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 등은 ‘일본의 강제징용 책임을 면제해주고 피해자 인권을 침해하는 법안’으로 비판을 받아온 이른바 ‘문희상법안’(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을 피해자들 반대에도 끝내 발의했다.

문희상법안은 한일 기업에서 자발로 모금한 돈을 위자료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제공하면 피해자는 전범기업에 어떠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일종의 소송포기각서법안이다. 법안에는 전범국가인 일본의 불법침략과 만행에 책임을 묻는다는 언급도 없고, 오로지 한일관계를 정치적으로 풀려는 목적으로 법안을 마련했다고만 돼 있다. 가해국과 가해기업에 책임을 묻지 않은채 피해자인 우리 스스로 치유하자는 의미다.

문희상 의장이 18일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기억.화해.미래재단에 기금을 설치하고 한일 기업과 개인의 기부금으로 재원을 조성(법안 10조) △국외강제동원 피해자가 위자료를 받으면 확정판결에 따른 강제집행 청구권 또는 재판청구권을 포기로 간주(19조) △이 재단의 인건비와 경상운영비는 정부 출연금과 보조금으로 충당(39조) 등을 규정했다.

위자료란 위법한 행위로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손해배상이다. 그런데도 이 법안은 손해배상을 가해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 ‘기부’로 조성해 지급한다. 법안은 ‘위자료’를 “국외강제동원 기간 중에 있었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상응하는 금전”이라고 했을 뿐 반인도적 불법행위자가 배상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가해자 책임을 면제시켜주는 독소조항이다.

문희상 의장 등이 내놓은 법안 제안 이유는 더 황당하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배상을 거부하고 있지만 대규모 유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 입법으로 구제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부가 판결한 사건을 입법부가 구제하겠다는 발상도 모순된다.

문 의장 등은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일정부의 이견으로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경제적 제재, 지소미아 종료 갈등 등이 벌어져 그 출발에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정치적 해법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보복을 일본이 했는데, 강제징용 가해자에 법적 책임도 묻지 않은채 피해자에게 정치적 해결을 찾자는 논리다.

문 의장 등은 제안이유에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일본이 사죄했다는 대목을 따와서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의 뜻을 재확인하고, 악화된 한일 관계의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정치입법적 해법으로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 의장 등은 “우리 국민이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 아픔을 우리 스스로 선제적으로 나서서 보듬고 치유할 시기가 되었음을 인식”한다고 했다. 피해는 가해자가 입혔고 그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아픔을 스스로 치유할 때가 됐다는 주장은 피해자 인권조차 박탈하겠다는 반인권적 논리다.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 김세은(법무법인 해마루) 김정희(법무법인 지음) 이상갑(법무법인 공감) 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최봉태(법무법인 삼일) 변호사와,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지원단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은 이날 법안이 발의되자 성명을 내어 문 의장을 성토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역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열린 한일 기업 기부금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문희상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역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열린 한일 기업 기부금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문희상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문희상 안을 두고 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뒤 위자료를 지급받은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상대 재판청구권을 소멸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강제동원의 본질이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는데 주목했다. 식민지시기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수십만 조선의 젊은이들을 끌고 가 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채 혹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한 전쟁범죄다. 이들은 “그 불법, 범죄행위를 ‘해결’하겠다는 법률이라면 최소한 가해자 책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문희상 안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고 했다.

이들은 “자발성을 전제로 한 ‘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 법안이 통과돼도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와 같은 강제동원 가해 기업이 기부금조차 낼 의무가 없다. 이들은 “결국 문희상 안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청산하는 법률”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한테 소송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대신 이름도 목적도 없는 돈을 받으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희상 의장 등이 만들겠다는 ‘기억·화해·미래 재단’이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이 나치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기 위해 설립한 ‘기억·책임·미래 재단’에서 차용했다며 여기서 바뀐 단어는 바로 ‘책임’이라고 지목했다. 독일도 넣은 ‘책임’을 빼고 ‘화해’라는 단어로 바꿨다. 피해자 대리인 등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일본의 책임을 덮는 법률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며 “그 화해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얼굴을 보지도 사과도 듣지도 못한 채, ‘돈 받으면 소송 못해’라는 재단의 말을 듣는 화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법안을 두고 이들 피해자 대리인과 소송지원단은 “문희상 안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오류를 반복할 뿐”이라며 “인권침해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과 없이 화해만을 위한 법률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으로 화해를 강요하고,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는 새로운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국의 입법부가 할 일이 결코 아니다”라며 “우리들은 문희상 안이 입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법안을 공동발의한 국회의원은 문희상(무소속) 김경진(무소속), 김성수(더불어민주당), 김세연(자유한국당), 김진표(더불어민주당), 김태년(더불어민주당), 백재현(더불어민주당), 서청원(무소속), 윤상현(자유한국당), 이동섭(바른미래당), 정병국(바른미래당), 정성호(더불어민주당), 조배숙(민주평화당), 홍일표(자유한국당)이다.

