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JTBC 사장이 23일 앵커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자 JTBC 기자들이 이날 밤 유례없는 긴급총회를 열었다. 대다수 기자들이 당일까지 이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내부에선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JTBC 한 기자는 “지난주까지 1월 개편을 준비하던 모습을 보면 내려올 생각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손 사장은 왜 물러나는 걸까. JTBC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담긴 ‘세대교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다. 

손석희 사장이 앵커직에서 물러나는 상황은 단순히 메인뉴스의 ‘간판’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보도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일이다. 손 사장이 앵커직에서 물러나면 메인뉴스의 틀을 잡는 오후 편집회의에 들어갈 명분이 없어진다. 6년4개월간 보도 방향과 주요 아이템을 잡아 온 구심점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수많은 이해관계로부터의 ‘압력’을 막아주던 방패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JTBC의 한 기자는 “내부에서 조국 보도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외부에 (불만이) 과포장됐다”고 전하며 “지금 손 사장이 앵커직에서 내려오길 바라는 기자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들은 총회의 결과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내놨다. “JTBC의 보도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온 앵커의 갑작스러운 하차에 반대한다. 이번 앵커 하차는 보도국 구성원들이 배제된 채 결정됐다. 이에 우리는 보도 자율성 침해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우리는 사측의 책임 있는 설명을 요구한다.” 

▲JTBC 보도국에 붙은 JTBC 기자회 성명.
▲JTBC 보도국에 붙은 JTBC 기자회 성명.

JTBC의 또 다른 기자는 “내부에서 (하차 소식에) 우려가 많다. 사장이 우리 뉴스의 버팀목인데 시청률이 더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언젠가는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어 “그만두게 된 게, 정말로 본인의 의지였는지, 오너가 그만하고 나가라고 한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은 “회사에서 먼저 손 사장에게 하차를 제안했다”는 복수의 증언을 JTBC 내부에서 확보했다. 여기서 ‘회사’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홍정도 JTBC·중앙일보 사장 이하 오너 일가다. 이들이 수개월 전부터 손 사장의 ‘하차’를 종용했다는 것. 취재 결과에 따르면 손 사장은 지난 10월부터 본격화된 오너의 ‘요구’에 자신이 예상했던 시기보다 하차 결정을 앞당겼다. 

손 사장이 보도 일선에서 물러나면 시청률·영향력·신뢰도 하락이 자명한 상황에서 오너는 왜 이 같은 선택에 나선 걸까. 삼성 일가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주진우 기자는 24일 통화에서 “홍석현은 끊임없이 삼성 이재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삼성과 가까운 중앙일보 간부들도 지속적으로 손 사장 퇴진을 요구해왔다”고 말하며 “손 사장의 앵커직 하차는 홍석현과 삼성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국정농단 당시 JTBC의 삼성보도화면 일부 갈무리.
▲2017년 1월 국정농단 국면 당시 JTBC의 삼성보도화면 일부 갈무리.

앞서 국정농단사태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앞장서서 비판 보도했던 JTBC가 ‘외삼촌이 세운 회사’라는 점에서 삼성의 당황스러움과 분노는 상당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2017년 2월 구속 수감되고 직후인 그해 3월 홍석현은 중앙일보·JTBC회장직에서 물러나며 쫓겨나듯 삼성생명일보 집무실을 떠났다. 이후 중앙일보·JTBC에 대한 삼성의 광고 집행은 급감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년 전 국정농단 국면에선 오너 일가가 손석희를 지키는 선택을 했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가 절반을 넘어서고 조국 사태를 거친 지금은 다르게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JTBC 내부에서도 “오너쪽이 먼저 하차를 제안했다”, “오너의 압박이 거셌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과 별개로 홍 회장이 내년 총선 전후로 자신의 정치 행보를 위해 압박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선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 

JTBC 보도국은 오너의 요구에 의한 강제 하차가 사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JTBC의 또 다른 기자는 “오너의 보도국 침해 아니냐는 내부 분위기가 있다”고 전하며 “손 사장이 하차한 뒤 JTBC가 조중동 프레임에 갇혀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은 2013년 5월 손 사장의 JTBC행이 결정됐을 때부터 언젠가는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국면이다. JTBC 기자들의 판단이 중요해졌다. 손석희 사장은 오늘 중 이번 하차결정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손석희 JTBC 사장. ⓒJTBC
▲손석희 JTBC 사장.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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