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밝았다. 10년 단위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 중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겠지만, 2020년대는 한국 탈핵정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때이다. 1980년대 집중적으로 건설된 핵발전소 수명이 만료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1983년 월성 1호기와 고리 2호기가 가동을 시작했다. 1985년에서 1989년에는 매년 1~2기 정도의 핵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해 고리 3·4호기, 영광(한빛) 1·2호기, 울진(한울) 1·2호기가 이때 가동을 시작했다. 이들 핵발전소의 설계수명은 40년으로, 2029년까지 모두 수명이 끝난다. 또 다른 핵발전소보다 가동이 늦었지만, 설계수명이 짧은 월성 2·3·4호기도 각각 2026년과 2027년, 2029년 수명이 만료된다.

▲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현재 문재인 정부의 계획대로 노후 핵발전소가 모두 설계수명까지만 가동한다면, 이미 영구 정지가 결정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이외에도 10기의 핵발전소가 향후 10년간 폐쇄될 예정이다. 단순히 계산해보면, 1년에 1기 꼴이다. 현재 운영 중인 핵발전소가 24기임을 생각할 때, 거의 절반에 달하는 핵발전소 수명이 향후 10년간 끝나게 된다.

2020년대 동안 무리 없이 핵발전소를 폐쇄시킬 수 있다면, 핵발전소 없는 대한민국 – 탈핵한국은 더욱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탈핵 한국을 만들기 위한 ‘가장 뜨거운 10년’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 10년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핵발전소 폐쇄 비용이다. 핵발전소 폐쇄는 대략 15~60년 정도 걸린다. 고리 1호기는 15년 정도에 걸쳐 ‘즉시 해체’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핵발전소는 어떤 방식을 택할지 정확하지 않다. 핵발전소 건설 당시처럼 2기씩 모아서 해체하는 방법도 있고, ‘즉시 해체’가 아니라 한동안 방사성 물질이 반감기에 따라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해체하는 ‘지연 해체’ 방식도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는지에 따라 해체 비용이나 인력, 기술 투입 여부가 달라진다. ‘즉시 해체’ 방식으로 빠르게 해체할지라도 15년이라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해체 비용이나 인력이 한꺼번에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10기의 핵발전소를 동시에 해체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해체 비용이 문제이다. 정부는 최근 핵발전소 해체 비용을 7,515억원에서 8,129억원(2018년말 기준)으로 614억원 인상했다. 물가 인상을 감안한 인상이지만, 실제 해체 비용은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 해체 비용은 경수로와 중수로 원자로에 따라 구분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발전소 용량에 따라서도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극단적으로 설비용량이 586MW인 고리 1호기와 설비용량이 2.4배나 큰 신고리 4호기의 해체 비용이 동일하다. 미국 등 핵발전소 해체 경험이 많은 국가들이 개별 발전소마다 해체 비용을 추산하고 발전사업자에게 비용 조달계획을 작성하도록 하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핵발전소 해체 준비는 아직 너무나 미흡하다.

▲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7년 6월19일 고리 원전 영구 정지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7년 6월19일 고리 원전 영구 정지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그렇다고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해체 준비가 아직 안 됐으니 더 가동하자’는 논리는 곤란하다. 모든 기계에는 수명이 있고, 수명이 끝난 기계는 잘 해체하는 것이 정답이다. 옛날 안전기준에 맞춰 건설된 노후 핵발전소의 경우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 안전을 위해 안전한 핵발전소 해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단지 기술적인 과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동안 핵발전소에 일해오던 노동자와 관련 업체, 각종 교부금과 지방세 해택을 받아온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2020년대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 역시 2020년대 탈핵한국으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누구나 새해에는 새로운 꿈과 희망을 꿈꾼다. 2020년대를 시작하는 2020년 새해 아침, 가짜뉴스와 진영 논리에 빠져 합리적인 토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하나씩 바꿀 꿈을 꿔본다. 이런 희망이 현실이 된다면, 2020년대가 끝날 때 즈음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희망찬 2020년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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