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동남아 살아보기)’ 제작진이 간호사·의사를 성적 대상화 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을 자막에 넣어 비판 받았다. ‘동남아 살아보기’는 출연진이 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그곳의 언어 등을 배우며 사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EBS 옴부즈맨 제도인 시청자위원회(시청자위)가 최근 공개한 11월과 12월 시청자위 회의록을 보면 동남아 살아보기 여러 편에서 부적절한 장면이 다수 등장했다. 김현식 시청자위원은 “디테일 오류 한두 가지가 프로그램 전체 콘셉트를 뒤흔든다”며 문제 장면들을 꼽았다. 

지난 11월20일 열린 시청자위 회의록에는 지난 9월12일 태국 방콕 편 방송에서 출연자 정석용씨가 현지 병원을 방문해 간호사와 의사에게 진료 받는 장면이 나온다. 제작진은 정씨가 의료진에게 이성으로 반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만들었다. “50세 순수 총각의 마음을 녹여주는 백의의 천사”, “상대는 못 알아듣는 애교”, “진짜가 나타났다”, “50세 순수 총각의 심장이 요동친다”, “제 가슴이 이상하게 뛰고 있어요” 등의 자막을 넣었다.

▲ 지난 9월12일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 방송 중 여성 의료진을 대상화하는 장면. 사진=EBS 화면 갈무리
▲ 지난 9월12일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 방송 중 여성 의료진을 대상화하는 장면. 사진=EBS 화면 갈무리

EBS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는 방송 이후 “여성 의사가 등장하자 뽀샤시 처리하며 ‘진짜가 나타났다’ 이런 자막을 넣고 나이 많은 남자가 히죽거리는 모습을 자꾸 강조하다니요. 안 그래도 간호사 성적 대상화는 여러 곳에서 지적하는 문제인데 교육방송이 뭐하는 짓입니까”라며 “남자 간호사, 남자 의사였어도 똑같이 방송했을 것입니까”라는 비판 글이 올라왔다. 이에 제작진은 “순수한 노총각의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지만 미숙했다”며 답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교육방송에 부적절한 자막이 등장했다. 

▲ 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
▲ 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

김 위원이 지적한 내용을 보면 10월31일자 방송 인도네시아 말랑 편에서 출연자가 집주인에게 월세를 깎아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서 “온갖 교태”라는 자막을 썼다. 11월7일자 방송을 보면 출연자가 아쉬워하는 장면에서 “질척”이란 자막을 썼다. 

11월14일자 방송에선 출연자 황보씨가 현지 미용실을 방문해 머리 손질을 끝내고 황보씨와 제작진의 대화 중 제작진이 “남자들은 예쁘면 다 좋아해요”라고 하자 이를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며 ‘팩트체크’라는 말까지 달아 자막으로 넣었다. 또 이날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을 가리켜 “얘들이”란 표현이 여과 없이 나왔다. 김 위원은 “짧은 한마디지만 편견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다”고 꼬집었다.

11월21일 방송에서 한 폭포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미망인”이란 표현을 자막에 넣었다. 미망인은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지만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의 잘못된 표현이다. ‘배우자’, ‘남편이 사망한 배우자’ 등 다른 표현을 권장한다. 

11월 시청자위 제언반영 결과를 보면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한 멘트인데 제작과정에서 간과했다”며 “종합 검토하고 추후 제작에 유의하겠다”고 답했다. 

▲ 11월14일 동남아살아보기 방송 화면 갈무리(위), 11월21일 동남아 살아보기 방송 화면 갈무리(아래)
▲ 11월14일 동남아살아보기 방송 화면 갈무리(위), 11월21일 동남아 살아보기 방송 화면 갈무리(아래)

12월 시청자위에서도 해당 프로그램 관련 내용이 나왔다. 지난 18일자 회의는 지난 2년 시청자위원들의 임기를 마치는 날로 연간 리뷰형식으로 진행했다. 

이날 회의록을 보면 11월 회의에서 문제를 지적했던 김 위원은 시청자위 이후에도 개선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8일 방콕 편을 재방송했는데 제작진은 별다른 조정 없이 본편을 그대로 내보냈다”며 “문제점이 두드러졌던 인도네시아 말랑, 수라비야 등 방송편도 (그래도 내보냈다)”고 했다. 

EBS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김민문정 위원은 “다양성의 가치는 단순히 출연자를 다양하게 구성한다고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 뒤 “‘다문화 고부열전’과 ‘동남아 살아보기’ 모니터링 결과에서 지적한 것처럼 프로그램 구성에 따라 특정집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편견이나 낙인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자칫 편견·낙인을 강화할 위험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다문화 고부열전은 시청자위 뿐 아니라 시민단체, 언론에서도 편견을 강화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어 “예를 들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제작진이 프로그램 구성·편집 과정에서 확인할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참조하도록 하고 최종 점검 과정에서 다시 확인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한다”며 “체크리스트가 있으면 외주 제작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의 문제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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