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받은 이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거세지만 돈을 준 이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돈을 준 당사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월 13일자 경향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되려다 삭제된 기사의 이야기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사의 삭제 요청과 대가 제의는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를 운영하고 있는 SPC그룹에서 나왔다고 한다. 비록 경향신문 기자협회의 성명과 자사의 기사로 공개 사과가 이뤄졌고 후속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사건을 보는 독자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유력 중앙일간지, 그것도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사가 어떻게 그런 거래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의 또 다른 당사자인 SPC에 대한 의문과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SPC는 경향신문사에게 5억 원이라는 막대한 협찬금을 기사 삭제의 대가로 주겠다고 했을까? SPC는 그동안 경향신문에게만 그러한 기사 거래를 제안했을까? SPC 이외의 다른 대기업들과 다른 언론사의 기사 거래를 없었을까? 언론사가 특정 기업과 관련된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한 경우, 또는 아예 기사의 출고를 막거나 취재를 중단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기업과 언론사의 거래가 이뤄질 때면 늘 사건의 조사와 관계자 징계, 후속 대책 마련은 언론사의 몫이었다. 또 다른 당사자인 기업은 사과는커녕 몇 줄의 입장조차 낸 적은 거의 없다.

생각해 보면 기업이 보는 뉴스의 가치란 기자와도, 또는 일반 독자와도 다르기 때문이 아닐지. 대체 5억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제안할 만큼의 기사는 어떤 기사인가. 기업이 자사에 불리한 기사의 삭제나 수정을 요구하며 지급하는 대가가 원고료는 아닐 것이다. 기사로 인해 닥칠 영업 비밀의 누설, 경쟁사 대응, 주가 하락, 정부 규제 강화 등 아직 오지 않은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달리 말해 해당 기사가 공개될 경우 기업에 발생할 직간접적 손실의 규모가 바로 뉴스의 가치가 되는 셈이다.

▲ 사진=이치열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 사진=이치열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기업이 보는 뉴스의 가치란 이렇게 미래를 염두에 둔 철저히 경제적인 가치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뉴스의 가치란 무엇인가? 포털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읽는 뉴스란 과거에 벌어진 사건 중 주목해야 할 소식이다. 언론학 교과서에서 저명함, 중요성, 영향력, 일탈성, 시의성, 흥미 등을 기본적인 뉴스 가치로 꼽는 것은 수많은 사건 중 어떤 것이 뉴스로서 적합하며 타당한가라는 규범이었다. 그러나 지금 뉴스 환경에서 그러한 가치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더 빨리 노출되는 기사, 원칙도 알 수 없는 알고리듬이 배열하는 기사가 뉴스의 가치를 결정한다. 이러한 뉴스 가치는 인터넷 기사에 얹어진 광고의 노출로 환산되어 언론사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종이신문 1면의 몇 단 기사건, 인터넷판의 뉴스 콘텐츠건 어느 것에 더 많은 노고가 들어갔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발품을 팔고 어렵게 취재한 정보로 쓴 종이신문 1면의 기사가 독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코딩과 디자인으로 공들인 인터넷 뉴스보다 기업에게는 더 많은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경제적 가치를 위해 지불하는 5억 원 짜리 기사와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 알고리즘의 가치로 부여된 조회수 당 몇 원의 기사로 비교되는 시대가 지금이다.

경향신문이 5억 원을 대가로 기사를 삭제했다는 소식보다 한 기업이 5억 원을 들여 미래의 가치를 보전할 수 있다는 소식이 더 충격적이다. 돈이 되는 뉴스의 가치란 더 이상 지사적 언론인이 고집해 온 가치, 이 사회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실이라는 가치가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 지형을 말할 때 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은유는 바뀌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치적 편향이나 시장 지배력의 쏠림 현상이 아니다. 뉴스 가치를 전혀 다르게 보는 두 독자 집단, 기업과 인터넷 이용자라는 두 집단의 비대칭이 오늘날 한국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 지난 22일 경향신문 사과문.
▲ 지난 22일 경향신문 사과문.

그래서 경향신문의 공개사과 기사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사 거래가 비단 경향신문과 SPC 간의 거래만이 아니라면, 이번 사건을 스스로 공개하고 사장 이하 관련 국장의 사퇴를 결정한 경향신문 종사자들의 결단은 어떤 가치를 갖는가. 누군가는 은밀하게 수 억원의 가치를 거래할 때, 경향신문을 아끼고 한국언론을 걱정하는 독자들은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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