정이 달라지지 않는다. 대리기사 사건의 경우, 소송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은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고도 해고를 당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실제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하려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2019년 하반기 배달라이더·대리기사 등 모바일플랫폼을 이용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기준법·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단이 잇달은 한편, 실질 노동자 개념을 넓혔다기엔 한계란 지적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
▲2019년 하반기 배달라이더·대리기사 등 모바일플랫폼을 이용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기준법·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단이 잇달은 한편, 실질 노동자 개념을 넓혔다기엔 한계란 지적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

특수고용노동자의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오히려 개인사업자를 노동자로 전제한 뒤 ‘사용자성’을 기준으로 판별해내는 방식이 효과적이란 시각도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의회를 통과한 AB5법안이 그 사례다. 이 법안은 노동관계를 둘러싼 소송에서 개인사업자인 노무제공자를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하고, 사측이 반증해야만 개인사업자로 인정하도록 했다. 개인사업자는 △회사의 지휘·통제에서 자유롭고 △회사 사업의 주요부분이 아닌 일을 하며 △해당 업계에서 독립 사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특수고용 노동자 법제도, 판례 현황과 현장 쟁점’에서 “현재는 노동자나 노조가 근로기준법‧노조법상 노동자임을 판례상 지표마다 입증해야 하는데, 입증할 사항이 많을 뿐더러 사용자가 대부분 증거자료를 쥐고 있다. 입증책임을 사용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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