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본 텔레그램 방에는 저보다 더 어린 피해자들도 있었어요. 그 피해자들이 일단 희망을 잃지 않고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박사란 사람 꼭 검거해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좀 잡아주세요, 제발.’ (피해자인) 이은혜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2019년 11월25일자 “‘나체 사진 보내라’ 협박끝 받아내…수천명이 키득대며 관전”)

▲ 지난해 11월25일자 한겨레 4면
▲ 지난해 11월25일자 한겨레 4면

한겨레 24시팀(이하 24시팀)은 지난해 11월11일부터 28일까지 기획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를 연속 보도했다. 첫 보도는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0대 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등을 2만여개 유포해왔다는 것이다. 이 보도를 시작으로 24시팀은 ‘알바 모집’이라는 글에 속아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가해자를 만났고, 텔레그램방 잠입 취재, 경찰 수사 협조 등을 했다. 피해자들은 청소년을 포함해 최소 20명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의 두로프 형제가 개발한 철벽 보안을 자부하는 인터넷 모바일 메신저다. 이 같은 장점이 있는 텔레그램이 여성들에게 성착취의 고통을 안기고, 불법 사진과 영상이 유통되는 ‘허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성착취물 유통 생태계를 보장하는 장이 된 것.

한겨레 24시팀은 첫 보도를 이끌었던 제보자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한 번의 보도로 끝내서는 안 될 간단치 않은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12월3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한 한겨레 24시팀 기자는 “‘링크 정보를 공유하는 방’ 텔레그램 채널을 보고 충격받았다. 게시물이 하루에 수천 개씩 올라왔다. 그러다 ‘박사’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11일자 1면
▲ 지난해 11월11일자 1면

 

▲ 지난해 11월25일자 한겨레 1면
▲ 지난해 11월25일자 한겨레 1면

20대 여성 최지수와 이은혜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급전이 필요했다. 이 둘은 트위터에서 ‘홍보 및 스폰 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박사’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과 텔레그램에서 만났다. 박사는 이들에게 돈 지급을 위해 얼굴과 주민등록증이 함께 담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박사는 이들에게 나체 사진 등을 요구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음란물 유포 방에서 이 사진을 다른 이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줬다.

최지수와 이은혜는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었다. 본인들의 개인정보가 박사에게 모두 넘어가 있었다. 박사는 피해자들이 시키는 걸 제대로 하지 않을 때마다 협박했다. 피해 여성들은 두려움을 느껴 이사했다. 우울증에 걸려 약을 먹는다.

한겨레는 텔레그램 피해자들을 어떻게 접촉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기자와 피해자를 닿게 해준 건 박사가 운영하는 방에서 음란물을 함께 보던 이들이었다. 한겨레 24시팀 기자는 “남성중에서도 텔레그램에서 음란물을 보려고 들어왔다가 직감으로 ‘범죄’라고 느낀 분들이 피해 여성들에게 음란물이 다수에게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줬다. 한겨레에 제보도 해줬다. 피해 여성들이 신고한 경찰서를 접촉해 취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취재하며 경찰과 공조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도 만났다. 한겨레 24시팀 기자는 “텔레그램방에서 어떤 식으로 범죄가 이뤄지는지 알려면 잠입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 목적이어도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취재하며 본 내용을 경찰에 중간중간 알렸다. 경찰을 통해 음란물을 유통하다 검거된 가해자 김재수를 만났고, 범죄 내용을 자세히 들었다. 김재수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자발적으로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27일자 한겨레 9면
▲ 지난해 11월27일자 한겨레 9면

하지만 한겨레는 김재수에게 들은 내용을 자세히 보도할 순 없었다. 또 다른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왜 기자 이름이 아니라 ‘특별취재팀’이라는 바이라인(신문 등에서 기자나 작가 등의 이름을 밝힌 줄)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이 글을 쓰고 있을까요. 특별취재팀의 추적과 보도가 시작된 직후, 박사의 방을 비롯한 비밀방에선 기자의 신상을 털자는 모의가 시작됐습니다.” (2019년 11월28일자 “성착취 보도 중에도 피해자 발생…영상은 끝없이 퍼져나가”)

기자들은 보도 후 신상이 털렸고 협박받았다. 음란물을 계속 봐야 했던 것도 고충이었다. 24시팀 기자는 “신상은 첫 보도 이후부터 털렸다. 가족사진 등이 잠입 취재하고 있는 텔레그램방에 올라왔다. ‘길 다닐 때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겠다’라는 글도 올라왔다. 경찰이 결국 신변 보호에 나선 상태”라고 말한 뒤 “제일 괴로웠던 건 비도덕적인 영상을 봐야 했다. 인간성을 파괴하면서 취재하는 게 힘들었다. 남성 기자도 힘든데 같이 취재한 여성 기자들도 힘들었을 것 같다. 취재가 끝난 후 심리상담을 받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 지난해 11월28일자 한겨레 9면
▲ 지난해 11월28일자 한겨레 9면

그래도 기획 보도가 나간 이후 텔레그램 음란물 채널은 조금씩 바뀌었다. 성폭행 모의까지 감행한 한 비밀방 ‘마스터’는 보도 직후 자신의 방 기록을 모두 삭제했다. 음란물 계정을 이용하는 인원 중 천 명 이상이 탈퇴하기도 했다. 박사도 자신이 운영하던 방 일부를 없앴다. 한겨레 24시팀은 삭제된 기록들의 갈무리본을 경찰과 공유하고 있다.

끝으로 한겨레 24시팀은 동료 언론인들에게 이 사건 보도를 함께해달라고 요청했다. 24시팀 기자는 “문제의 크기가 너무 크다. 타 언론사가 함께 보도해줬으면 한다. 언론사가 검거된 범죄자나 이미 범죄 혐의가 성립된 것들을 쓰는 것에 비해 인지되기 시작했을 때 보도하는 건 머뭇거린다. 함께 적극 취재해 공론화해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았으면 한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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