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동화정책에 반하며 조선인과 교류하고 한중일 노동자·서민 연대에 동참했던 일본의 양심작가 에세이가 발견됐다. 

일문학을 전공한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일본의 양심작가 마쓰다 도키코가 1938년 ‘월간 러시아’ 9월호에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隨想)’이란 제목으로 낸 에세이를 입수해 국내에 공개했다. 

김 교수는 작가 마쓰다를 연구하다 마쓰다가 쓴 ‘하나오카 회고문’ 등에서 김일수라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한중일 노동자연대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1944~45년 하나오카 광산에 끌려간 중국인 포로 1000여명 중 절반이 아사·사형 등으로 목숨을 잃은 ‘하나오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50년대 들어 김일수 하나오카 자유노동조합 위원장이 나섰고 마쓰다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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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최근 번역 출간한 사진집 '마쓰다 도키코, 사진으로 보는 사랑과 투쟁의 99년'. 사진 속 인물은 마쓰다 도키코. 사진=김정훈 교수
▲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최근 번역 출간한 사진집 '마쓰다 도키코, 사진으로 보는 사랑과 투쟁의 99년'. 사진 속 인물은 마쓰다 도키코. 사진=김정훈 교수

이번에 발견한 마쓰다의 에세이는 그간 알려진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연대모습 뿐 아니라 해방 전 조선인과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다. 김 교수는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본작가 마쓰다가 왜 조선인과 깊게 교류했는지 궁금했는데 그 의문을 해소할 단서를 이번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해당 에세이는 1926년 마쓰다(당시 21세)가 도쿄 N영어학원에서 조선 여성 박영생과 교류한 내용을 1938년에 쓴 것이다. 김 교수는 1925년 일본이 치안유지법을 공포하며 조선인의 고유성을 침해하는 분위기를 설명하며 “마쓰다가 일제의 이런 정책에 반해 조선인 존재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 조선에 대한 관심과 깊은 인상을 공개한 고백한 마쓰다 도키코 에세이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 월간 러시아 1938년 9월호. 사진=김정훈 교수
▲ 조선에 대한 관심과 깊은 인상을 공개한 고백한 마쓰다 도키코 에세이 '외국인과 관련한 수상' 월간 러시아 1938년 9월호. 사진=김정훈 교수

김 교수는 “마쓰다가 박영생을 ‘아름다운 조선의 동성’이라고 회고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마쓰다는 에세이에서 “그녀(박영생)의 소매가 긴 흰 조선복장을 본 순간 나는 충동적으로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 일본어가 불충분했다. 박영생의 웃는 얼굴이 안심됐다” “당시 나는 이국의 사람끼리 서로 사귀는 듯한 마음으로 영생에게 다가갔다” 등 조선인을 호의적으로 표현했다. 

에세이에 따르면 마쓰다가 먼저 박영생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영생과 떨어졌지만 마쓰다는 박영생을 그리워했다. 마쓰다는 박영생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조선인들 삶의 문제, 조선의 역사와 문화 등 관련 얘기를 나눴다.  

마쓰다는 또 “난 조선적인 특수함의 좋은 점은 어디까지나 지켜야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조선사람들 속엔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독특한 이국적인 것이 많이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썼다. 김 교수는 “식민지 시절인데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며 “마쓰다는 춘향전도 보는 등 조선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에세이 중에는 마쓰다가 “난 소학교때 오랫동안 조선에 산 숙모가 할머니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후략)”란 표현이 나온다. 마쓰다는 ‘불’, ‘양초’ 등 조선말도 알고 있었다. 마쓰다는 에세이에서 조선 관련 내용 뿐 아니라 “나는 도무지 외국인이 좋다”는 표현도 썼다. 김 교수는 “21세에 글로벌한 시각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조선에 오래 산 숙모의 영향이 훗날 박영생과 교류, 마쓰다의 개방적 세계관을 토대로 김일수와 한중일 연대가 가능했던 ‘원점’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 1953년 마쓰다 도키코와 김일수가 중국 유골 송환 때 중국시민의 환영 장면. 마쓰다 도키코는 부인단체 대표, 김일수는 하나오카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사진=김정훈 교수
▲ 1953년 마쓰다 도키코와 김일수가 중국 유골 송환 때 중국시민의 환영 장면. 마쓰다 도키코는 부인단체 대표, 김일수는 하나오카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사진=김정훈 교수

한편 김 교수는 최근 마쓰다의 평화사상을 계승한 단체 ‘마쓰다 도키코회’가 만든 사진집 ‘마쓰다 도키코, 사진으로 보는 사랑과 투쟁의 99년’을 번역해 출간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마쓰다 사후 15주년 기념 강연회에 초대받았는데 이를 계기로 마쓰다 에세이를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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