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9년이 끝이 납니다. 다사다난했던 2010년대가 끝이 나고 2020년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상민의 문화뒤집기’에서는 크게 방송, 영회, 만화 – 세 가지의 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2019년의 흐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필요한 움직임을 진단하는 결산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순서는 ‘방송’입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참신하고 새로운 방송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 미디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크리에이터’와 연계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진의 늪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를 쉽게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방송은 어떤 길을 갈 수 있을까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와 함께 평소보다 무척 이른 ‘장미 대선’이 결정되었다. 약 10년 만에 정권이 자유한국당 계열에서 더불어민주당 계열로 교체되고, 많은 이들은 정권 교체와 함께 빠른 변화가 찾아오기를 기대했다. 특히 ‘방송’ 쪽의 열망이 무척이나 컸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를 거치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와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양산되고, 노조원에 대한 무수한 탄압이 이어졌다. 시민들 역시 이들 공영방송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2016년-2017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항의 촛불집회에서 JTBC나 tbs 교통방송의 기자들은 환영해도 MBC나 KBS의 기자들에게는 야유를 보냈던 것은 이를 드러내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시민들도 방송의 변화를 원하고 문재인 정권도 수차례 언론-방송 개혁의 의지를 드러낸 상황에서 정권 교체와 함께 지난 두 정권 동안 방송사의 고위직들이 ‘적폐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정리되었다. ‘적폐 인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랜 기간 동안 힘든 투쟁을 이어나갔던 해직 언론인과 조합원이 들어갔다. 모두들 방송이 ‘정상화’되고 다시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 방송사의 경영 실적이 발표됨과 동시에 ‘정상화’에 대한 단꿈도 서서히 사라졌다. KBS는 2018년 585억의 영업손실을, 2019년 상반기에는 에상 영업손실액은 1019억원이라 발표했다. MBC는 KBS보다 더욱 영업손실액의 폭이 컸다. 2018년에는 123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2019년 상반기에는 445억원의 적자가 이미 발생한 상황이다. KBS-MBC 이외의 방송국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SBS는 적자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영업익률이 0%대에 돌입하며 수익이 급감함을 보여줬다. EBS는 2017년 고양 신사옥 입주 직전인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영업손실을 보는 상황이다. YTN을 비롯한 보도채널, JTBC나 TV조선, 채널A를 비롯한 종편 채널들 역시 이익을 내는 곳은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방송국이 적자의 수렁에 빠졌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12월8일 최승호 MBC 사장이 아침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17년 12월8일 최승호 MBC 사장의 첫 출근.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정권 교체와 맞물린 경영진 교체, 공정언론을 선언한 뒤에 적자폭이 늘어나자 불안의 목소리가 늘어났다. 특히 2019년 하반기를 거치면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연루된 의혹을 보도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첨예화되며 방송사들을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은 더욱 극단화되었다. 방송을 바라보는 외부적인 시선이 더욱 혼미해지는 가운데, 방송 내부 역시 굴곡이 심해졌다. YTN에서 노종면 앵커와 김선중 정치부장이 2차례 연속으로 보도국장 임명동의 투표 결과 반대표가 더 많이 나와 부결된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단 2년 사이에, ‘정상화’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사라졌다. 대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방송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만이 깊어졌다.

왜 구조적 적폐 청산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국의 상황은 이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된 것일까.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는 방송국이 놓인 수렁의 원인을 알려주는 실마리가 존재한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스마트폰의 이용 빈도가 평균 80%를 기록하며 70% 중반에 머무르는 TV를 추월한지 오래다. 10%에 머무르는 라디오와 갈수록 2018년에는 이용 빈도가 5% 이하로 추락한 신문보다는 낫지만, 더 이상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활용하는 매체는 TV가 아닌 스마트폰이 된 셈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TV 이용 빈도가 70% 중반을 기록하고 있으니 상황이 마냥 나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는 연령별로도 매체 이용 빈도를 조사한 결과가 담겨 있다. 그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10대와 20대는 스마트폰 이용빈도가 각각 96.0%, 96.9%를 기록하며 100%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TV 이용 빈도는 50% 미만인 44.9%와 48.6%에 불과했다. 30-40대는 10-20대에 비하면 TV와 스마트폰 이용 빈도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지는 않았지만, 스마트폰의 이용 빈도가 TV보다 훨씬 높은 것 역시 바뀌지 않았다. 50대가 TV와 스마트폰의 이용 빈도가 비슷하고, 60대와 70대 이상 연령대에서만 TV의 이용빈도가 스마트폰의 이용 빈도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리하자면 50대 이상의 장년층, 노년층만이 TV를 꾸준히 이용할 뿐, 그 이하 세대에서는 점차 TV 앞에서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KBS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 등의 프로그램이 2049 시청률이 낮은 상황에서도 평균 시청률이 높은 것 역시 중장년과 노년 시청자수의 압도적인 TV 사랑을 드러내는 결과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이 계속 TV를 떠나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중장년과 노년 시청자의 힘으로 시청률을 높일 수는 있어도, 이러한 전략에 딱히 미래가 보이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광고주들은 실질적인 소비-구매력을 지닌 2049 시청률을 점차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20-40대가 TV를 점차 떠나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2049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발표한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보고서의 일부.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발표한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보고서의 일부.

