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헬로비전(과거 CJ헬로) 하청업체 소속 수리기사가 야외작업 중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들이 격무, 중간착취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나온다.

LG헬로비전 서부해운대고객센터에서 설치·수리기사로 일하던 김아무개씨(45)는 지난 30일 부산 해운대구 재송2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설치 작업을 하다 오후 5시반 께 의식과 호흡을 잃은 채로 발견돼 병원에 즉시 후송됐고 이날 오후 6시45분 사망 진단을 받았다.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비정규직지부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후 5시께 고객 건물에 도착했다고 추정되며, 시간이 지나도 김씨가 내려오지 않자 고객이 옥상에 올라가 쓰러진 김씨를 발견했다. 고객은 김씨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119에 신고했다.

김씨는 LG헬로비전 케이블방송과 인터넷 설치·수리·철거 업무를 담당했다. 셋톱박스를 교체하는 단순 업무부터 건물 외벽, 가스관, 전봇대 등을 타고 광케이블을 연결하는 위험 업무까지 업무 종류는 다양했다. 정보통신공사업법상 도급이 가능한 ‘경미한 공사’ 수준을 넘어서지만 LG헬로비전은 고객센터 업무를 외주화해 하청업체에 맡겨왔다.

▲케이블방송 및 인터넷 설치기사 자료사진.
▲케이블방송 및 인터넷 설치기사 자료사진.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는 설치기사로 약 1년 8개월 근속했고, 평소 운동량이 많은 주짓수를 즐겨 할 정도로 건강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씨 시신 부검을 의뢰해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고 현장에선 깨진 기왓장도 함께 발견됐다.

희망연대노조는 사망 배경의 하나로 격무를 주장한다. ‘30분’ 간격으로 업무를 배정하는 고객센터 업무 체계 자체가 과로를 조장하는 데다 평소 김씨가 과한 업무량에 시달린 흔적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노조가 확인한 ‘개인별 업무 할당 현황’을 보면 사고 당일 김씨 할당 현황은 ‘98%’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배정받을 수 있는 전체 업무 건수(약 15여개) 중 98%가 배정됐단 의미다. 노조는 “김아무개 조합원은 하루 평균 14건의 업무를 처리해왔다”고도 밝혔다.

‘30분 간격’ 체계는 현장 노동자 사이에서 “사람을 쥐어 짠다”고 악명 높다. 가령 오전 9시30분에 한 건, 10시에 한 건이 배정돼있으면 30분 안에 설치와 이동을 모두 끝내고 다음 건물에 도착해야 한다. 할당율이 90~100%라면 이런 업무 배정이 14~15번 연속해서 이뤄진다는 뜻이다.

최영열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케이블 설치·수리·철거 업무와 다음 건물로 이동을 30분 내에 끝내고, 이걸 14번 반복한다고 생각해보라. 힘들지 않을 수 있느냐”며 “개인이 자율로 업무량을 조정할 수 있는 현장 분위기도 아니다. 기사들은 무조건 완수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센터가 2019년 12월 30일 소속 노동자들에게 공지한 개인별 업무 할당 현황. 김씨에겐 사고 당일 98%의 업무가 배정돼 있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센터가 2019년 12월 30일 소속 노동자들에게 공지한 개인별 업무 할당 현황. 김씨에겐 사고 당일 98%의 업무가 배정돼 있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CJ헬로가 매각을 추진하면서 지난 3년 간 인력이 40% 가량 줄었다는 지적도 있다. 추혜선 의원(정의당)은 지난 3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2016년 SK텔레콤과의 인수합병 신청 당시, CJ헬로에는 전국 23개 권역에 36개 외주업체 2200명쯤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종사했지만 2019년 현재 34개 외주업체 1300명쯤의 노동자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도급업체 변경 전 대표이사의 노조 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전 업체의 대표이사는 직원 수십명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바로 (노조에) 보복한다”, “제발 파업 좀 해라”, “내 혼자 안 죽는다”, “같이 교도소 가자” 등의 글을 수시로 올렸다. 노조는 지난 10월 기자회견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고 12월 업체, 경영진 등이 변경됐다.

희망연대노조는 이에 “회사는 대면업무, 기술서비스노동의 특성을 무시한 채 업무 건수로 노동자를 줄 세우는 방식으로 실적을 압박했다. LG헬로비전과 서부해운대고객센터는 사고 당일 김 조합원(김씨)을 98%까지 쥐어짰다”며 “노조는 유족과 함께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원청인 LG헬로비전과 모기업인 LG유플러스는 하청업체 뒤에 숨지 말고 실제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고 고인과 노조 앞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LG헬로비전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 도의적인 차원에서 고인과 유족에게 지원할 수 있는 사항은 적극 고려하겠다”며 “사망 원인, 경위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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