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3일 조국 전 장관 교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영장 심사를 받으려고 서울중앙지법 포토라인에 서자 카메라 플레쉬가 터졌다. 언론사마다 얼굴 공개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정 교수 얼굴을 실었고,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정 교수를 공인으로 봐야 하는지 논쟁이 뒤따랐다. 얼굴을 공개한 신문사도, 얼굴을 미공개한 신문사도 별도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등산 점퍼 차림에 기차를 타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을 실은 매체는 삼성 공식 일정이 아닌 지인과 여행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공적’ 인물인 이재용 부회장이 여행 가는 ‘사적’인 모습을 찍어 보도하는 것은 괜찮은 걸까.

서강대에서 헌법을 전공(박사)하고 현재 언론중재위원회 교육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수종 본부장은 ‘독일 초상권 이론과 사례’라는 책을 냈다. 초상권 보호와 언론 보도 자유의 경계에 독일 사회가 쌓아온 수많은 판례를 살폈다.

지난 2010년 8월 할머니, 딸, 손자로 구성된 한 가족은 주택조합이 개최한 임차인 행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주택조합은 자신들이 발간하는 브로슈어에 이들 가족이 음식을 먹는 사진을 실었다. 가족은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독일 재판부는 임차인 축제가 지역사회의 중요한 사건에 해당하고 ‘시사적 사건’을 보도할 권리를 주택조합이 갖는다고 판시했다.

독일 예술저작권법에 따르면 초상은 촬영대상자의 동의 하에서만 전파되거나 공개될 수 있다. 다만 시사적 영역의 초상 등은 예외로 둔다. 공인에 대한 초상권은 독일 사회에서도 오랜 논쟁을 거쳤다. 독일연방대법원은 공인의 초상 공개와 관련해 해당 인물이 ‘시사적 인물’의 개념에 속하는지를 중요하게 봤다. 하지만 유럽인권법원은 시사적 인물이란 개념이 낡았다고 봤다.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찍어 실은 연예인 전문 잡지에 소송을 제기했다. 1995년 독일 연방법원은 시사적 인물의 초상은 공중의 알권리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004년 유럽인권법원은 해당 보도는 유럽인권협약에 따라 사생활 및 가정존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캐롤라인 공주가 공직을 맡고 있지 않고, 해당 보도가 ‘공적 이익의 토론에 기여’하지 않는 점 등을 사유로 들었다.

▲ 채널A 보도화면.
▲ 채널A 보도화면.

재판 받는 유명인은 초상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지난 2011년 독일 기상캐스터 카첼만은 강간혐의로 미결구속 상태에서 형사재판을 받았다. 한 잡지는 카첼만이 변호사 사무실 입구 앞 도로에 서 있는 사진을 실었다. 이에 카첼만은 사진 게재를 금지해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하지만 연방헌법재판소는 문제된 사진과 보도는 대중의 큰 관심이 뒤따르는 ‘시사적 사건’이라며 잡지사 손을 들어줬다.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혐의 단계에서 유명인 보도에 대한 독일 재판부 판결은 어떻게 될까. 1998년 독일 유명 TV 연속극에 출연한 남성 배우는 맥줏집에서 코카인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에 한 연예 잡지는 남성 배우의 실명과 함께 그의 사진을 실었다. 그러자 배우는 해당 기사를 보도하지 않도록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독일 함부르크 지방법원은 가처분을 인용했다. 하지만 헌법소원재판에선 결과가 뒤집어졌다. 헌법재판소는 “남성배우가 공적 생활의 인물로 분류될 정도로 유명하고 체포와 형사절차에 관해 공중이 정보를 얻을 이익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독일은 범죄 보도에선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보장된 무죄추정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균형잡힌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이 본부장은 책에서 “범죄행위의 비난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재판의 무죄선고 이후에도 피고인을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그러한 범죄로 비추지게 될 위험에 부딪힌다”며 ‘무죄판결이 내려질지도 모르는 상태를 염두에 둔다면 피고의 얼굴을 공개한 정보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를 소개했다.

이 본부장은 “고위 공직자의 사진 공표는 언제나 가능한지, 정치인의 사생활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노출돼도 되는지,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진촬영도 감수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 사례에 직면하게 될 경우 누구라도 선뜻 합당한 판단기준이 떠오르거나 그 결과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며 독일의 초상권 법리 형성에서 인간적 사고가 일관되게 준수된 점은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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