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중흥그룹을 최대 주주로 맞은 ㈜헤럴드(헤럴드경제, 코리아헤럴드)가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18일 오후 “중흥건설, ‘고양 덕은 중흥S-클래스 파크시티’ 22일 견본주택 개관”이라는 제목의 헤럴드경제 기사가 네이버 페이지 메인에 걸렸다.

▲ 지난해 11월18일 오후 “중흥건설, ‘고양 덕은 중흥S-클래스 파크시티’ 22일 견본주택 개관”이라는 제목의 헤럴드경제 기사가 네이버 페이지 메인에 걸렸다. 사진=헤럴드경제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 화면 갈무리
▲ 지난해 11월18일 오후 “중흥건설, ‘고양 덕은 중흥S-클래스 파크시티’ 22일 견본주택 개관”이라는 제목의 헤럴드경제 기사가 네이버 페이지 메인에 걸렸다. 사진=헤럴드경제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 화면 갈무리

헤럴드경제는 이날 기사에서 “중흥건설이 22일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에 들어서는 ‘고양 덕은 중흥S-클래스 파크시티’ 견본주택을 열고 분양을 시작한다”고 알린 뒤 공급 가구 수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리고 장점들을 설명했다.

기사 내용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헤럴드경제 소속 A기자는 “단순히 편집국에서 사업파트너로서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톱기사로 배열했을 것이다. 덕은지구는 노른자위에 지은 아파트라서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부동산 기사”라고 말했다.

A기자처럼 생각하는 기자들도 있지만, 헤럴드경제 공정보도위원회(이하 공보위)에 문제 제기한 기자들도 상당했다. 복수의 취재원이 말한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 11월18일 오후 5시 중흥건설 기사가 헤럴드경제 네이버 페이지 메인기사로 올랐다. 중흥그룹 인수 후 기자들은 중흥건설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 기사가 회사에서 얼마나 자주 나오고 있는지 주목하게 됐다. 기자들 입장에선 해당 기사를 편집국장이나 부동산 부장이 포털 메인기사로 걸라고 지시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공보위는 다수 기자의 의견을 받아 경위 파악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전창협 편집국장에게 문제 제기한 것. 당시 편집국장은 ‘중흥건설이 대주주가 된 후 우리 회사에서 얼마나 부동산 관련 기사가 자주 나오는지 독자들이 귀추를 주목하고 있고, 특히 대주주 관련 기사는 경쟁사들만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회사의 해명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기자들은 앞으로가 걱정이다. 헤럴드경제 소속 B기자는 “공보위가 문제 지적만 하고 끝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있을 일을 대비하고 있는 거로 안다.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소속 C기자는 “최근 조직개편을 봐달라. 부동산팀을 부동산부로 승격했다. 부동산부 인원만 충원됐다”고 지적했다.

건설 자본의 언론사 인수는 최근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언론사를 사들이는 목적은 유·무형의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인데 대주주 건설사가 추진 중인 부동산 산업을 홍보하는 듯한 헤럴드경제 기사도 이에 해당한다.

이후 공보위는 12월2일 신임 국장으로 임명된 김형곤 국장과도 한 차례 만났다. 김형곤 국장은 12월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공보위에서 문제 제기했다. 국장이 지시해서 톱기사로 올리지 않았다. 모바일 섹션 담당자가 있다. 그쪽 에디터가 기사 가치를 스스로 판단해 잠시 올렸다. 문제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한 번 더 의견 교환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기사 수가 많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을 두고 김형곤 국장은 “지금 부동산이 워낙 이슈다. 새로 인원을 충원한 상황에서 옛날보다 기사 수가 많아진 건 당연하다. 부동산 부장이 데이터를 직접 가져와서 보여주기도 했다. 타사보다 기사 수가 적다는 걸 보여줬다. 구성원들도 이해했다”면서도 “기자들이 문제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 건전한 문제 제기는 언제나 받아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헤럴드 CI.
▲ 헤럴드 CI.

헤럴드경제 기자들에 따르면 중흥그룹 인수 이후 대주주와 제대로 된 만남을 갖지 못했다. 앞서 중흥그룹은 지난해 8월23일~24일 전라남도 나주시 중흥골드스파&리조트에서 헤럴드 직원 전원을 초청해 상견례를 열었다.

하지만 행사 전날인 지난해 8월22일부터 기수별 성명서가 나왔다. 2017년에 입사한 26기 기자들은 성명서 “‘남아달라’ 말하면 ‘민폐’가 되는 회사…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렸다”에서 헤럴드경제 다섯 가지 실패 요인을 진단하고 다섯 가지를 요구했다.

이후 상견례 당일엔 25기부터 18기까지 8개 기수 성명이 이어졌다. 8월 25일엔 17기도 성명을 냈다. 구성원들은 최대 주주가 바뀜에 따라 비전 제시를 요청했는데, 회사는 사원들의 요구는 무시하고 권충원 대표이사 등 헤럴드 경영진들이 대주주 눈치만 살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서를 낸 일부 기자들은 상견례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흥그룹 인수 후 헤럴드경제 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헤럴드지부, 헤럴드통합노조, 코리아헤럴드 기자협회 등 4단체는 TF팀을 꾸려 사측에 요구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13일 권충원 대표이사가 임직원 전체에게 보낸 메일에서 경영진은 구체적인 헤럴드 운영 청사진이 아닌 취재비 10만원 인상과 인력 15명 충원, 조직개편만 이야기했다.

그러자 26기 기자들은 성명서를 내고 “아무런 추가 설명 없이도 ‘15명 채용’이라는 숫자만 제시하면 ‘무너질 대로 무너진 회사가 일어설 것이다’ 희망 품으리라 생각했나. ‘2023년 1등 매체’라는 표현을 전했는데, 구체적 로드맵이 기밀일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토로했다. 25기 기자들도 “중흥그룹에 편집국 기자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요청한다. 말이 왜곡되지 않도록 저희와 최대한 밀접하게 소통해달라. 새 대주주를 비난하고자 만남을 요청한 게 아니다”고 썼다.

헤럴드경제 기자협회(회장 이태형)는 오는 1월22일 오후 4시 총회를 연다. 이날 권충원 ㈜헤럴드 대표이사가 참석해 회사 비전을 두고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태형 기자협회장은 12월31일 미디어오늘에 “대표이사가 편집국 내 주니어 기자들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다. 중흥에 비전을 발표해달라고 이야기했는데, 대표이사가 하는 게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간담회 형식으로 총회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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