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또다시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 논란이 일어났다. 경향신문은 지난 13일 산업부 소속 기자가 쓴 SPC 관련 기사를 기업 협찬금을 받기로 하고 삭제했다. 지난 3월엔 경제부 기자들이 준비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출고가 막혔다.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기업 관련 기사의 출고가 막히거나 삭제됐다. 경향신문 내부에서는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를 두고 우려가 나온다.

▲ 사진=이치열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 사진=이치열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회장 박효재)는 지난 22일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지난 13일자 경향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A기업 기사가 해당 기업의 요청을 받고 제작과정에서 삭제됐다. A기업은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금 지급을 약속했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다.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다”고 사건의 개요를 밝혔다.

경향신문지회는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사장, 국장, 해당 기자 면담을 거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지난 19일 기자총회를 열었다”고 적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경향신문지회가 성명서에 쓴 A기업은 SPC그룹이었고, 5억원의 액수가 거론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취재원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홍아무개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는 지난 13일자 1면에 “SPC그룹의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가 중국에서 상표등록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중국 법원이 해당 상표등록이 무효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SPC는 즉각 항소할 예정이지만, 유통업계에서는 롯데 등에 이어 또다시 ‘중국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할 예정이었다.

이어 경제 22면 머리기사에는 “중국 법원이 파리바게뜨(PARIS BAGUETTE)의 상표등록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SPC그룹은 현재 300개 이상의 파리바게뜨를 중국에서 프랜차이즈로 운영 중이다.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유지되면 파리바게뜨는 간판 등을 다른 형태로 전부 바꿔야 해 모그룹인 SPC는 총력 방어전에 나섰다”는 기사를 보도할 계획이었다.

▲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SPC 측은 해당 기사 내용을 인지해 박문규 경향신문 광고국장에게 전화했다. 광고국장은 이동현 경향신문 사장에게 이 소식을 보고했고 이 사장은 ‘기사 내리려면 기존 금액의 10배를 내라. 기사를 어떻게 내리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답변했다.

문제는 광고국장이 사장의 발언을 SPC 측에 전하자 SPC 측이 이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SPC 측은 기사 삭제 대가로 5억원을 제안했다. 이 사장은 기사를 쓴 홍아무개 기자에게 1면에서 이 기사를 내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홍 기자 역시 사장의 이야기를 거절할 수 없어 회사의 방침에 따르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최병준 편집국장도 홍 기자에게 전화해 의사를 물었고, 홍 기자는 같은 답변을 했다. 미디어오늘은 23일 이동현 사장과 최병준 편집국장에게 관련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답하지 않았다.

기사가 삭제되고 홍 기자는 지난 1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경향신문지회는 지난 19일 기자총회를 열고 사태를 파악했다.

경향신문지회는 기자총회 후 의견을 모아 성명서를 작성했고, 22일 오후 사내게시판에 성명서를 올렸다. 작성한 성명서는 일부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기사로 작성됐고, 오후 5시42분 온라인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보도 이후 기사는 한 차례 삭제됐다. 경향신문지회는 오후 7시27분 내용 일부를 수정해 온라인에 다시 올렸다.

▲ 지난 22일 보도된 경향신문 사과문.
▲ 지난 22일 보도된 경향신문 사과문.

한편 경향신문지회는 책임자들의 총사퇴를 포함한 5가지 요구안을 걸었다. 지회는 △이동현 사장은 즉각 모든 직무를 중단하고 신속히 차기 사장 선출 절차에 착수하고 △최병준 편집국장과 박문규 광고국장도 모든 직무를 중단하고 사규에 따라 이들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회는 △A기업이 약속한 협찬금의 수령 절차를 중단하고 △기자협회, 노동조합, 사원주주회가 포함된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을 내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향신문 사측은 노동조합과 사원주주회, 기자협회 등 직능 단체와 오후 4시부터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 만남을 갖는다.

[기사 수정 : 23일 2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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