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검찰 반발이 봇물 터지듯 거세다. 대검찰청은 이날 오후 “공수처법 통과와 관련한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으나 31일자 종합 일간지들은 검찰 내부의 ‘날선 반응’을 활자화했다. 주로 익명의 검찰 취재원을 통해서였다.

주요 일간지들이 전한 검찰 내부(또는 법조계)는 공수처를 비난하거나 우려를 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언론사 논조에 따라 발언 수위에 차이가 나타났다. 중앙일보 31일자 5면 “공수처법 격노했던 윤석열, 신년사로 반발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검찰 내부’에선 “‘정치권의 시녀’를 개혁한다더니 ‘공수처의 시녀’로 전락시켰다”라거나 “검치(檢恥)의 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반헌법적 수사 체계의 세계로 막 들어섰다”는 울분이 흘러나왔다. 해당 보도에는 많은 익명 취재원이 등장했다.

▲ 중앙일보 12월31일자 5면.
▲ 중앙일보 12월31일자 5면.

“검치의 날” “공수처의 시녀” 자처

① 검찰의 한 중간 간부 : “윤석열 검찰총장과 일선 검사들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한 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민정수석 등의 공수처법 원안 수정 약속이 공염불이 됐기 때문이다. (중략) 이번 공수처 조직은 비유하자면 기소권까지 갖는 과거 ‘청와대 사직동팀’(직할 수사팀) 또는 검찰총장 산하가 아닌 대통령 직속 ‘대검 중수부’의 부활인 셈이다.”
② 대검의 한 간부 : “국회에 최선을 다해 공수처법의 형사사법상 문제점을 충실히 설명했고, 검찰 의견서를 전달했다. 언론에도 호소했다. 할 건 다했다. 우리는 법 집행기관이다. 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니 달리 거부할 방도는 없다.”
③ 검찰 고위 간부 : “과거에 중도 사퇴한 총장들은 검경 간의 수사권 조정 합의가 깨졌거나 대검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 부하 검사들이 수뇌부를 비토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국회가 뚝딱 만든 법이니 윤 총장이 책임질 일도 아니고, 윤 총장이 수사 말고 이런 일로 사퇴할 스타일도 아니다.”

전직 검찰총장 발언(“윤 총장이 사표를 내면 눈엣가시가 떨어져 나가 청와대와 여권이 좋아하겠지만 ‘청와대 하명 및 선거개입 사건’ 등에 대한 수사 도중 사퇴하는 건 맞지 않다”)도 인용 보도했는데, 검찰총장 출신임을 밝힌 만큼 일반의 익명 검찰 관계자와는 또 다른 무게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익명의 취재원을 통해 격앙된 검찰 반응을 전하거나 윤 총장을 대변하는 발언과 기사는 여타 언론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일보에는 정부·여당에 각을 세운 ‘사정기관 관계자’와 ‘한 부장검사’가 등장했다.

① 사정기관 관계자 : “정권이 검사들 수사와 판사들 판결이 마음에 안 들면 엿가락 잣대로 기소까지 가능하다.”
② 한 부장검사 : “공수처가 통보받은 수사 기밀을 여당 측에 유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

▲ 국민일보 12월31일자 2면.
▲ 국민일보 12월31일자 2면.

“이제 모두 실업자가 될 것”

검찰 인사를 통한 조직 재편을 시사한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익명의 날선 비판이 국민일보 지면에 펼쳐졌다.

① 한 검찰 관계자 :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상당히 특이한 발언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여당의 인식을 대변한 것 같다.”
② 한 간부 : “후보자의 적반하장격 현실 인식이 우려된다.”

국민일보 보도에도 공수처에 대한 익명의 검찰 관계자 비판은 계속됐다.

① 한 검찰 간부 :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내용이 아니다. 통과돼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② 또 다른 검찰 간부 : “앞으로는 ‘내 편’이면 덮거나 ‘반대편’이면 무죄 판결이 이뤄지더라도 대충 기소하게 되겠다.”
③ 한 부장급 검사 : “이제 모두 실업자가 되겠다.”

한국일보의 ‘한 검찰 간부’는 차분한 논의를 촉구했다.

① 한 부장검사 : “공수처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으로 성역이던 검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위기감도 안게 됐다.”
② (다른 기사의) 한 부장검사 : “국민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갑자기 추가된 법 조항(검찰이 고위공직자 범죄 인식 시 즉시 공수처에 통보키로 한 조항)의 순수성을 누가 인정해주겠느냐. 불법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③ 수도권의 한 부장급 검사 :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해도 오해를 받는 게 수사기관이다.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수처가 수사를 하면, 그 결과를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
④ 한 검찰 간부 : “문제의 조항 등에 대해 검찰이나 법조계에서 지적을 해도 공수처 자체에 반대를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경향이 있다. 법이 통과된 만큼 언론이나 학계에서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살펴서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지난 7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앉아있는 모습. 사진=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 지난 7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앉아있는 모습. 사진=뉴스타파 보도 갈무리.

“언론·학계, 냉정하게 살펴야”

다음은 한겨레 보도. 한겨레에 등장하는 ‘검찰 관계자’들 우려도 한결 같다.

① 한 검찰 관계자 : “부패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② 또 다른 관계자 : “(공수처가) 빅브라더가 될 것이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수사의 고·스톱을 정하고 뭉갤 수 있다.”

민감할 수 있는 조직 내부 상황이나 입장을 소상히 전달할 수 있고, 불이익이 뒤따를 수 있는 취재원이나 제보자 신변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 보도는 언론들이 크게 선호한다. 하지만 정파적 목적에 따라 익명 취재원이 남용될 수 있다는 점, 독자들은 누가 발언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 등에서 취재 윤리 문제와 충돌해 왔다. 검찰 발 보도와 검찰 출입 기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무분별한 인용 보도에 반성할 지점도 존재한다.

조선일보가 2017년 12월 공표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을 보면, 기사는 원칙적으로 출처와 취재원을 밝혀야 한다. 취재원이 익명의 출처에 의존하거나 자기 일방적 주장에 근거해 제3자를 비판, 비방, 공격하는 경우 그의 익명 요청은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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