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을 취재해 본 기자들은 피의사실공표 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언론사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형사사건 취재를 검찰에만 의존하지 않으려면 외곽 취재가 중요한데 검찰 발 단독보도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에선 개선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의미 없는 단독 경쟁’은 그만두자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건 실체를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취재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 하나를 얻어 단독을 붙이는 경쟁을 그만두자는 자성이다.

▲ 지난 10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취재진이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10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취재진이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조 출입기자단의 A기자는 “검찰을 취재해 파편화된 보도를 해왔던 건 사실이다. 과거 타사에서 ‘단독’ 보도를 하면 압박감이 있었다. 보도국에서도 ‘검찰 발 단독 보도’를 원했다. 하지만 취재기자들이 이제는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보도국에 말한다. 보도국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만의 색깔을 내는 기사를 쓰고 수사 중인 사실을 캐내서 기사를 쓰라는 지시는 줄고 있다”고 말했다.

고제규 시사IN 편집장도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론사에서 법조 출입처는 3D부서다. 언론사 처지에서는 똘똘한 친구를 보내야 낙종을 면한다. 대충 시간 보내다 법조를 벗어나야지 하는 심정으로 가도, 사흘 연속 낙종하면 정신이 번쩍든다”며 “그때부턴 아침부터 낙종 보고 하고 종일 취재하고 기사 쓰고 시키지 않아도 밤엔 폭탄주 마시며 알아서 쳇바퀴 돈다. 피의사실공표든 오보든 무뎌진다”고 썼다.

검찰의 말을 ‘일방의 주장’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법조 출입 B기자는 “검찰 출입할 때 부장·차장 검사를 만나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묻고 확인받으면 기사를 많이 썼다. 데스크도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검찰이 국가기관이라 공신력이 있다고 믿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검찰 출입 C기자도 “검찰은 형사사건의 일방 당사자일 뿐 사법절차를 주도하는 기관이 아니다. 검찰의 정보는 한 측에 편향된 ‘오염된 정보’라 보는 게 맞다”며 “검찰의 공소장을 100% 인정된 사실처럼 전하는 관행도 개선 과제다. 형사사건 변호사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이라 강조했다.

법조기자단의 D기자는 “군부 개혁 전 장군들 인사 하마평이 단골 보도 소재였다. 개혁 후 보도는 급격히 줄었는데 검사 정기 인사 보도는 지금도 나온다”며 “이런 보도로 검찰이 권력기관이란 인상을 전하는 것도 좋지 않은 습관”이라 지적했다.

검찰발 보도를 줄이고 ‘공판중심주의’ 취재 방식이 거론된다. 김남근 변호사는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피의사실공표 남용이 어느 정도 규제가 된다면 보도의 관행이 재판 공방을 주로 중계하는 형태의 보도가 늘어날 것이다. 재판 단계에 있어서는 피고인과 검찰이 대등한 공방을 벌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 중심의 보도가 더욱 균형 잡힌 보도가 된다는 것.

공판중심주의에 동의하는 기자들도 고민은 깊다. 현실적으로 독자들이 공판 보도보다 수사 보도에 관심이 높은 점도 검찰 취재 동력이었다. D기자는 “지금 원칙대로면 최서원, 정유라 등 지난 국정농단 피의자들도 포토라인에 세워선 안 됐다. 당시 특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피의사실이 보도로 다수 나오기도 했지만, 수용자들은 열광했다”며 “이런 문화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D기자는 “공판 취재엔 체력과 시간, 집중력 등을 굉장한 노력이 든다. 법리 해석도 고려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어 어려운 보도에 속한다”며 “그럼에도 검사와 이에 대응하는 피고인 모두의 입장을 대등하게 들을 수 있는 공판중심주의 보도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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