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을 김천 도로공사에서 숨 막히게 살면서 견뎌왔는데 2015년 이후 입사자는 빼고 복직시키겠다구요? 모두가 불법파견인데 왜 일부만 직접고용하겠다는 겁니까. 그렇게는 못합니다.”

100일 만에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첫 교섭을 하던 12월11일, 여성 톨게이트수납노동자가 한 말이다. 자신을 2015년 이전 입사자로 이번에 승소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몇 번을 울컥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녀는 김천도로공사에서 두 달 농성을 하면서 경찰과 사측의 괴롭힘으로 몸과 마음이 온통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8월29일 대법원 해고자를 포함해 모두가 불법파견이므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 때문이다. 그러나 9월9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대법원 승소자만 직접고용하고 나머지는 소송결과에 따라 직접고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2015년 이후 입사자는 빼겠다고 했다. 2015년 도로공사는 불법파견 여지를 숨기기 위해 관리자가 요금소에 상주하지 않고 영업소를 순회, 점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꼼수를 사용한 바 있다.

그러나 12월6일 김천지방법원은 순회방식으로 바꾸었다고 해도 여전히 업무 수행과정에서 지휘명령권이 상당하므로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이강래 전 사장은 교섭전날인 12월10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는 향후 법원의 최초 판결에 따라 직접고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무엇보다 부당하게 해고돼 1500명은 계속 불안한 삶을 이어가라는 소리가 아닌가. 설상가상 자회사 설립과 1500명 해고를 단행한 이강래 사장은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사장직을 내려놓았다.

갈라도 갈라지지 않는 그녀들

도로공사는 2015년 이전 입사자들은 직접고용 하겠다고 한 것이니 대다수의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은 투쟁을 중단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2015년 이후 입사자도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에서 똑같은 일을 한 불법파견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법원과 김천지방법원이 이미 판결했듯이 모두가 같이 직접 고용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5년 이후 입사자들은 소수이니 그들만 싸워서 될 일이 아니다. 6개월을 함께 싸웠듯이 함께 승리하겠다고 한다.

실제 지난 10월9일 한국노총 지도부는 도로공사의 2심 계류자들만 직접고용 하겠다는 분열정책에 합의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이를 야합으로 규정했고, 이러한 행태에 탈퇴한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있다.

▲ 지난 9월11일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노동자들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 지난 9월11일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노동자들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충남 노동자뉴스 ‘길’ 제공
▲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충남 노동자뉴스 ‘길’ 제공

사실 요금수납 노동자 6500명 전체가 직접고용 대상자임에도 소송을 건 사람만 직접고용하겠다는 것, 소송에 먼저 돌입하여 결과가 나온 사람만 직접고용 하겠다는 건 시간과 돈이 드는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입장이다. 그런데도 한국도로공사와 노동부, 국토부가 노사전문가 협의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자회사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자회사를 거부한 노동자 1500명을 집단 해고한 것이다. 자회사는 관리비용이 드는 간접고용체제다. 그러다보니 큰 용역회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대량해고사태를 만든 장본인인 한국도로공사는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이를 취하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지치고 힘든 마음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갈라놓겠다는 것이 도로공사의 속셈인 것이다.

그녀들이 만든 정의와 존엄

그러나 톨게이트노동자들은 그들의 분열 책동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6개월을 싸우면서 불의한 사회제도와 마주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하고 단결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살면서 매년 잘릴까 불안해하며 영업소장에게 밥 해다 바치고 성희롱까지 당한 그 억울함으로 시작한 투쟁은 그녀들의 말마따나 “한풀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에 그녀들은 싸우기 전의 ‘불의한 상태’로 맥없이 돌아갈 수가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가짜정규직인 자회사정책을 폐기하고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원래 하던 일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싸움이 끝날 것이다. 톨게이트수납 노동자들의 아래의 말들은 그/녀들의 성장과 변화, 정의에 대한 열망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노총이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도로공사와 야합하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노총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들은 아줌마 아저씨다. 이렇게라도 집에 가서 좋다.’ 그 말 듣고 울었어요. 우리도 가정이 있고 집이 있어요. 그렇지만 조급하다고 그렇게 합의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노조활동하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나만 잘 살면 돼’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우리 조합원들 대다수가 노조한지 1년도 안 되신 분인데 삶이 바뀌었다고 해요.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더불어 사는 게 뭔지 생각해요. 그전에는 연대라는 걸 몰랐으니까요. 올해 정년이 끝나는 언니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말해요. 12월에 퇴임해도 연대하면서 살겠다고. 그 길을 같이 하는 게 뿌듯합니다.” (도명화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장)

“이렇게 평생을 죽기 살기로 세상을 향해서 싸운 게 처음이에요. 상의탈의 싸움하고 (오체투지)기어서 투쟁하는 비정규직이라는 게 가슴 아프고 열통 터집니다. 26년간 3교대하면서 제사 다 지내고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도 투쟁하면서 알았다. 투쟁하면서 하나하나 일굴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 ‘이게 옳다’ 떳떳하게 말하는 게 우리가 자랑스러워요.”(전서정 경남일반노조 지회장)

“처음 해고됐을 때는 우리가 정말 억울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대를 통해서 시야가 넓어져서 전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눈을 뜬 거예요. 비정규직 철폐를 해야만 우리 후세대들이 진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겠다.”(윤주영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조합원)

“해고당하고 보니 너무나 불합리하고 노동자들이 설자리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누가 내 권리 찾아주는 것 아니고 소리 내서 싸워야하는 것 알게 됐어요. 오래 싸우다보니 작은 한마디가 소중한 힘이 되더라구요. 오체투지할 때 지나가는 시민이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그 한마디가 정말 힘이 되고 울컥하는 거예요. 우리가 옳구나 싶고.” (이명금 공공연대노조 톨게이트지회장)

긴 투쟁의 과정에서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이 남긴 말들이 우리에게 울림은 주는 이유는 그 말이 집단적이고 원칙적인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동료들과 손잡고 싸운 사람들이다. 타인의 인권을 외면하는 정의란 있을 수 없다. ‘경쟁과 배신’을 최고의 신념으로 삼고 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노동을 소중히 하듯이, 동료의 노동도 존중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그/녀들이다. 정부와 도로공사는 왜 많은 시민들이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는가를 새겨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옳다며 불의와 싸우면서 스스로 존엄한 인간임을 선언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통해 2020년에 한국 사회에 세울 정의와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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