2019년 한국 방송 전반이 혼란한 상황에 놓였던 것은 이러한 급격한 상황 변화가 만든 씁쓸한 ‘미스매치’다.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보수 정권에서 부당하게 쫓겨났던 이들이 약 10년 만에 돌아왔지만, 미디어 상황은 이들에게 익숙했던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지 오래였다. 단순히 인지도 있는 방송인을 출연시킨다고 해서 더 이상 사람들은 TV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그저 ‘양질의 내용’을 담아 방송을 만으면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는다는 경험도 이제는 빛 바랜 믿음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 정권의 압박을 받아 페지된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포맷을 부활시킨 KBS ‘오늘 밤 김제동’,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멤버들을 야심차게 영입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와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언론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던 노종면 앵커를 전면에 내세운 YTN ‘노종면의 더 뉴스’나 새롭게 부활한 ‘고발영상’이 기대와 다르게 저조한 인기와 평가를 얻었던 것은 변화한 환경을 맞추지 못한 대표적 실책이었다.

특히 MBC는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혁신적이거나 참신한 시도 대신 과거 성공했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기에 바쁘며 많은 안타까움을 남겼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무한도전’이 종영된 자리를 메꾼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이다. 이미 철지난 유행이 된 연예인 대상 퀴즈쇼 포맷을 도입한 ‘뜻밖의 Q’, Mnet ‘슈퍼스타 K’ 시리즈를 따라해 잠시나마 주목을 받았던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전략을 다시 한 번 도입해 이번에는 ‘프로듀스 101’를 따라한 ‘언더 나인틴’은 철저히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두 프로그램 모두 인터넷을 통해 프로그램을 알리거나, 유명 크리에이터를 출연시키며 온라인으로는 화제를 낳고자 했지만 이조차도 무위로 끝났다. 결국 ‘무한도전’의 성공 신화를 만든 김태호 PD와 연예인 유재석을 다시 기용한 ‘놀면 뭐하니?’를 신설하며 시청률과 주목도를 다시 늘릴 수 있었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는 결과였다. 결국 ‘김태호-유재석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MBC 스스로가 입증한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래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실험’을 내세웠던 ‘놀면 뭐하니?’가 기존의 기획의도를 슬며시 접고 다시 ‘무한도전’의 성공 방식 그대로 ‘유플래쉬’나 ‘뽕포유’ 등 음원 연계 기획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얻은 모습은 더더욱 MBC가 놓인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보였다.

오히려 쉽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참신한 프로그램을 많이 시도했던 곳은 결국 KBS였다. 한순간 조선업이 몰락한 거제 지역에서 ‘땐뽀’(댄스 스포츠)를 배우는 여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그려 좋은 평가를 받은 KBS 스페셜 ‘땐뽀걸즈’로 주목받은 이승문 PD가 2018년부터 연출 중인 시사/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은 주로 남성 출연진이 출현하여 스튜디오에서 딱딱한 진행이 주를 이뤘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박미선, 양희은을 비롯한 여성 출연진을 전면에 내세워 이들이 직접 이슈와 관련된 현장과 인물을 직접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는 컨셉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기존 ‘KBS 스페셜’을 개편한 ‘다큐 인사이트’ 역시 2018년 ‘88/18’로 주목받은 아카이브 기반 파운드 푸티지 TV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이태웅 PD가 기획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를 선보이는 등 정형화된 TV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참신한 작품들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결국 11월 저시청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종영되었지만,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한국의 육아 문제를 예능의 형식으로 진솔하게 풀어낸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기존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매너리즘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조금씩 유행 중인 스탠드업 코미디를 전면으로 채용한 파일럿 프로그램 ‘스탭드UP!’ 등의 프로그램은 KBS가 기존 프로그램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온-오프라인 모두에 다가 가고자하는 노력의 의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KBS 거리의 만찬.
▲KBS 거리의 만찬.

