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지난 12월13일자 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중국에서의 파리바게뜨 상표권’ 관련 기사가 파리바게뜨 운영사인 SPC의 5억원 협찬을 약속 받고 삭제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같은 달 22일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독립 언론 기치를 내건 경향신문마저 기사로 뒷거래하는 행태가 드러났다며 실망하는 이들도 있고, 용기 있는 내부 고발이라며 자정 노력을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

[ 관련기사 : 경향신문 너마저 ]

개인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가장 인상적 논평은 엉뚱하게도 다른 기사에 대한 평가인 “이런 기사를 뺄 수 있다면 삼성은 100억이라도 썼을 것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대단한 이유. 그리고 다른 언론에서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페이스북에 “삼성, 직원 연말정산 뒤져 ‘진보단체 후원’ 수백명 색출”이란 한겨레 보도를 공유하며 올린 글의 일부)였다.

▲ 지난해 12월26일 한겨레 1면
▲ 지난해 12월26일 한겨레 1면

필자는 기업과 언론의 유착과 관련한 사건을 논평할 수 있는 나름의 이력을 갖고 있다. 경제매체인 ‘매경이코노미’에서 기자 경력을 시작했고,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에서 일한 뒤 종합일간지이자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에 재직했다. 사실 이런 이력 자체가 진보언론의 경영 사정과 관련이 깊다. 필자가 언론사에 지원하던 2009년엔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많은 언론사들이 채용을 진행하지 않았고, 진보언론 중엔 ‘시사IN’을 제외한 언론사는 신입 직원을 뽑지 않았다. 경제 환경이 나아진 2010년대 이후로도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진보언론 채용 규모는 비슷한 인지도인 종합일간지, 온라인 언론들과 비교해도 훨씬 적었다. 아주 능력이 뛰어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조기에 취업할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경제력이 있어 실업자여도 상관이 없지 않는 한 진보언론만 지망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비겁한 변명일지 모르지만 필자도 취업이 우선이었고, 채용해 준 언론사에 감사해 하며 일했다. 

본의 아니게 여러 언론사를 겪어온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어느 언론사든 주어진 환경에서 언론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인들이 있는 반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언론사가 기형적인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단 것을 알게 됐다.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썼던 ‘언론이 보험이라는 광고를 팔고 있다’는 표현은 이제 공론장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문제는 ‘광고 효과 없는 광고를 파는 상황’에 예외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얼마나 노골적으로 보험 성격의 광고를 파는가가 언론사 실적을 좌우한다. 기사 하나를 삭제하는데 5억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경향신문은 2018년 매출 914억원에 영업이익 91억원이었고, 직원 487명의 평균 근속기간은 16년6개월로 평균 급여는 연 5400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동아일보는 매출 2945억원에 영업이익 529억원, 한국경제는 매출 2361억원에 영업이익 222억원이다. 공시자료가 있어 직원 수와 평균 급여 등의 비교가 가능한 중앙일보의 경우 매출 2808억원, 영업이익 54억원이었고, 직원 634명의 평균 근속연수가 9년인데다 평균 급여는 연 8000만원이었다. 필자가 3년차 경제 매체와 종합편성채널에서 받던 급여는 9년차 진보언론 기자로서 넘지 못했다. 이들 언론사 실적과 언론인들의 급여 차이가 ‘경영 능력’에만 기인하지 않았다는 걸 모든 언론의 경영자들이 알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 기사가 삭제되거나 지면에 나간 기사가 온라인에 보이지 않는다거나, 온라인 기사 제목이 바뀌거나 내용이 변경되는 사례가 부지기수고, 그럴 때마다 모종의 거래가 오간다. 

경향신문 기사 삭제 사태를 보면서 문득 2002년 3월 정치인 고(故) 김근태의 양심고백이 떠올랐다. 김근태 당시 민주당 의원은 2년 전 최고위원 경선 당시 권노갑 전 상임고문에게 2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고, 우리 정치에 불법 자금의 수수가 만연함도 함께 고발했다. 경향신문 사태처럼 당시 김 의원을 둘러싼 여론도 곱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불법 자금을 받을 수밖에 없던 ‘구조’에서 ‘너만 깨끗하냐’는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시간이 지나고서는 당시의 양심고백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 같진 않다. 

▲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이번 사태도 잘못된 행동을 했던 경향신문을 비판해야겠지만 그보다 잘못된 행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언론들과 기업들을 향해 더 큰 비판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성찰적 고발이 나와야 한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필자부터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다. 현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한다. 필자는 기자들이 자사 광고부서의 영업방식을 취재해볼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비판에서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0년대 언론은 나름의 영향력을 이용해 광고 효과 없는 광고를 팔았는데 점점 그 영향력마저 미약해지고 있다. 더 노골적으로 기형적인 수익 모델에 기대지 않는 한 살아남기가 힘든 환경이다. 나쁜 놈들만 살아남는 이 구조를 이대로 놔둘 것인가. 2020년대는 언론의 ‘먹고사니즘’이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대안이 모색되는 새로운 10년이 되길 바란다. 우리 공론장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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