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정보를 알려줘 안기부 국회 사찰을 확인했다.”

지난 17일 KBS ‘정범구의 세상 읽기’에 출연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다소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정치권을 뒤흔든 국회 529호 사찰 사실을 기자들의 제보로 알게됐다고 밝힌 것이다. 이 총재의 발언은 야당 총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했고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 일각에서 ‘기자 제보설’이 나돌았던만큼 상당한 파문을 던졌다.

이 총재 발언에 대해 ‘529호 사찰’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이신범 의원이 “총재가 잘못 알았다. 기자제보설은 사실무근”이라며 즉각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와 관련 진상조사 차원에서 지난 15일부터 5일간 국회 ‘529호 사찰’ 파문을 조사한 시민단체들이 일부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사전 취재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기자제보설’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529호’ 사건은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한나라당 폭로 이전 취재에 나섰던 것은 사실. 조선일보의 경우 야당 출입기자들이 관련 사실을 추적했고 문화일보는 사진기자가 해당 사무실을 사진 촬영 할 정도로 취재가 진척돼 있었다.

문화일보 정치부의 한 기자는 “안기부원이 국회 529호실을 드나드는 것을 사전에 인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무슨일을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취재 도중에 한나라당이 관련 사실을 폭로해 취재가 수포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문화일보의 경우 한나라당 당직자가 제보해준 것으로 알려져 ‘기자제보설’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선일보도 야당에 출입하는 한 기자가 ‘박스’용으로 취재중이었을 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해당 신문사의 정보 소스도 대부분 한나라당이 진원지였고, 일찌감치 529호 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자제보설’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감안한다면 한나라당이 오래전부터 ‘529호’실을 주시해 왔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 기자들에게 ‘대형 사건’을 귀뜸해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일보의 한 정치부 기자는 “정치인이든 검찰이든 툭하면 기자를 물고 늘어지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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