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들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고립되지 않도록 언론 등이 정신건강 인식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정신병은 이상한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정신질환을 부각시킨 보도로 사회적 편견이 깊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화영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는 “우울증 환자들은 ‘정신이 약해빠져서 그렇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는 식의 얘기를 듣고 스스로 극복하려다 힘들어 자살까지 이른다”며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진주 방화·살인사건에선 조현병 전력, 정신과 질환 관련 이야기가 기사 앞에 달려 정신질환은 위험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300여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정신질환자가 더 폭력적이라는 편견이 높다.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 비슷하다는 인식은 프랑스 등 소위 ‘선진국’에서 높은 반면 한국, 이란 등은 낮다.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을 구분해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국립정신건강센터 조사에서 응답자 60.8%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 국립정신건강센터 '2018 대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 조사' 일부 재구성.
▲ 국립정신건강센터 '2018 대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 조사'

이런 편견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은 이들이 치료를 꺼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조사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기까지 걸린 기간(표1)을 물었더니 ‘받지 않았다’는 답변이 절대적 다수인 60.9%였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상담 대상(표2) 역시 ‘없음’이 39.5%로 가장 많았고, 정신과 의사·간호사(11.4%)나 심리·상담 전문가(10.4%)를 찾은 경우는 10% 언저리에 그쳤다. 대부분 상담 대상은 가족·친지(33.9%), 친구·이웃(33.4%) 등이었다. 정신질환을 겪고도 전문적 진단·치료와 거리를 둔다.

이 교수는 정신질환의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항의’, ‘교육’, ‘접촉’을 꼽았다. 잘못된 편견에 문제제기하고, 정신질환자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올바른 인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언론은 그 접점에 놓여 있다. 이 교수는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가 ‘언론의 자살보도기준’을 만들고 지난해 7월 중앙자살예방센터·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가 ‘자살보도권고기준 3.0’을 발표하는 등 관련 보도 기준을 정립해 온 노력이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여전히 문제적 보도들이 남아 있으나 ‘자살’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고, 관련 기사에 상담 안내 문구를 붙이는 등 일말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정신건강 보도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최하고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주관한 ‘정신건강,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다’ 토론회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최하고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주관한 ‘정신건강,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다’ 토론회가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정신질환 경험을 쉽게 얘기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언론의 과제다. 가수 이은미, 박기영씨 등은 본인의 우울증 경험을 밝히며 고 임세원 교수를 추모하기 위한 공연에 참여했다. 이 교수는 임 교수가 생전 본인의 우울증 경험을 기록한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백세희 작가가 본인의 기분부전장애·불안장애 치료 기록을 담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이 자신의 정신질환 경험을 밝히고 공유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져야 한다고 했다. 이들 이야기를 더 적극 조명하고 그 의미를 짚는 것은 언론 매체를 포함한 미디어의 몫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서면 축사에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신문·방송 등 주요 언론매체를 이용한 캠페인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신질환자 가족과 지역주민의 인식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정신질환자 자조집단(self-help group)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회를 주최한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해 정신건강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전문가와 보다 쉽게 상담·치료를 받도록 하는 일은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 강조했다.

▲ 우가은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는 19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학교 안의 교육을 강화하고, 자살과 자해의 경우 이를 경험해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 우가은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는 19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학교 안의 교육을 강화하고, 자살과 자해의 경우 이를 경험해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강북중학교 2학년 우가은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털어놓으며 정신질환자들을 ‘관리의 대상’이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우씨는 정신질환 당사자로서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 ‘동료지원가’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위클래스(학교 상담교실)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전혀 공감을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마지막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했다니 의문’이라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외부 정신상담사를 불러야 하니 부모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했고 나는 반대하며 울고불고 사정했다. 그 다음부터 학교에서 이런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우울증으로 나오지 않게 하려고 거짓으로 설문을 제출했다”며 첫 상담에서 느낀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전했다.

우씨는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을 개선하려면 자해를 경험하고 자살을 시도해본 사람이 왜 그랬는지, 나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지, 어떤 게 도움이 되는지 말할 기회와 경험을 공개해도 괜찮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편견 없는 세상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문제·치료의 대상’이 아닌 ‘도움을 주는 존재’로 설정 △정신건강 서비스 질적 개선 △부모·교사들에 대한 정신건강교육 확대와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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