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특별사면을 발표하자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머리에 온통 선거만 있는 대통령의 코드사면, 선거사면”이라며 “선거를 앞둔 ‘내 편 챙기기’, ‘촛불청구서’에 대한 결재가 이번 특사의 본질이다.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선거사범, 불법·폭력시위를 일삼은 정치시위꾼까지 사면 대상에 포함해놓고 국민화합이라니”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강신업 대변인도 “내년 총선을 앞둔 자기 식구 챙기기”라며 “일반 형사사범과 야당 인사가 포함됐다고는 하나 구색 맞추기”라고 했다. 

다음날 기사 뿐 아니라 여러 신문사 사설에 야당이 논평에 사용한 단어까지 그대로 등장했다. 

“진영 지키기를 위한 ‘코드 사면’ 유감” (31일 중앙일보 사설)
“법치주의·국민통합 저해하는 ‘코드 사면’ 유감이다” (31일 세계일보 사설) 

특사 명단에 이광재 전 강원지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게 문제라는 취지다.  

▲ 중앙일보 31일자 사설
▲ 중앙일보 31일자 사설

 

국민일보 이날 사설 “균형 잃은 특별사면…총선용 아닌가”를 보면 언론이 특정 정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논란을 양산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신문은 “야권 인사로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 등이 (사면 명단에) 포함됐지만 여권 인사들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며 “이 전 지사 등을 사면하기 위해 구색용으로 야권 인사들을 포함시킨 인상이 든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등 야당의 논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비판이다. 

세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7대 사회적 갈등사건’ 관련자와 선거사범이 포함돼 범여권 인사나 정권 지지층에 치우친 ‘코드 사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사면 당일날 선거사범 사면 관련해 “판결문 당적을 기준으로 여권은 약 26%, 야권은 약 46%를 차지한다”고 이미 반박했다. 그럼에도 일부 신문이 사설까지 동원해 논란을 부추기는 이른바 ‘정파언론’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폭력 시위 한상균 결국 사면, 민노총 세상”이란 사설에서 한 전 위원장 사면을 지적하며 현 정부가 지나치게 민주노총 요구를 들어주고 있어 문제라고 주장했다. 야당 논평과 위 사설들에도 나온 부분으로 전형적인 ‘노조혐오’ 프레임이다.   

▲ 조선일보 31일자 사설
▲ 조선일보 31일자 사설

 

일부 신문에선 긍정평가와 비판을 동시에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정치 관련 선거사범과 정치인 등 267명을 대거 복권한 것은 사면제한 기준 후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며 ‘선거용 사면’이라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한 전 총리 등을 제외한 걸 보면 나름대로 ‘대통령 사면권 제한’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전 위원장에 대해선 노동계와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사설에서 현재까지 사면된 정치인이 정봉주 전 의원 뿐이고 한 전 총리 등이 이번 사면에 포함되지 않은 점, 세월호·밀양송전탑 등 관련자나 한 전 위원장을 사면한 점 등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정치인들을 포함한 걸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면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거나 이로 인해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가 2년 전과 비교할 때 설득력있는 근거 없이 사면기준을 바꾼 것에는 상대적으로 비판이 적었다. 한국일보·경향·한겨레 등이 이 내용을 언급하긴 했지만 대체로 다수 언론은 ‘현 정부가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이들을 사면했다’는데 비판의 초점을 뒀다. 

관련해서 임찬종 SBS 기자의 31일자 취재파일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2013년 1월 특사와 이번 특사를 함께 언급하며 정부가 스스로 내세운 원칙을 내버린 행태를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친인척을 사면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해놓고 이명박 대통령 사돈인 조현준 당시 효성 부사장을 명단에 포함했다. 당시 정부는 ‘사돈이 민법상 인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사면에서도 ‘중대 부패범죄자’를 제외하겠다고 해놓고 이 전 지사나 공 전 의원을 포함했다. 현 정부는 이들이 정치자금법을 위반했을 뿐 부패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임 기자는 현 정부가 2년 전 스스로 이 전 의원을 돈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자라서 사면대상에서 걸렀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부가 갑자기 기준을 바꾼 점, 이명박 정부 당시의 해명과 성격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 30일, 2019년 마지막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습. 사진=청와대
▲ 30일, 2019년 마지막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습. 사진=청와대

 

사회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이후 탄생한 정부가 스스로 정한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언론에선 이를 지적하는데 집중하기 보단 야당에 코드를 맞춘 사설을 써내고 있다. 언론의 화살이 과녁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모습이다. 이번 논란에 청와대 해명을 보면 사실관계 확인 뿐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 수준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특사 관련 청와대 브리핑을 보면 기자가 ‘이광재 전 지사가 10만 달러 가까운 돈을 받았는데 청와대 기준으로 부패범죄로 보지 않느냐’고 말하자 청와대 관계자는 “제가 알기로 2만5000달러”라고 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어 “공 전 의원 경우 (이 전 지사보다) 더 큰 금액(을 받았다)”고 했다. 야권 인사보다 돈을 적게 받았으면 괜찮은 걸까. 

공직자가 돈을 받은 것을 청와대가 부패범죄로 보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데도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정파적 공격으로 이해하고 야권 인사를 끌어들였다. 결론적으로 이 전 지사가 받은 돈은 총 9만5000달러로 공 전 의원이 받은 돈보다 많다. 원칙없는 정부 정책, 언론인 출신이 대거 포진했는데도 기자의 질문에 대처하지 못하는 청와대 홍보라인, 대다수 정파언론의 허망한 정부 비판 등이 함께 만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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