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법조 뉴스의 품질연구’(2016년 고려대, 박성호·윤영민) 논문에 따르면 2000년~2014년 지상파3사 검찰 뉴스 710건의 보도 시점은 ‘기소 이전 수사단계’가 89.6%, ‘기소 이후의 재판 단계’는 10.4%였다. 조국 사태에서의 검찰 보도는 이 같은 경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진영논리가 첨예하게 부딪혔으며,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기자사회와 기자사회 밖에서의 눈이 달랐던 이 복잡한 사안에서 기자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12일 한국언론학회·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일자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다. 언론이 독자적인 자체 취재를 통해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기사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전반적으로 검찰수사의 기본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양한 접촉면을 통해 수사상황이 (밖으로) 흘러나갔다. 언론의 독자적 보도 역시 상당 부분 전지적 검찰 시점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며 “조국 사태는 고질적으로 되풀이돼온 한국 언론의 문제적 보도 관행, 시스템의 실패와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를 오래 출입했으며 중앙일보 사회부장과 JTBC 보도국장을 역임한 권석천 논설위원은 2019년 조국 수사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비교했을 때 언론 보도 양상의 유사점으로 △단기간 엄청난 물량의 보도가 쏟아졌다 △한 가족에 대해 집중포화가 이뤄졌다 △도덕성을 강조하던 인물이 검찰수사를 받게 되면서 위선 논란이 가열됐다는 점을 꼽았다. 차이점도 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불공정 여론이 확산됐다 △정치권력(이명박정부)에 의해 움직였던 검찰이 이번엔 스스로 권력의 주체로 등장해 정치권력(문재인정부)과 맞섰다 △검찰 직속 상위 기관인 법무부 현직 장관에 대한 초유의 수사였다는 점이다. 

그가 주목한 조국 사태의 터닝 포인트는 부산대 의전원에 재학 중인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딸이 6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았을 때(한국일보 8월19일), 딸이 고교 시절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동아일보 8월20일)다. 또 한 번의 계기는 동양대 표창장 의혹이었다. 이후 언론은 경마 중계식으로 수사상황을 전달하는 데 치중했고, 수사 방향을 검증하는 기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토론회에서 기자들 앞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토론회에서 기자들 앞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권석천 논설위원은 이날 한겨레의 8월28일자 기사(‘조 후보자 동생·처남 등 출금, 본인·부인·모친은 포함 안 돼’)를 가리키며 “출국 금지 보도는 상징적이었다. 출국금지는 수사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인데 엄청난 죄를 지은 듯한 인상을 준다. 언론이 스펙터클하게 보도한 결과 피의자는 수사 초기단계부터 죄인 취급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0월9일 조 장관 동생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신문·방송은 “검찰수사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구속영장 기각=수사 차질’이란 도식도 구속을 해야 옳다는 뉘앙스였다는 지적이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피의사실이 공표되어도 언론이 검증하고 가려낸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피의사실 공표가 없었더라도 언론이 검찰 시점으로만 기사를 쓴다면 훨씬 후유증이 클 수 있다”며 “검찰 취재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검찰 관점만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전지적 검찰 시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발 보도가 일반화되면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선 아무도 검찰권력에 맞설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지적 검찰 시점이 드러나는 문제의 기사체로 검찰을 주어로 시작하는 기사, 예컨대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알려졌다”, “검찰은…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와 같은 문장을 예로 들며 △검찰이 사실상 유일한 취재원이다 △검찰은 100% 신뢰할 수 있다 △기사의 책임은 검찰에 있다는 인식 속에 나오는 기사체라고 꼬집었다. 그는 “1993년 법조에 간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 되는 기사체”라며 “검찰발 기사는 빠르고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이 전지적 검찰 시점을 강화해왔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전지적 검찰 시점을 강화하는 건 언론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기사화해야 한다는 인식, 물먹으면 큰일 난다는 인식에 의해 계속 앞서나가는 보도를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검찰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며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이라면, 언론개혁은 기자들이 양심에 따라 제대로 기사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자들의 일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6년차 법조기자의 ‘솔루션’은 무엇일까. 

“일일 단위의 사건 기사 중심 기사 생산 시스템과 위계적 조직문화가 전지적 검찰 시점을 낳았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누락하지 않고 기사화하려는 관행이 기자들의 전문성을 갖추고 심층적인 기사를 생산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많은 언론사의 적은 기자들이 모두 비슷한 일에 매달려 있다. 전지적 검찰 시점을 벗어나려면 관련자를 만나고 사건을 파헤쳐서 ‘검찰이 알리고 싶은 사실’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는 “검찰을 주어로 쓰고, 검찰 주장이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 혐의는 검찰의 진술일 뿐이다”라며 향후 법조기사의 기사체를 바꾸기 위해 △혐의는 검찰의 주장일 뿐이다 △진술을 인용 보도하지 않고 직접 당사자를 취재한다 △피의자 입장을 검찰 입장과 최대한 병렬적으로 제시한다 △구시대적인 스케치 기사는 용도 폐기한다 △익명 취재원과 ‘정보 불확실’ 술어는 원칙적으로 쓰지 않는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한다 △취재과정을 성실하고 투명하게 설명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은 보도를 지양한다 △재판 단계의 보도 비중을 확대한다는 원칙에 유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의 문제는 나와 같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재래식 시스템과 관행의 문제”라고 반성하며 “출입처제도는 구시대의 유산이지만 단기간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 출입처에서 이슈 중심으로 옮겨가야 하고, 전문기자가 주축이 된 편집국·보도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법무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훈령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문공보관으로 좁혀지는데, 검찰 수뇌부만 원하는 피의사실만 공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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