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을 앞둔 가운데 선거 기간 확인하기 힘든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전략적 침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6일 언론중재위원회가 주최한 ‘허위조작정보와 선거보도’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전통 언론의 역할로 악의적 정보에 대한 ‘전략적 침묵’을 강조했다.

2017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마크롱 캠프에서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이 해킹돼 유출됐다. 당시 프랑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메일 내용을 비롯해 온갖 루머가 빠르게 확산됐다. 

▲ 방송사 카메라들. 선거 기간 전통 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진=금준경 기자.
▲ 방송사 카메라들. 선거 기간 전통 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진=이치열 기자.

프랑스 언론은 관련 사안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보도하더라도 유출 내용은 언급을 삼갔다. 선거 직전 관련 보도를 금지하는 프랑스 특유의 선거 제도가 영향을 미쳤지만 언론이 스스로 윤리적 고민을 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르몽드는 해당 정보의 양이 많아 단기간에 분석이 어렵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보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보도와 윤리 규칙을 존중해 조사한 후 기사를 게재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정 교수는 “사실에 기반한 정보라 해도 해를 끼치려는 의도로 생산된 악성 정보 관련 보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받아쓰는 ‘따옴표 저널리즘’ 문제가 심각해 ‘전략적 침묵’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지난 대선 때 국민의당은 투표를 나흘 앞두고 문재인 후보자 아들 취업 청탁 정황을 담은 동료 증언을 확보했다며 녹취 파일을 공개했으나 당원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다수 언론은 경쟁적으로 보도를 내보내고 후보자 간 공방을 중계했다.

▲ 2017년 6월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전 대선 후보 등 의원들과 비대위원들이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017년 7월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전 대선 후보 등 의원들과 비대위원들이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다만 현실적으로 언론이 ‘전략적 침묵’을 지키는 건 쉽지 않다. 김민정 교수는 특성 사안을 보도할 때와 보도하지 않을 때 모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며 “선거 기간 중 악성정보를 접하게 될 경우, 기사화하지 않는 것에는 큰 용기가 따른다”고 했다. 특히 그는 2012년 대선을 사흘 앞두고 댓글 여론조작이 없었다는 서울지방경찰청의 중간수사결과를 언급하며 공식 발표를 외면하기도 힘들고, 검증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지적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허위사실이나 악의적인 주장을 검증하고 반박하는 보도가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김민정 교수는 “허위를 바로잡는 행위 자체가 해당 오정보, 허위조작정보를 재생산해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는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며 “팩트체크의 활성화가 실효성에 비판을 받는 지점 중 하나”라고 했다. ‘검증’을 위해 악의적인 정보를 언급했으나 오히려 악의적인 정보가 널리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민정 교수는 “전통언론의 숙제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는 오정보, 허위조작정보 중 어떤 것을 반박보도하고 어떤 것에 전략적 침묵을 지킬지를 판단하는 일”이라며 “전통 언론은 쓸 가치가 있는 사실만을 선별해 보도하고 해당 사실에 대한 검증, 반박, 해석, 맥락제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때에만 존재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 ⓒGettyimagesbank
▲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 ⓒGettyimagesbank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은 토론문을 통해 전통언론의 과제로 △속보성보다 정확성 강화 △단순한 사실 제공이 아닌 심층적 분석과 전문성 강화 △형식적 객관성보다 투명성과 다양성을 통한 공정성의 실현 등을 제시했다.

김대영 KBS 선거방송기획단장은 토론문을 통해 속보 및 트래픽 경쟁 환경과 한국 언론 스스로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갖는 문제 등을 언급하며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신 그는 “뉴스 수용자가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구분하고, 좋은 언론과 좋은 기사를 향해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영미디어에는 허위정보를 걸러내고 불량한 보도가 구축(驅逐, 몰아내다)될 수 있는 양질의 보도를 해야 하는 공적 책무가 강하게 부여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공영방송과 공적 재원이 투입된 언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전통 언론의 노력 뿐 아니라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의 책무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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