다음은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과 소송지원단이 18일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성명]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과 없이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 및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반대한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 및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문희상 안’이라고 함)이 2019. 12. 18. 발의되었다. 문희상 안은 마치 ‘한일 갈등을 해결할 해법’으로 포장되어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보도가 이루어졌으나, 정작 법안 발의에 필요한 최소인원 10명을 겨우 넘긴 14명으로 발의되었다[문희상(무소속), 김경진(무소속), 김성수(더불어민주당), 김세연(자유한국당), 김진표(더불어민주당), 김태년(더불어민주당), 백재현(더불어민주당), 서청원(무소속), 윤상현(자유한국당), 이동섭(바른미래당), 정병국(바른미래당), 정성호(더불어민주당), 조배숙(민주평화당), 홍일표(자유한국당)]. 법안 내용이나 발의 날짜도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일제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이라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그 내용을 온전히 알지도, 언제 발의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문희상 안의 핵심은 기억·화해·미래 재단을 한국·일본 기업과 양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설립하고, 위 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이후 위자료를 지급받은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재판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된 바와 같이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한 것이다. 식민지시기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이 수십만 조선의 젊은이들을 끌고 가 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채 혹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한 전쟁범죄이다. 그 불법행위를, 그 범죄행위를 ‘해결’하겠다는 법률이라면 최소한 가해자의 책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희상 안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단순히 부존재하는 것 아니라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일본 기업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면제시켜주고 있다. 문희상 안이 20대 국회 내에 통과될 가능성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나, 이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와 같은 강제동원 가해 기업들이 기부금조차 낼 의무가 없다. 결국 문희상 안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청산하는 법률이다.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한테 소송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대신 이름도 목적도 없는 돈을 받으라는 것이다.

문희상 안이 만들겠다는 재단의 이름인 ‘기억·화해·미래 재단’은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이 나치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기 위해 설립한 ‘기억·책임·미래 재단’의 이름에서 차용했다. 문희상 의장실 관계자들도 이를 인정했다. 두 재단 사이에 바뀐 한 단어가 바로 ‘책임’이다. 독일은 가해자인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이 재단을 만들고 운용했다. 그 자체로도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지만, 독일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재단의 이름에도 ‘책임’을 넣어 강조했다. 그런데 문희상 안은 한국 정부가 운용하는 재단을 만들겠다면서도 그 이름에 ‘책임’조차 넣지 못하고 ‘화해’라는 단어로 바꾸어 넣었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일본의 책임을 묻는 법률이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 대신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그 화해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얼굴을 보지도 사과도 듣지도 못한 채, ‘돈 받으면 소송 못해’라는 재단의 말을 듣는 화해일 뿐이다.

작년 대법원 판결과 후속 소송의 원고들, 그 원고들을 대리한 변호사들, 지원단체들은 문희상 의장 측으로부터 그 어떠한 협의나 소통의 제안도 받지 못했다. 2019. 11. 27. 항의방문의 형태로 문희상 의장과 비서진을 잠시 면담한 것이 전부였으나 그때 들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요구할 것이 있으면 써서 내라’, ‘당신들만 피해자냐’라는 이야기였다. 청와대, 외교부와 소통은 하면서 법안을 준비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답변도 하지 못했다. 이후 문희상 의장 측은 ”반대하는 피해자는 일부이며 반대 단체 대부분은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아니다“라며 문희상 안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사실관계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를 넘은 공격이다. 문희상 안이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라면 그 입법과 집행을 위해서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피해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반대하는 피해자는 일부’라고 규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배제해서 이 법안이 과연 ‘화해’를 이루어 낼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성명에 연명한 우리들은 문희상 안에 반대한다. 외교적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대의를 내세워 피해자들 및 피해자 대리인을 배제한 채 발의되려고 하는 문희상 안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인권침해의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과 없이 화해만을 위한 법률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으로 화해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는 새로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가해자들의 책임을 면제하고,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것은 한국 입법부가 할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들은 문희상 안이 입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9. 12.. 18.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세은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김정희 (법무법인 지음)

변호사 이상갑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최봉태 (법무법인 삼일)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지원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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