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M&A) 관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Investor State Dispute)에서 패소했다. ISD는 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 정부가 ISD에서 패소한 첫 사례다. 정부는 소송 당사자인 이란 디야니가문에 73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 23일자 동아일보 4면.
▲ 23일자 동아일보 4면.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 20일 한국 정부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 사건의 ISD 패소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지난해 6월 UN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포함한 한국 채권단의 잘못이 있다며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의 최대 주주인 디야니가문에 계약 보증금과 이자 등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외환위기 때 캠코와 우리은행 등이 포함된 채권단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채권단은 자금 회수를 위해 2010년 4월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5778억원 매매계약을 맺었다. 엔텍합은 한국 채권단에 578억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엔텍합이 인수대금 지급일을 지키지 못하자 한국 채권단은 계약금을 반환해주지 않은 채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추가 매각 입찰을 거쳐 2013년 동부그룹에 인수됐다. 동부그룹은 동부대우전자로 이름을 바꿨다. 동부대우전자는 지난해 중견 가전회사 대유위니아를 가진 대유그룹에 인수돼 ‘위니아대우’가 됐다.

▲ 23일자 경향신문 1면.
▲ 23일자 경향신문 1면.

23일 이를 다룬 아침신문들의 논조는 비슷했다. 아침신문에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에서, 경제지에서는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등이 이 소식을 다뤘다. 신문들은 “문제는 이 소송 외에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ISD가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면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5조 3000억원 규모의 배상 요구를 비롯해 미국계 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시 정부 개입으로 손해를 입었다면서 각각 제기한 8600억원, 2000억원 규모의 배상 요구 등 ISD가 줄을 잇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현재까지 ISD 관련 청구액만 9조원을 웃돈다. 이미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쓴 ISD 변호사 비용 등을 위해 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향후 소송 결과도 불투명해 ISD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론스타·엘리엇 소송 결과를 우려했다. 동아일보는 4면에서 “정부가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건 소송 금액이 5조원에 이르는 론스타의 ISD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했다며 ISD를 제기했다. 이 소송의 최종 심리는 2016년 6월 종료됐지만, 판정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지연되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개입해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이유로 1조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 23일자 한국일보 사설.
▲ 23일자 한국일보 사설.

신문들은 정부와 투자자 승소율 3:7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대응을 단단히 하고 ISD 폐해를 겪는 사례가 많아져 양국 간 투자협정이나 FTA에서 ISD를 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더 이상 혈세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응체제 개편이 시급하다”고 주장한 뒤 “정부 주권 훼손 우려로 최근 국가 간 협정에서 ISD 조항 제외가 대세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2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ISD 조항을 삭제했다. 국익의 관점에서 ISD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시작해야 한다”고 썼다.

▲ 23일자 경향신문 사설.
▲ 23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ISD는 투자자 보호가 핵심으로 최근 기업 승소율은 70%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끊임없이 폐기 또는 개선을 주문해왔다”고 쓴 뒤 “정부는 당장 ISD 개선에 나서야 한다. 론스타 사례처럼 ‘페이퍼 컴퍼니’까지 제소가 가능토록 한 조항은 없애야 한다. 막대한 소송비용 유출을 막기 위한 국제 소송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고 했다.

▲ 23일자 국민일보 6면.
▲ 23일자 국민일보 6면.

국민일보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한국 정부가 미국 국적 개인투자자가 제기한 ISD에서 승소한 사례를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6면 기사에서 ‘서울 마포구 재개발 사업 관련 ISD’ 관련 소송을 예를 들며 “투자자는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었다. 회의에는 소송을 직접 맡은 법무부 외에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16개 정부 부처 국장급 인사들이 참여했다. 총력전을 기울였다”며 “현재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깜깜이’다. 전문가들은 ‘9월 승소’처럼 정부부처의 총력 대응, 치밀한 법리 검토 외에 투명한 공개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고 주장했다.

▲ 23일자 한겨레 5면.
▲ 23일자 한겨레 5면.

한국당, ‘언론 삼진아웃제’ 결국 철회

자유한국당이 ‘좌편향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을 바로 세우겠다’며 도입한 ‘언론 삼진아웃제’를 사흘 만에 철회했다.

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회(위원장 박성중 의원)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편파, 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사에 1, 2차 사전 경고제를 도입하고, 최종 3차 삼진아웃제를 도입한다. 기자와 언론사 출입금지 등 다각도의 불이익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제도는 당 밖은 물론, 안에서도 ‘언론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박성중 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장은 22일 정론관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미디어특위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해온 언론사와 기자들 사이에서도 삼진아웃 조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해당 조치를 유보하기로 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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