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기자들이 현장 취재하고 직접 리포팅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10년차 곽승규 MBC 기자가 지난 6일 오후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꺼낸 말이다. 이른바 ‘시니어 리포트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현재 뜨거운 감자인 ‘출입처 혁파’ 같은 큰 개혁에 앞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시니어 리포트제부터 해보자는 제언이다. 이날 편집회의는 MBC 뉴스 콘텐츠 ‘로드맨팀’ 기자들이 참석했다. 

신문·방송 뉴스룸이 공통적으로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데스크 이상의 모든 기자가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일침이 나왔다는 것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MBC는 지난 3월 뉴스데스크 시작 시간을 오후 8시에서 30분 앞당겨 85분 편성으로 개편했다. 지상파 3사와 JTBC 가운데 가장 빠른 메인뉴스다. 인력과 자원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개편한 와이드 뉴스로 MBC 기자들 노동 강도는 높아졌다.

▲ MBC 뉴스데스크.
▲ MBC 뉴스데스크.

곽 기자는 이날 회의에서 ‘시니어’ 정의에 대해 “리포팅을 하지 않는 모든 기자, 즉 현재 데스크 이상의 모든 기자”라며 “보직을 갖지 않아도 꾸준히 리포팅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롤모델’이 필요하다.(중략) 후배 국장이 취임해도 고참 선배들이 보도국을 떠날 필요 또한 전혀 없다. 누가 국장이든, 누가 팀장이든, 기자는 기사를 쓰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 기자는 조직 구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렸다. 그는 “지금은 모든 보상 체계가 보직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한정된 보직 자리를 차지하고자 모두 애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뒤 “보직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과감하게 줄이고 계속 리포팅하는 기자에게 그에 적합한 보상을 해줄 방법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곽 기자는 “후배들에게 총 쏘고 일일이 지시할 시간에 데스크가 직접 리포팅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후 “(데스크가 일방 지시하는) ‘하명기사’는 데스크 기사이지 이름만 빌려준 후배의 기사가 아니다.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있다면 팀장이나 데스크가 직접 하면 된다. 지금 업무량보다 다소 늘어날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변하려 하지 않으면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비판했다. 현장 취재 강화 일환으로 에디터-팀제로 개편했지만 도리어 더 많은 이들이 보도국에 앉아 데스킹을 보는 옥상옥 구조가 공고화했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고참 선배들이 보도 리포팅을 불편해 하는 이유로 ‘후배 보직자에게 어떻게 내 기사 데스킹을 보게 하지’라는 식의 체면 문제 등을 꼽고 “잘못된 조직 문화가 오랜 시간 고착화하면서 생긴 결과다. 이를 깨기 위해 결국 개인 각성과 조직 문화 개선뿐 아니라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기자는 “시니어가 리포트를 하면 후배들의 능동적 근무 의욕을 꺾는 하명기사도 줄어들 것”이라며 “만성적 인력난을 호소하는 보도국에 숨통이 트일 것이고 선후배가 수직적 위계 관계가 아닌 기자대 기자로서 경쟁하게 되어 양질의 기사가 더 많이 생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곽 기자는 발언 말미 청와대 발 MBC 기사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검찰 발 기사에 문제의식이 타사보다 강했고 시청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졌다”면서도 “또 다른 한 축인 청와대 기사에 대한 우리 내부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청와대 기사는 청와대 발표로만 쭉 이뤄진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판하더라도 야당 입을 빌려 정치공방 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출입기자가 청와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는 식의 기사를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출입처를 당장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출입처 발표에 의존하는 것을 극복하자는 것이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 MBC 상암동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MBC 상암동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박성제 MBC 보도국장은 ‘시니어 리포트제’가 “일리 있는 지적”이라며 “연말에 젊은 후배들 의견과 견해는 어떤지 들어보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니어 리포트제 즉각 도입은 유보적이다. 박 국장은 “팀장이나 데스크 역시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시니어들 가운데 리포트를 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보직을 하면서 리포트까지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만큼 데스크 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실제 MBC 탐사기획팀의 경우 팀장이 없는 상태다. 로드맨팀도 팀장이 지금 없다. 젊은 기자끼리 기획·취재를 진행하는데 성과는 나쁘지 않다. 젊은 기자들이 사실상 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곽승규 기자 아이디어를 포함해 우리 뉴스 개혁 방안을 검토하는 자리를 만들고 연초까지 정리한 뒤 차기 경영진에게도 건의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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