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법무부 훈령)을 두고 언론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우려부터 자성하지 않으니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찬성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실효성을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이번 훈령은 정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언론계도 보도가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문제의식을 인정한다. 보완 취재 없이 검찰 측 말만 근거로 검찰 관점의 유죄 심증 보도를 내는 문제를 넘어, 많은 매체가 이런 보도를 경쟁적으로 쏟아 낼 땐 여론 재판 효과도 냈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훈령은 형사사건 수사 정보의 비공개를 원칙으로, 공개는 예외로 허용한다. 이에 따라 전에 없던 조항이 생겼다. 검찰·수사관의 언론 접촉 금지, 공보 창구 일원화(전문공보관), 구두 브리핑(티타임) 폐지 등이다. 국민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할 사건은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에서 공개 여부와 수준을 심의한다. 검찰의 직접 공보 기능을 최소화해 문제를 해결해보겠단 취지다.

▲ 취재 자료사진. 사진=pixabay.
▲ 취재 자료사진. 사진=pixabay.

 

검찰 출입기자들은 공식 공보 절차를 손본다고 피의사실 흘리기를 막을 수 없다는 회의적인 의견을 냈다. 피의사실공표는 비공식 통로로 제한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다. 검찰과의 통화는 대부분 사실 확인을 위한 소통이고 공개 브리핑에선 피의사실이 공표되지 않는단 입장이다. 검찰이 자의적으로 흘리는 사건이 아니면 일상적으로 기자들은 수사 과정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검찰을 출입한 A기자는 “검찰 취재를 모두 ‘검찰 발 받아쓰기’라 보면 안된다. 외곽취재로 수사 정보를 알게 돼 검찰에 교차 확인해도 ‘수사 중이라 답할 수 없다’는 말만 듣곤 한다”며 “투명한 공보 원칙이 잘 돌아갔다면 우려가 없지만 검찰이 말하기 싫은 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성을 더 준 셈”이라고 말했다.

기자단은 핵심 조항인 검찰·수사관 만남 금지를 두고 과도한 취재 제한이라 비판한다. 검찰을 출입하는 B기자는 “취재의 자유도 있는 건데 사건 관계인 접촉 금지가 실제로 가능할까. 누군가는 접촉하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지금도 검찰 발 받아쓰기 보도는 나오고 있다”며 “(같은 논리로) 공정위나 금융감독원 조사단도 언론 접촉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전체를 다 제한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큰가”라고 물었다.

뇌물수수 혐의를 사는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사건이 비공개로 결정되자 언론계에선 ‘깜깜이 수사’ 우려가 나왔다. 출입기자단의 C기자는 “검찰은 과거부터 살아있는 권력엔 수사를 미온적으로 해왔고 출입기자들도 이를 견제해왔던 것인데 지금은 완전 ‘깜깜이’이다. 검찰 출입기자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고 세상에 전부 악이란 건 없는데 몽땅 금지시켜 순기능까지도 죽였다”고 밝혔다.

“검찰이 먼저 입 열지 말란 방침일 뿐, 기자들 과민 반응”

반대 입장도 팽팽하다. 검찰을 출입했던 D기자는 “폐해가 너무 크니 일단 공개 금지 원칙을 두는 게 맞다. 실제로 검찰이 먼저 전화하거나, 질문하는 기자에게 한두 마디 더 해주는 식으로 피의사실을 흘리곤 한다”며 “검찰이 먼저 형사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도록 하는 방침, 기자와 검찰·수사관의 자유로운 교류를 막는 방침은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혔다. D기자는 2003년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루된 ‘박연차 정·관계 로비사건’ 등 언론이 오래 전부터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각성할 기회를 가졌지만 15년 넘게 개선이 없었고 특단의 조치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검사가 왜 형사사건의 주요 취재원이 돼야 하냐는 물음도 나왔다. D기자는 “검사가 가진 정보 자체가 피의사실이다. 기자들은 피의사실 취재를 위해 검사를 만나는 것”이라며 “검찰이 가진 정보는 검찰에게 편향된 정보다. 그런데 형사사건을 공보하는 순간 그들이 가장 권위있는 스피커가 된다. 기사의 80%는 검찰 발표, 많아야 20% 정도 피의자 반론을 반영할 텐데 공정한가”라고 물었다.

법조를 취재하는 E기자도 “검찰이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개별 수사관 접촉 금지한 게 훈령 핵심인데 기자단은 ‘취재를 원천적으로 막는다’고 해석한다”며 “검찰은 형사사건의 한쪽 당사자인데 그들 주장을 사실처럼 전하는 관행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비공개를 원칙, 공개를 예외로 정하는 방향이 맞고, 공보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검찰에 공보 원칙을 세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 평했다.

출입기자단이 유독 민감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법조 취재기자 F기자는 “검찰·수사관 접촉, 티타임(구두 브리핑) 참석, 검사 전화번호, 각종 공소자료 등 모두 기자단에게만 쉽게 허용됐던 권한이다. ‘취재 편의’만 사라졌다고 보는 법조 기자들도 꽤 있다”며 “다른 방식으로도 검찰의 선별적 수사, 미루기 수사, 정치적 독립, 검찰청 업무 전반 비판, 무리한 기소 등 실질적 감시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지난 2016년 10월31일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 최서원씨가 서울중앙지검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다 포토라인 안으로 시위대가 진입하면서 취재진과 경호원, 시위대 등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016년 10월31일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 최서원씨가 서울중앙지검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다 포토라인 안으로 시위대가 진입하면서 취재진과 경호원, 시위대 등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 포토라인. 사진=노컷뉴스
▲ 포토라인. 사진=노컷뉴스

 

검찰·법무부에 돌린 공 언론으로 가져 와야

D기자는 ‘기자단은 왜 남의 허물만 보느냐’ 비판했다. 피의사실공표는 언론과 검찰의 합작품인데 검찰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훈령의 문제점만 탓한다는 지적이다. D기자는 “훈령 문제점은 보완하면 된다. 이와 별개로 기자단과 언론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 물었다.

유환구 한국일보 기자는 지난 9일 관련 토론회에서 “수사 과정의 ‘단독’ 보도들은 보도하지 않는다고 사장되지 않고 기소 이후 드러난다. 알 권리가 잠시 유예되는 것인데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라 ‘타사보다 먼저 알 권리’는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며 “하루 단위로 기사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복잡한 외곽취재보다 수사 담당자로부터 소스를 받아 보도하는 게 손쉬운 것도 사실이다. 또 ‘낙종’을 하면 어떻게든 이를 만회하려는 무한 출혈 경쟁이 시작되면서 경마식 보도와 오보 등이 남발된다”고 지적했다.(12월9일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자 신상공개제도 현황 및 개선과제’ 토론회)

훈령 자체를 두고 다투기보다 당장 헐거운 조항을 보완하자는 조언도 나온다. 주승희 교수(덕성여대 법학과)는 9일 토론회에서 △수사 담당관의 엄격한 공보 금지 조항과 △공인의 업무 관련 혐의 수사정보 공개 요건을 완화하고 △공보 과정에서 피의자(변호인) 측의 반론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상대적으로 사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언론 대응을 하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 형식화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보도돼 피의자 권리가 더욱 침해될 수 있다. 또 고위공직자 업무 관련 혐의는 국민의 알 권리가 더욱 두텁게 보장돼야 한다”며 “사건이 중대하고 복잡해 피의사실 공표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땐 피의자 측 변호인을 동석시키는 방법 등으로 반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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