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피의자 초상 공개 원칙’ 기준을 정립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교수가 지난 10월23일 영장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나오면서 처음 포토라인에 섰다. 다음날 아침종합신문에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겨레 등 4개 언론사는 정 교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 5개 언론사는 정 교수 얼굴을 공개했다.

▲ 지난 10월24일자 경향신문 1면
▲ 지난 10월24일자 경향신문 1면

당시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정경심 교수를 ‘공인’으로 보기 힘들다고 했다. 경향신문 관계자는 “공인 여부에 대한 의견이 (편집국 내에서) 분분했으나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블러(Blur, 흐림) 처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편집국 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만큼, 편집국장과 에디터진은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피의자 초상 공개’ 기준을 논의했다. 지난달 중순 피의자 초상 공개 기준 초안을 마련했고, 이후 구성원 의견수렴을 거쳤다. 경향신문은 ‘피의자 초상 공개 원칙’을 지난달 29일 사내에 공표했다.

경향신문은 △공직자 가족 △강력범죄 피의자 △재벌이나 유명인 △대학교수·지식인 등 4가지 기준으로 원칙을 마련했다.

먼저 공직자 가족의 경우 가족도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고위 공직자의 가족 중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중대 범죄는 정경심씨의 경우와 같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1심 법원이 혐의 사실을 인정하고 실형에 가까운 유죄판결이 나오면 공개할 수 있다.

형사상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범죄율을 줄이는 등 공익에 부합하는지도 논의했다. 경향신문은 “비공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사건 범죄의 경중과 비교해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에 경찰이 신상을 공개하기로 할 경우 이름과 얼굴을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도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등 다툼의 여지가 많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밝혔다.

재벌이나 유명인의 경우엔 △대기업 총수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재직 중인 후계자 △주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등이 사회적 물의나 범죄를 일으키면 신상을 공개한다. 단, 단순 재벌가의 일원이라거나 기업의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임원의 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

대학교수 등 지식인은 총장이나 학장 등 학내 영향력이 큰 경우를 제외하고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공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는 국공립을 떠나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또 사회활동 등으로 이름이 크게 알려진 교수들도 공개한다.

최병준 편집국장은 이 원칙을 발표하면서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는 기준은 없다. 단순한 개인 범죄를 넘어 범죄 혐의가 막대하고 중요할 경우 회의를 거쳐 공개할 수 있다고 본다”며 “앞으로도 공개 규칙은 보완 수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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