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9일부터 10월14일까지 2개월간 ‘조국 사태’에서 다시 한번 불거진 피의사실공표죄로 인해 ‘법무부 훈령’이 제정되고 시행된 지 10일째. 피의사실공표죄와 법무부 훈령 등에 대해 개선점을 이야기하는 토론회에서 경찰과 기자의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국회입법조사처 제공
▲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국회입법조사처 제공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법무부 훈령)은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당시 발표된 보도자료에는 △형사사건의 구두 브리핑(소위 티타임) △검사 및 검찰수사관 언론 접촉 금지 등이 담겼다.

유환구 사회부 기자는 9일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세미나에서 “현행 법무부 훈령은 핵심을 비껴갔다”고 지적한 뒤 “티타임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검사 및 검찰수사관 접촉 금지 조항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상 대책이 없다”고 주장했다.

▲ 9일자 동아일보 8면
▲ 9일자 동아일보 8면

법무부 훈령 시행일인 1일 이후 언론 보도는 바뀌었을까. 지난 8일 SBS ‘8뉴스’는 “[단독] 靑(청) 첩보 전달 뒤 행정관이 울산 경찰관에 전화”라는 제목으로 “검찰은 청와대가 첩보를 하달한 뒤 인사에 불만이 있을 수 있는 전임 수사팀이 첩보 하달 여부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9일 “[단독]檢(검), 송병기 피의자로 조사…차명폰-외장하드 분석뒤 재조사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합니다.’ 6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처음 출석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에게는 검사는 이렇게 말한 뒤 송 부시장을 직권남용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아침신문 8면도 검찰발 보도로 채웠다. 동아일보는 “檢(검) ‘靑(청) 첩보보고서, 단순정리 아닌 여러 루트 거친 수사첩보’ 판단”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에 6,7일 출석한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나 경찰 등으로부터 KTX 울산역 인근 김 전 시장 소유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요청받은 적이 있는지 등을 추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8면을 채운 다른 기사 2개도 검찰발이다. 법무부 훈령 제정 전과 다를 바 없는 취재방식의 보도다.

법무부 훈령에 따르면 SBS와 동아일보 보도는 사건 관계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이나 증언 거부 사실 등은 모두 공개가 금지된 정보들이다. 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검찰발로 이 같은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유환구 기자는 “수사 과정에 대한 대부분의 [단독] 보도들은 보도하지 않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기소가 될 경우 공소장이나 공판 과정에서 어차피 드러날 사실들이다. 알 권리가 잠시 유예되는 것일 뿐이다. 저를 포함해 언론사 모두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라 ‘타사보다 먼저 알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환구 기자는 “검찰 등 수사기관은 내부 감찰 등을 강화해 수사담당자에 의한 피의사실공표를 실질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 뒤 “정치권도 반성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진행된 이른바 적폐 수사 과정에서 여권 등은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제대로 지적한 적이 없다. 하지만 ‘조국 사태’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정부와 당 대표까지 나서 검찰의 수사 관행을 지적했다. ‘내로남불’ 태도를 버리고 일관성 있는 잣대로 개선 방향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승영 경찰청 수사국 수사기획과장 총경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윤승영 총경은 “경찰도 스스로 검거실적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수사 상황을 언론에 흘린 적이 있었을 것이다. 경찰은 감추고 싶었지만, 언론의 적극적인 취재에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응하는 부분도 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때 여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윤승영 총경은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모든 수사기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위해서 법령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총경은 “한국 수사기관은 검찰과 경찰, 해경, 특사경 등이 있다. 모든 수사기관이 똑같은 조건으로 함께 적용받을 수 있도록 단순한 훈령이 아닌 특별법과 같은 상위법 아래에 법무부 훈령을 둬야 한다. 일관된 피의사실공표 문제 기준이 모든 수사기관에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국회입법조사처 제공
▲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피의사실공표 및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국회입법조사처 제공

이날 법무부를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한지혁 법무부 검찰국 형사기획과 검사는 “법무부는 새로 시행된 법무부 훈령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사건 관계인의 인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 균형을 이루게 할 것이다. 수사의 공정성이 담보되는 올바른 형사사건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했다.

한지혁 검사는 “미국의 경우 법 집행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일본도 사진기자의 검찰청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그리고 기존 수사 공보 준칙에 없었던 전문공보관 제도와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신설도 특징이다.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전문공보관을 도입해 자칫 과잉 공보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지혁 검사는 “미국은 기자의 검사 직접 접촉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특별히 수사검사를 접촉할 필요가 있는 경우 전문공보관을 통해 허락받아야 가능하다. 일본도 기자의 검사 취재와 검사실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함께 개최했다. 이날 사회는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으며 발제는 주승희 덕성여대 교수와 강동욱 동국대 교수가 맡았다. 토론자로는 조기영 전북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한지혁 법무부 검사, 윤승영 경찰청 총경, 김준현 법무법인 우리로 변호사, 유환구 한국일보 기자, 조서연 국회 입법조사관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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