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2년 이후 여러차례 국정원과 극우매체들의 ‘종북’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인이 ‘종북’이라고 몰리면 반론이고 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서는 소송이 유일한 대처 방법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에 대한 고소 외에, 극우매체들에 대해 낸 형사고소는 단 한 건도 검찰의 기소로 이어지지 않았다...(중략)...대신 민사소송은 대부분은 승소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현실에서 바뀌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및 통합진보당 전 대표가 책을 썼다. 종북몰이를 당했던 이 전 대표는 “지금 한국 사회에 사상의 자유시장이 필요하다면 그곳에서 보호되어야 할 것은 혐오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혐오표현을 거절하고 비판할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변호사이기도 한 이 전 대표는 혐오표현 정의부터 시작해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처벌과 민사소송, 자율규제와 구제조치 등을 폭넓게 살폈다.

이 전 대표는 서문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에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소수 의견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고 토론 자체를 봉쇄하는 표현에 대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다수 의견은 “내가 정치인이니 종북이라고 불려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국회의원이고 정당 대표였으니 공격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라고 토로했다.

이 전 대표는 혐오표현에 대해 “소수 집단과 그 성원들의 공존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며 “한 사람의 평판이나 평가를 떨어뜨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공동체에서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함으로써 그가 그곳에서 타인과 공존할 수 없게 하고, 이로써 그의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종북은 혐오표현에 해당하고 법률적으로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될 수 없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생각이다.

학계에서 혐오표현을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치열한 가운데 혐오표현의 피해자이면서 법률실무가로서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혐오표현 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 전 대표는 한국 사회가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민간인까지 학살이 벌어진 나라로서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5. 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 등의 주장 역시 학살 범죄를 부인해 극우수구세력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이 전 대표는 혐오 표현이 확산되는 이유와 관련해 난민 수용을 예로 들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7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예멘 난민 수용 반대 게시물은 “기존의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 없으며 여전히 추상적인 경제적 파급효과와 관광수요, 유커의 유치를 위해서라고만 말하지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인 것이 화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예멘 난민 수용에 대한 사람들의 첫번째 불안은 “기존 구성원인 우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외부인들까지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항변”에 기초해 있고, 두 번째는 “소수자들을 포용하면 생겨날 수 있다고 여기는 문제에 대한 불안”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대표는 “예멘 난민들이 테러와 연관되어 있거나 성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불안은 분명 과장되어 있다”며 “이 과장된 불안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다. 불안을 부풀리고 확산시킨 조직적인 주동세력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혐오 표현이 늘어나는 주원인은 흔히 말하는 ‘가짜뉴스’ 자체에 있지 않다. 불안이 확산될 수 있는 배경은, 다수 시민들이 보기에 진보적 가치의 확산 속도보다 현실의 불안이 덜어지는 속도가 느리다는 데 있다”며 “그 차이는 다수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과장된 불안을 확산시키는 조직된 세력은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_이정희 지음.
▲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_이정희 지음.

이 전 대표는 정치인들의 혐오표현에 강력한 책임 추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혐오표현을 일상의 것으로 만들고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법률 개정 등을 통한 규제에만 매달려서는 혐오표현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이 전 대표의 생각이다. 이 전 대표는 “법적 의무를 위반하고 정치적 의무를 저버리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혐오 표현을 퍼뜨리고 소수자들을 배제 축출하려 한 공직자나 정치인, 언론인에게는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혐오표현에 동조하거나 경미하게 가담하거나 방관한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려고 시도”하려는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혐오 표현 피해자는 먼저, 다수의 경미한 가담자들과 방관자들에 대해 던져온 ‘왜 내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는가’, ‘왜 나하게 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야 한다”면서 “혐오표현의 주동자들은 그들이 아무리 혐오표현을 쏟아내더라도 그에 흔들리지 않고 혐오표현이 더 퍼져나가지 않는 사회가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가해를 멈출 것이다. 더는 혐오표현이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잡고 함께 막아낼 수 있어야만, 혐오표현의 주동자들은 혐오표현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소수자가 ‘공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시민들 역시 ‘공존의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이 전 대표는 “혐오표현에 부딪힐 때 침묵하지 않고 멈추라고 말하려는 것이 공존의 책임”이라며 “공존의 책임을 자각한 시민들이 소수자를 ‘동료’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소수자들은 배제되지 않은 공동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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