MBC 역시 마냥 과거의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프로그램만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MBC는 일반적인 ‘골든타임’ 시간대가 아니라 심야 시간대에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던 박진경 PD가 2018년 기획한 ‘두니아 ~ 처음 만난 세계’는 시청률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게임 세계관과 TV 예능의 조화를 통해 신선한 포맷을 구현한 바 있었다. 이후 2019년 다시 부활한 ‘마리텔 V2’에서는 이전 ‘마리텔’이 호평을 받았던 인터넷 방송과 연예인과의 조합은 물론, 유명 크리에이터 ‘도티’를 비롯해 실제 크리에이터들과 능동적인 관계를 맺으며 기존 지상파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2019년 3월부터 일요일 심야에 방송 중인 ‘부동산 중개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구해줘! 홈즈’, 11월부터 월요일 심야에 방송하며 온스타일 ‘겟 잇 뷰티’ 등으로 정착된 코스메틱 정보 프로그램과 진솔한 토크쇼를 결합시킨 하이브리드 컨셉의 ‘언니네 쌀롱’은 적자의 늪에 빠진 MBC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다른 방송국들 역시 가만히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SBS와 EBS는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연반인’(연예인과 일반인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인사를 의미하는 신조어) MC ‘제재’를 전면에 내세운 SBS의 인터넷 전용 예능 ‘문명특급’은 유튜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충분히 활용하는 동시에 인터넷의 최신 유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호평을 받았다. ‘남극에서 건너온 크리에이터 지망생 펭수’를 전면에 내세운 EBS의 ‘자이언트 펭TV’ 역시 ‘펭수’ 캐릭터의 건강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활용하며,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지우는 방식으로 단숨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동시에 ‘문명특급’과 ‘자이언트 펭TV’ 모두 인터넷의 유행을 빠르게 섭렵하면서도, 폭력적이거나 혐오적일 수 있는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다양한 취향과 지향을 지닌 이들도 편안히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EBS '자이언트펭TV' 화면 갈무리.
▲EBS '자이언트펭TV' 화면 갈무리.

그러나 긍정적인 움직임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드라마 촬영 노동 문제, MBC ‘2시 뉴스외전’의 작가 계약 해지 문제, 대전MBC의 여성 아나운서 노동 차별 문제 등은 여전히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의 차원에서는 변화를 주려해도 정작 실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 노동자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사건들이었다.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전면에 드러난 문제는 ‘아동청소년 연예인’(아역배우, 아이돌 등)이 놓인 열악한 노동인권이었다. 결국 모든 시즌에 제작진과 연예기획사의 유착으로 조작이 되었다는 수사 결과가 드러나며 파문을 인 CJ ENM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와 ‘아이돌학교’, ‘소년24’를 비롯한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이해인 등의 증언을 통해 제대로 된 휴식권, 노둥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뒤이어 EBS ‘톡! 톡! 보니하니’에서는 ‘하니’ 역을 맡았던 여성 청소년 아이돌에게 남성 출연자들이 지속적으로 폭언, 폭력을 행사하고 제작진 역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큰 공분을 낳았다.

여기에 최근에는 MBC가 명절마다 진행하는 ‘아육대’(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여성 아이돌 출연자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이후 팬들에게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사과로 일관하여 거센 비판을 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수사 결과로, 우연치 않게 공개적으로 드러난 폭력의 수준이 심각한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동청소년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훨씬 심했을 것이다. 현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의 8개 단체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개선을 위한 팝업’이라는 연대체를 만들고, ‘프로텍트 101’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청소년 연예인의 노동인권 개선과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한 권익 보장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71468)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유튜브 라이브 중 미성년출연자 폭행 논란 장면.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유튜브 라이브 중 미성년출연자 폭행 논란 장면.

방송 제작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인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는 모습은 다시 한편으로 2019년 현재 한국 방송이 놓인 난맥상과도 이어진다. 단순히 윗선이 바뀐다고 해서 방송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프로그램이 몇 편이 나온다고 해서 방송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 역시 아니다. 무엇을 위해 방송을 만들고, 어떠한 가치와 목표를 지향하며 방송을 제작할 것인지에 대한 상이 흐릿한 상황에서 일부 프로그램이 낳는 성과는 결국 방송국 전체의 성과가 아니라 ‘일부의 성과’를 넘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KBS, MBC, EBS, YTN을 비롯한 공영 방송국들이 자신들이 지닌 ‘공공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틀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깊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공정방송’을 위해 오랫동안 투쟁을 했지만 ‘공정방송’이 구호로만 남은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스스로 보인 것이기에 쓴맛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역시 집권 초기의 호언장담과 다르게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송 정책을 답습하며 혼란한 상황을 더욱 방치하는 것에 기여했다. 말로만 ‘방송 제작 환경의 정상화’를 외칠 뿐, 실질적인 행동은 없었다. 오히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SK텔레콤의 티브로드 인수를 허용하며 이미 열악한 지역 미디어의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에 기여하는 행동을 보였을 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방송 심의 역시 일부 심의위원의 노력은 있었지만, 권위주의적인 시스템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 2019년 한국 방송이 놓인 위기는 역설적으로 방송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방송’을 말하지 않으며 생기는 모순이 낳은 파국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방송국은 물론 제작진 상당수도 ‘방송’이 지니는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방송 정책 기관 역시 방송을 진지한 자세로 사고하지 않는다. 그저 관성적으로, 아니면 지금 당장의 이득과 수익만이 이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된다. 그러나 시청자를 생각하지 않는 방송은 결국 외면을 받는다. 동시에 시청자들이 다양하고 질 좋은 방송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시청자들은 앞으로도 CJ ENM이나 넷플릭스 같은 시장의 ‘큰 손’에 더욱 휘둘리는 상황이 심화될 것이다.

통신 기술의 발전과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지만, 방송에 대한 맥락과 구조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거센 변화의 움직임은 방송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방송이 다시 중심점을 잡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방송국의 구성원, 정책 기관, 그리고 언론-방송 운동 모두의 노력과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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