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1일 새벽 24살 청년 김용균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야간근무 들어갔던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구의역 참사 때 김군처럼 ‘위험의 외주화’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났다. 

우리는 언론이 닥쳐올 사회적 재난과 위험에 먼저 경고를 울리는 시그널이라고 배웠다. 용균씨 사망 1년을 겪으면서 우리는 기억해야 할 4가지 장면을 목격했다. 

첫째 첫 보도 시점이다. 

한겨레와 경향, 서울신문이 용균씨 죽음이 알려지자마자 지난해 12월12일자 아침신문 1면에 그의 죽음을 알렸다. 그의 죽음에 사회적 의미를 더하고자 했던 세 신문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김용균이란 이름이 조선, 동아일보에 등장한 건 사고 일주일 뒤인 17일자 지면에서나 가능했다. 왜 이렇게 늦었던가?

둘째 사고 보름 뒤 성탄절 다음날 신문도 극명하게 갈렸다. 경향신문은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용균씨 유족 등 4곳의 싸우는 사회적 약자가 보낸 거리의 성탄절 광경을 1면에 실었다. 예수가 그랬듯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제목을 달아. 

▲ 지난해 12월26일 경향신문 1면 포토뉴스
▲ 지난해 12월26일 경향신문 1면 포토뉴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사회면 머리에 ‘추모를 앞세운 또다른 시위… 분향소로 뒤덮인 도심’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광화문에 설치한 김용균씨 분향소에 불편한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슬픔에 공감하는 언론과 슬픔이 불편한 언론이 확연히 나뉘었다. 우리는 24살 청년 하청노동자의 처참한 죽음이 왜 불편한지 조선일보에 물어야 한다. 

셋째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이 국회와 정부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끝에 지난 2월5일 정부와 여당이 김용균 합의에 이르렀다. 원인 조사와 방지책 마련, 정규직 전환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담은 합의였다. 이를 보는 시선도 엇갈렸다. 

조선일보는 직접 고용(정규직 전환)을 질타하며 “산재는 현장 문화 탓”이라며 노동자 개인에게 화살을 돌렸다. ‘발전소 안전사고, 공기업이 맡으면 다 해결된다는 건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선 조선일보는 “정규직화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밀어붙이는 일이 반복된다”고 비난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는 반세기 넘게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누구도 죽으려고 일터에 출근하진 않는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마저 부정했다. 

넷째 지난 8월 특조위 진상조사가 발표된 직후 언론 대부분이 기사와 함께 사설까지 쓰면서 재발 방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중동과 세계일보 지면엔 진상조사 발표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온라인에도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다. 매일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의 방대한 텍스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사가 할 짓은 아니다. 

▲ 故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은 지난 4월28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김용균씨 묘소 앞에서 중대채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 묘비와 추모조형물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 故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은 지난 4월28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김용균씨 묘소 앞에서 중대채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 묘비와 추모조형물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국민들은 아무리 보수와 진보로 갈린 언론 지형이라도, 잇단 산재 사망사고마저 외면하는 언론을 향해 질문한다. 이것이 좌우로 나뉠 문제냐고. 

노동자 사망엔 20초짜리 앵커 멘트로 처리하고 마는 종편이 삼성 신형 휴대폰 출시엔 현장에 나가 1분씩 리포트 한다. 이 사실을 꼭 기록하여 기억해야 한다. 이런 언론 환경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김용균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