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와 재계는 ‘데이터 3법’이라는 법안에 대해 정보인권단체들은 ‘개인정보법 개악’이라 주장한다. 가명(假名)처리한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논란이다. 지난해 11월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정부안들이 1년여 만에 입법 관문을 넘고 있지만, 정보주체인 국민 대상의 공청회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정·재계 아우성에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묻히는 형국이다. 미디어오늘은 개인정보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을 연속 인터뷰로 전한다. -편집자주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법 개정안, 일명 ‘데이터 3법’이 위헌이라 주장한다. 주요한 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업 이윤추구를 위해 빼앗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촛불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가 국민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법안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보다 개인정보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면서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다는 비판도 전했다. 3법 가운데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한 교수를 만났다.

이날 한 교수는 개인정보법 개정안들을 “개별기업 탐욕의 수단”이라 규정했다. 정·재계가 ‘데이터 3법’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원유(原油)’라 강조하지만, 결국 목표는 ‘타깃 마케팅’이라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 결과에 의하면 당신은 몇월며칠 어떤 암으로 죽을 수 있고, 확률이 50% 이상이니까 이걸 사라’고 하면 이건 선택지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강요다. 개인정보 빅데이터 분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 감시’를 보다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하고, 감시 결과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도 개인정보 활용이 가능하다. 이용자가 (개인정보) ‘제3자 제공’ 조항에 동의하면 그 대가로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할인쿠폰이라도 하나 받지 않나. 3법은 그것도 주기 아깝다는 것이다. 가명정보란 이름으로 모든 것들을 나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라 주장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에 집적된 데이터를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건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 인권에 해당하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며 “기업들이 탐내는 정보는 주로 신용정보, 의료(건강)정보, 통신정보 등이다. 개인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정보들이다. 당연히 정보주체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1월 27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1월 27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현재 추진 중인 3법 개정안이 유럽연합(EU) 개인정보보호법(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보다 훨씬 더 기업논리에 가깝다는 지적도 했다. 한 교수는 “GDPR이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은 ‘과학적 연구(scientific research)’인데, 학술적 의미가 강하다. EU에서 학술 목적으로 개인정보 데이터를 이용한 결과는 반드시 학술지에 공표하는 등 모두가 공유하는 지식이 된다. 이걸 우리나라에선 과학적 방법을 적용한 연구라는 개념으로 본다. 개별 기업이 R&D(연구·개발)하는 수준으로 활용하고 이윤을 독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정보주체가 갖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동의권을 박탈하면서 전체 이익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개별기업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버린다는 점에서 위헌적”이라 말했다.

가명정보에 대한 범주가 GDPR보다 넓고 추상적이라는 우려도 있다. GDPR은 가명정보를 ‘추가 정보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로서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정보로 간주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개인정보 데이터를 처리할 당시 뿐 아니라 향후 기술적인 발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3법 중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가명정보를 ‘원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라 명시했고,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추가정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특정 개인인 신용정보주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개인신용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가명조치 정의로 뒀다. 한 교수는 “오늘 거래한 개인정보로 오늘은 (정보주체) 식별이 불가능할 수 있지만, 향후 알고리즘 등을 추가하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궁극적인 우려는 가명처리한 데이터들이 결합돼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데이터가 나올 가능성이다. 한 교수는 “KT 등 통신사의 ‘5277’ 번호를 가진 데이터, 병원에서 ‘한상희’라는 사람이 치료 받은 데이터가 있다고 치자. 5277이란 번호를 가려도 정보 주체가 가진 통화 속성 등이 남기 때문에 결합된 데이터에 적용하면 내가 언제 무슨 병원에서 치료 받았는지 끄집어 낼 수 있다. 추적 가능한 정보가 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주민등록번호나 이름을 지웠다고 가명정보라 칭하면서 마음대로 활용해도 된다는 건 이상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식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주장에 대해선 “이론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게 할 수 있지만 과연 기업이 그럴까. 결합하지 않은 데이터는 부가가치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 제도와 이 번호에 기반한 전화번호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개인정보 데이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보안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사회의 여러 세력 간의 관계 속에서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 경제질서에서 개인정보 주체는 약자이고, 기업이 이윤을 위해 개인정보를 수탈해온 경향이 있다”며 “적어도 ‘촛불정부’라 자칭했던 현 정부에서 추진할 사안은 아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청와대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이미 지난 박근혜 정부 때부터 개인정보 규제완화 방침을 세워 왔기 때문에 제대로 견제해야 하는 게 지금 청와대 몫이었다. 이 정부 자체가 개인정보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데 너무 집착하면서 개인정보를 주변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1월 27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1월 27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인터뷰를 이어가던 중 최근 국회에서 한 교수와 시민단체들이 가졌던 기자회견 이야기가 나왔다. 수십 명의 국회 출입 기자들 앞에서 “제발 이 법을 좀 막아달라”고 호소했던 날이다. 한 교수는 “주요 매체들은 3법을 크게 다루지 않고, 경제매체들은 기업계 요구를 들어서 법안을 홍보성으로 이야기 한다. 지금 언론보도만으로는 이 법이 어떤 문제가 있고 국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알 수 없다”며 “이건 모든 국민의 문제다. 당연히 언론으로서는 이 법의 장단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생각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한동안 진짜 섭섭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 해도 보도도 많이 안 되고, 하도 답답해서 ‘기자님들 제발 이 법 좀 막아 달라’고 말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3법이 최종 관문을 넘어서기 전에, 이제라도 국민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론화를 거쳐 산업계 요구와 개인정보 보호를 절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과 4월 ‘4차산업혁명위원회 규제혁신 해커톤’ 회의 결과와 그해 5월 국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 특별권고 등을 앞세워 개정안을 내놨지만, 이를 지켜본 시민단체들은 이해관계 당사자를 위주로 모아놓고형 형식적 절차만 거쳤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 교수는 “국회 법안 처리 과정에서 전혜숙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왜 공청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느냐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전 위원장이 공청회는 못해도 토론회는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안 됐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한 교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부터 개정하고, 정부가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위로 하여금 관련 법안을 만들도록 해야 지금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촉구했다. 그는 가령 “가명정보 활용 목적을 ‘학술연구’로만 한정한다고 해도 뚜렷한 보호책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 자체가 대부분 기업 용역단체처럼 된 상태이지 않느냐”며 “적어도 내가 내 개인정보를 희생하는 대가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어책이라도 만들어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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