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운동을 다룬 영화 ‘노마 레이’는 노조 설립 캠페인을 다룬다. 우리나라는 직원 몇십만 명짜리 회사라도 단 2명만 있으면 노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2010년부턴 복수노조까지 허용돼 아무나 노조를 만들어도 제약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노조를 만들려면 그 회사 직원이 투표해 일정한 비율 이상이 찬성해야만 가능하다. 투표를 앞두고 노사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노조 설립 찬반 홍보전을 펼친다. 우리처럼 미국도 노사문제는 쉽지 않다. 노동조합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회사와 언론의 방해를 뚫고 노조 설립 투표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다. ‘노마 레이’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사 갈등을 다룬다. 

▲ 영화 노마 레이 (Norma Rae) 스틸컷.
▲ 영화 노마 레이 (Norma Rae) 스틸컷.

 

우리가 보기엔 우스꽝스럽지만 이 제도는 미국 노사관계의 오랜 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이 그렇듯 한국의 노사관계도 역사의 산물이다. 특히 한국 노사관계가 극한 대립을 치닫는 것도 그렇다. 우리 언론은 이 역사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 전 대통령이 새 법무부장관 후보로 추미애 의원을 지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언론은 ‘추고집’ 또는 ‘추다르크’의 사례로 2009년 여름 비정규직법(기간제법) 개정 국면에서 보인 추 의원의 모습을 부각했다. 

추미애 의원은 2009~2010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집권 한나라당은 기간제 비정규직을 고용해 2년을 넘기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던 비정규직법의 고용의제 기간을 4년으로 늘리려는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추 의원은 환노위 위원장이란 자리를 이용해 기존대로 2년 안을 고수해 끝까지 관철했다. 격분한 홍준표 당시 원내대표가 “일하기 싫으면 배지 떼고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퍼부었지만 추 의원은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보수언론은 독불장군 환노위 위원장 때문에 대거 실업자가 양산된다며 이를 ‘추미애 실업’이라고 이름 붙여 조롱했다. 근거는 없었다. 

사실 2년, 4년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불가피한 비정규직에겐 차별을 없애는 게 더 중요했다. 아무튼 2009년 여름 노동계는 추 의원 덕을 봤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뒤 추 의원은 특유의 고집으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를 명문화한 노조법 개정을 노동계와 민주당의 반대에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노동계는 추 의원에게 격분했고, 민주당은 당론에 반한 결정을 내린 추 의원을 징계해야 했다. 

특히 추 의원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사용자의 동의하에서만 가능토록 했다. 이는 노동계가 30년 이상 복수노조 허용을 요구한 근본 취지를 뒤흔들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2월9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 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2월9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 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추미애법(노조법) 때문에 수많은 노조가 파괴됐다. 사업장마다 회사의 암묵적 지원을 받는 복수노조가 속속 들어섰다. 민주노조는 회사와 손잡은 어용노조와 2:1로 싸워야 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교섭비용 절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기대어 민주노조에게 교섭할 권리를 제한하고 회사의 간택을 받은 노조만 살아남았다. 

물론 수십년째 복수노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아무 준비도 못한 노동계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고, 추 의원 개인의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9년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친 추미애 국회 환노위 위원장이 보인 행보는 ‘추고집’ 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에 가깝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