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여러 곳에서 잡음을 내고 있다. 공약의 취지는 비정규직이 시달리는 저임금과 고용불안 해소다. 비정규직들이 희망을 품었지만 기존 용역회사를 자회사로 바꾸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대화 주체로 동등하게 참여할 수 없고, 탄압까지 받고 있다.

공기업에서 일하지만 공기업이 고용하지 않는 이런 일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사장 김기만, KOBACO, 코바코)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코바코는 KBS 등 공영방송의 광고판매를 대행해 수익을 얻는 공기업이다. 한국방송회관, 프레스센터, 한국광고문화회관 등 방송·광고 기반시설도 관리한다. 여기서 청소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코바코가 아닌 용역회사 소속이다.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로고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로고

김종훈 민중당 의원에 따르면 코바코는 지난 7월말 노동자 대표단을 설립해 8월부터 노사전(노동자·사용자·전문가)협의회를 만들어 정규직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처럼 했지만 이미 자회사 설립안을 검토해왔다. 코바코가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사례를 참조하는 유사기관’으로 한국마사회, 한국도로공사 등을 거론했다.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모델로 대법원 등 수차례 판결의 취지조차 지키지 않는 한국도로공사를 예로 들었다. 자료=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모델로 대법원 등 수차례 판결의 취지조차 지키지 않는 한국도로공사를 예로 들었다. 자료=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도로공사는 대법원 등이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도로공사 직원이라고 인정했는데도 판결 취지를 무시했다. 자회사를 만들어 이곳 소속 노동자에게 톨게이트 수납업무를 줬고, 도로공사에 직접고용한 노동자들에겐 다른 업무를 부여했다. 법원 판결대로 직접고용을 주장한 노동자들 상당수는 계약만료로 쫓겨났다. 노동자들은 지난 9월 본사 점거농성을 시작으로 최근 오체투지 행진을 하는 등 거리로 내몰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한국방송회관분회와 프레스센터분회 등은 노사전협의회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노동자대표단 6명 중 1명은 코바코 정규직 노조 대표, 나머지 5명은 방송회관 2명, 광고회관 2명, 연수원 1명으로 구성했는데 5명 중 4명이 용역업체 사측·관리직이었다. 현장노동자는 1명으로 그마저도 팀장급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비정규직 당사자 요구는 잘 반영되지 않았다. 박정옥 한국방송회관 분회장은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년 전에 노조를 만들자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일은 줄었다”며 “그 외에 대우가 좋아진 건 없다. 인정받는 노동시간도 줄었지만 우린 여전히 출근시간 전에 일찍 나와 일한다”고 했다. 이어 “청소노동자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했는데 자회사로 전환하면 65세로 한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다수 청소노동자 정년이 코앞인 셈이다.

박 분회장은 “노사전협의회에 노조도 참여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취소하더니 (협의내용을 노조에게 알리는) 일방적 설명회로 바꿨다”고 말했다. 코바코에서 노조가 받은 문자를 보면 지난 10월31일 회의부터 노동자 대표 2명이 노사전회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바코는 하루 전인 같은달 30일 노사전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고 대신 설명회로 대체했다.

▲ 코바코 광고회관방송회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코바코 광고회관방송회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날 박 분회장과 현장소장 대화 녹취를 보면 현장소장은 노조 활동을 “(사측을) 자극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현장소장은 “고용승계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냐. 문재인 대통령이 되도록 고용승계해라 이런 거지. 코바코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하는거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할말이 없는거야. 싸워도 알고 싸우라는 얘기야. 왜 미운털 박혀서 자극만 시키냐고. 지는 게임을 갖다가. 노동부에 나온 정규직화 사례보면 유독 공공기관이 공개채용이 많아”라고 했다. 도로공사처럼 문재인 정부가 자회사 방식을 허용하면서 공기업들은 정부 핑계를 대고 하청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박 분회장이 “노조활동을 했다고 밉보여 내쳐지는 게 걱정”이라고 하자 현장소장은 “그럴 일은 없다”며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지”라고 말했다. 박 분회장은 그간 노조를 만들고 해고 위협을 받아왔기에 노조활동을 멈출 수 없다. 

노조 요구는 고용승계와 정년보장이다. 노조는 “1년에 1장 근로계약서를 끊임없이 써온 용역노동자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며 위협하고 있다”며 “코바코는 고용승계에 문제없다지만 추상적인 말 뿐이기에 노동자들은 하루도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시설관리·보안 직종 정년 65세, 미화 직종 정년 70세가 요구조건이다.

▲ 비정규직 정규직화 관련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미디어오늘에 보낸 입장문.
▲ 비정규직 정규직화 관련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미디어오늘에 보낸 입장 전문.

이에 코바코 관계자는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동자 대표 구성을 코바코가 관여할 순 없는 일로 (관여하면) 월권”이라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노사전협의회에서 성실하게 진행하고 정부 가이드라인을 합법으로 추진하는데 노조가 기자회견을 했다”며 “65세, 70세 정년보장은 약속한 적 없다”고 했다. 

코바코 관계자는 “저희는 타 기관에 비해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미디어 관련 기업이라 침소봉대된 면이 있지 않나 싶다”며 미디어오늘에 입장문을 보냈다. 코바코는 해당 입장문에서 “공사의 발표취소와 입장변경은 사실무근이며 65세, 70세 정년보장 방안도 협의 중인 사안으로 약속한 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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