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는 중소기업에 1년간 계도기간을 일괄 부여하기로 했다. 계도기간에 노동자 진정 등으로 규정 위반이 확인돼도 충분한 시정기간(3개월씩 최대 2회)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 재난 상황에서만 허용했던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물량 급증, 연구·개발 등 경영상 사유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중소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 시행이 2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잠정적 보완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2일자 종합일간지들은 모두 정부를 비판한 점에선 같지만 비판 내용은 ‘후퇴’와 ‘예외’로 정반대로 갈렸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시행규칙 개정만으로 재해·재난 상황에서만 허용되던 특별연장근로 기준에 경영상 사유를 추가한 것으로 원청의 납기 독촉, 대량 리콜사태, 악천후로 지연된 공사 기간, 버스 운행 중 교통 정체 등의 상황에서도 제한 없는 연장근로가 허용된다”고 전하며 “무제한 연장노동이 가능한 특별연장근로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단순 보완조치 이상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가 결국 노동시간 단축 정책마저 포기했다”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했다. 정의당은 노동부가 시행규칙 개정으로 노동시간 단축 입법 취지를 훼손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이재갑 노동부 장관을 형사고발키로 했다. 경향신문은 “중소기업의 주52시간제 시행이 2년가량 늦춰짐에 따라,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가 더 오래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면서 대·중소기업 노동자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12일자 경향신문 8면.
▲12일자 경향신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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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는 “대기업을 포함해 이미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까지도 특별연장근로 허용 사유를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로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나 손해가 초래되는 경우’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경영상 사유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혀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양대 노총은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정부가 내놓은 ‘보완대책’이, 명분으로 내세운 ‘주 52시간제 안착’을 돕기는커녕 노동시간 단축 정책 자체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며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실시를 유예한 것도, 대기업과의 임금 양극화에 이어 노동·휴식시간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한국일보 또한 “노조 조직률이 낮은 중소기업에서 근로자 동의 과정이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도 큰 데다, 근로자 건강권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신문은 “중소기업 2만7000곳 중 주 52시간제 준비를 끝내지 못한 기업이 42.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정부가 주 52시간제 도입 준비 지원을 서두르지 않다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요원한 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한 뒤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사유까지 대폭 확대해 장시간 노동을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보수신문의 논조는 다르다. 동아일보는 “내년 1월 말부터 업무량이 급증하거나 연구개발(R&D)에 필요하다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특별연장근로를 도입한 회사는 퇴근 후 11시간 휴식 보장 등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재계는 정부가 주 52시간제 보완책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연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같은 보완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계도기간이 끝난 1년 뒤 또다시 ‘범법자’로 몰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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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자 동아일보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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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자 매일경제 3면. 

동아일보는 “특히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한 연구개발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연구개발’로 제한된 점은 각 업계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겼다”며 모호성을 지적했다. 또한 건설업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근로자마다 소속 회사와 근로기간, 근로시간이 각기 다른데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기 위해 근로자 동의를 누구한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본처럼 노사 합의 시 추가 연장근로(월 100시간, 연 720시간 이내)를 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주장은 전했다. 

조선일보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경영 여건과 인력난 등을 감안해 사실상 1년 6개월간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연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특별연장근로 허용 범위를 대폭 넓혔고, 계도 기간(1년)과 시정 기간(6개월)을 모두 감안하면 2021년 7월까지 중소기업에 대해선 제대로 된 주52시간제 시행은 어려울 것”이라며 “이때는 차기 대선(2022년 3월)을 불과 9개월 앞둔 시점이라 대선 주자들이 주52시간제를 완화하는 각종 공약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매일경제는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에 1년 계도기간이 부여됐다는 사실보다 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는 점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1년 후라도 주52시간제가 적용될 경우 회사의 존폐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법 적용이 잠깐 유예된 것은 환영하지만 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주52시간제를 손보지 않는 한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익명의 중소기업 대표 발언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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