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죠. 답답하네.” (박상수 방송통신심의위원) 12월1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원회. ‘프로듀스101’ 조작 논란에 따른 객관성 위반 심의에 의견 진술자로 강지훈 엠넷 콘텐츠운영전략팀장이 나왔다. 아래는 그가 심의위원들과 나눈 질문·답변의 한 대목. 

“순위조작이 있었나, 없었나.” “정확한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아 말할 수 없다.” “사과와 보상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보상은 어떤 걸 말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누구에 대한 어떤 보상인가.” “그 부분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검찰의 기소에 대해 회사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정확한 사실관계가 파악된 거라고 보고 있지 않다.”

이날 강지훈 콘텐츠운영전략팀장은 “사실관계 파악이 안 됐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답이 어렵다”, “제가 아는 바가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할 수 없다”며 진술 내내 즉답을 피했다. 당장 “정상적인 회사라면 원 데이터 파악을 해서 시청자 사과와 후속 절차를 이야기해야 맞는 건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이소영 위원)는 지적과 “회사 차원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철저하게 개인 문제로 다루는 것 같다. 의견 진술 진행이 무의미하다”(박상수 위원)는 비판들이 나왔다.

▲'프로듀스101' 시리즈 순위 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된 안준영PD. ⓒ연합뉴스
▲'프로듀스101' 시리즈 순위 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된 안준영PD. ⓒ연합뉴스

의견진술에 기대를 걸었던 시청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엠넷을 비롯해 CJENM 계열 PP들의 이 같은 답변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디어오늘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받은 2017년~2019년 10월 기준 CJENM 계열사의 법정제재 건 의견진술 여부를 보면 서면진술이 32건, 출석진술이 20건으로 출석보다 불출석이 많았다. 같은 기간 지상파3사는 법정제재 43건 중 출석진술이 42건, 서면진술은 1건에 불과했다. 종합편성채널4사는 법정제재 33건 중 서면진술이 0건이었다. ‘보는 눈’이 많지 않았다면 아마 이번에도 서면 진술로 대체했을지 모른다. 이 같은 통계는 지금껏 CJENM이 자사의 프로그램 논란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보여준다. 

CJENM에는 견제장치가 없다. CJENM계열 PP들은 재허가·재승인 대상이 아니어서 심의기구의 제재가 무섭지 않다. PP들은 등록형태로 운영되는데 담당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PP를 등록 취소한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엠넷을 TV편성표에서 없애려면 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채널 송출 계약을 하지 않는 방안이 사실상 유일한데, CJENM이라는 독점적 MPP사업자의 계열PP인 엠넷의 지위를 볼 때 현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노조도, 협회도 없는 CJENM은 사실상 내·외부 견제없이 지금까지 달려왔다. CJENM은 수년 전부터 지상파·종편보다 높은 채널 영향력을 갖게 됐지만 방송통신발전기금도 안 낸다. 

▲CJENM. ⓒ연합뉴스
▲CJENM.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엠넷의 2018년도 콘텐츠 제작역량을 ‘매우 우수’ 등급으로 평가했다. 제작역량 상위 15% 채널만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다. 평가 기간이던 2018년 당시 엠넷은 ‘프로듀스48’에서 순위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개 항목의 콘텐츠 제작역량 세부 평가지표를 보면 △콘텐츠 인건비 △자기자본 비중 △제작비 규모 △신기술활용 제작 콘텐츠 초방편성시간 △국내시장 판매량 △국내시장 방송사업수익 규모 △시청점유율 등으로,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의 문제나 내용상 잘못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은 ‘방송심의 준수 여부’가 유일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제재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선 감점이 불가능하다. 올해 법정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2019년도 평가에서도 엠넷은 ‘매우 우수’ 등급을 받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엠넷이, CJENM이 시청자들 앞에 머리를 숙일 리 없다. 

지난 17일 프로듀스 진상규명위원회는 “스스로 피해자라 지칭하고 있는 CJENM은 수사가 진행되고 공소가 제기되어 재판이 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에 대한 어떤 진지한 자세도 보이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며 “연습생의 꿈을 짓밟고 국민 프로듀서를 기망한 한국 대중문화역사의 진한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엠넷과 CJENM은 답이 없다. 그들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조작방송’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방통위, 과기정통부, 시청자가 모두 CJENM의 ‘죄’를 실질적으로 묻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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