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중국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처음으로 회담했지만 해당 문제에선 입장차만 확인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50분간 진행한 한일정상회담 이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강제동원 관련해 양 정상은 서로 입장 차를 확인했다”며 “다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모아졌다”고 했다. 최근 한일관계와 비교하면 유화 분위기지만 사실상 최근 한일관계를 악화한 핵심이슈를 비껴간 셈이다. 

예견된 결과다. 문재인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베 정부도 태도 변화도 없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12월24일 쓰촨성 청두 세기성 국제회의센터에서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12월24일 쓰촨성 청두 세기성 국제회의센터에서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피해자(피해국)는 진상규명, 즉 피해인원·종류·범위 등을 조사해 실체적 진실을 밝힌 뒤 사과·배상·책임주체 처벌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 패전 이후 현재까지 강제동원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협상카드로만 쓰고 있다. 연구자들이 대신 강제동원 규모를 연인원 700만명 이상(중복제외 200만명)으로 추산할 뿐 현 정부는 일본을 포함해 국내외 흩어진 자료수집에 적극 나서거나 피해신고를 받지 않는다. 

강제동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이 긍정 반응을 보인 한국 쪽 제안을 보면 모두 ‘돈을 받고 일본에 추가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위안부합의가 그렇고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1+1+α(한일기업과 국민의 자발기금)’안도 그렇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역시 일본 쪽에선 이 협정으로 강제동원 문제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모두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피해자를 무시한 굴욕외교’라고 거센 비판을 받았다. 

가해자(가해국)인 일본의 일관된 현재 입장이 그들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가해자(가해국)이 알아서 사과하는 일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 태도가 옳다는 뜻과 무관하다. 종종 독일을 일본과 대조하지만 독일 역시 1960년대까지 나치당 출신이 총리를 하던 나라였다. 나치 피해자(유대인)들이 중심인 이스라엘에서 꾸준히 진상규명에 힘쓴 결과 독일 시민이 움직였고 독일 정부의 입장을 바꿔냈다. 

▲ 부산 일본영사관 앞 강제동원 노동자상. 사진=노컷뉴스
▲ 부산 일본영사관 앞 강제동원 노동자상. 사진=노컷뉴스

다시 말해 아무리 보편적 인권 등 당위를 강조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먼저 진정성 있게 피해조사에 나서지 않는 한 강제동원 문제가 한일 간 힘겨루기 수단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조사에 나선다고 일본에서 즉각 태도를 바꾸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 정부가 현 입장을 유지하면 일본의 변화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는 게 선례의 교훈이다.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 일부를 완화했지만 힘겨루기 양상은 여전하다. 지난 20일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소재 중 하나를 특정포괄허가 대상으로 변경했다. 여러 매체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소한의 대화의지를 비쳤다”면서도 “근본 변화는 아니”라는 신중론을 함께 전했지만 한일 간 치킨게임에서 일본이 꼬리를 내렸다는 관점이었다. 아베 총리는 24일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거나 “북한 문제 등을 위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며 온건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 정부는 비판 수위를 높였다. 중국과 협력에 방점을 찍은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넘겠다”거나 자유무역을 수차례 강조하며 일본 수출규제를 비판했다. 비슷한 시각 한일 외무장관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제를 조율하는 자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풀어야 하고 일본의 강제동원 입장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한 배경이다. 

오는 27일 헌법재판소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 현재로선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해당 합의가 위헌이라는 판단이 나와도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헌법소원 대상까진 아니’라는 입장을 가진 외교부도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위헌이 아니라는 판단이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또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 현 정부가 인권침해의 역사문제를 외교수단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대화를 반복한다고 해결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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