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아직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을 대처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사건이 알려진 경위나 이후 보도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기도 한 어린이집에서 미취학 아동 간 성폭력 사건 피해자 부모가 글을 올렸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자신의 아이에게 고통을 준 아이와 그 부모, 어린이집 등 누구도 처벌할 수 없고 최소한의 조사나 책임을 추궁해 줄 중재기관이 없어 억울하다는 내용이다. 피해자 부모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도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일 수 있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언론도 미숙하긴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스포츠 중계하듯 실시간 상황을 전하기 바빴다. 박 장관 말처럼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측면이 분명 있다. 성인 성폭력 사건보다 더 고민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인 만큼 당연히 성폭력 보도 기준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선정적 속보 경쟁으로 기준이 무너졌고 일부 언론은 ‘피해자 부모가 올린 청와대 청원글을 삭제했다’는 오보까지 냈다. 청와대 청원페이지에 들어가 보는 기본 확인조차 없이 기사를 써내기 바빴다는 증거다. 

언론이 주목할 부분은 이번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다. 피해 아버지가 올린 청원 글에도 나오듯 피해 부모는 어디에 이 사실을 말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형식적이나마 교육기관에선 폭력이 발생하면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꾸리고 교사와 학교,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공론화했다. 

지난 3일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가 부랴부랴 지침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 성폭력도 폭력의 일종인 점에서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와 학대를 다룰 때 성폭력 문제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갓 돌이 지난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다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타인과 자신의 경계를 명확하게 알려줘 폭력은 물론 친구 몸을 만지거나 자신의 신체 일부를 보여주면 안 된다는 교육을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은 자신의 행위가 어른들에게 알리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어린이집 교사의 눈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는 뜻이고 바꿔 말하면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어린이집 인력 부족을 손봐야 한다. 사안을 확장하면 교육부 소관인 유치원과 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의 소위 ‘유보통합’도 아이들 인권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주목 받으며 여러 매체는 선정적으로 사건을 전달하기 바빴다. 아동 간 성폭력 사건에서 누구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물을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여러 매체가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의 부모 신상정보를 특정해 공개했다. 부모가 소속된 단체이름까지 밝혔다. 

▲ 언론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의 아버지가 어디 소속인지 단체명을 밝혀 특정할 수 있게 했다.
▲ 언론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의 아버지가 어디 소속인지 단체명을 밝혀 특정할 수 있게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모의 신상정보가 일부 알려진 것과 언론이 이를 특정해 보도하는 건 다르다. 가해 아동이 특정되면서 실제 이 아이를 살해하겠다는 위협 글도 올라왔다. 한쪽이 특정되면 다른 쪽도 특정될 수 있다. 가해자를 특정하는 행위가 ‘피해자 보호 우선’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폭력 사건보도에선 선정적·자극적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는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하고 가해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 역시 자제해야 한다. 여러 매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 부모의 발언을 제목에 뽑았다. 피해자 부모 주장이 과장됐다거나 CCTV에 성폭력 장면이 없다는 식의 내용이다. 가해방법을 자세히 묘사한 기사는 셀 수 없이 쏟아졌다. 미투 국면을 겪었지만 여전히 최소한의 성폭력 보도 원칙을 내버린 기사들이다. 

▲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의 부모 입장을 기사 제목으로 뽑은 매체들도 있었다.
▲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의 부모 입장을 기사 제목으로 뽑은 매체들도 있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흉내 낸 기사들도 있다. 피해자 주장대로 보도 방향을 잡거나 피해자 주장을 해결방식인양 보도하는 건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다. 

이번 사건의 이름을 붙이는 과정부터 언론은 오류를 범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국민청원에 ‘성폭행’이란 단어를 쓰자 일제히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으로 명명해 포털을 도배했다. 이 사건에서 성폭행은 현재까진 피해자 쪽 주장이지 그렇게 볼 증거가 없다. 적어도 성폭행과 성추행을 구분하고,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성폭력’으로 써야 한다. 포털 사이트 4일 오후 현재 네이버 검색창에 ‘성남’만 써도 ‘성폭행’이 함께 나오고,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의 부모 신상정보도 함께 뜬다. 

▲ 많은 매체가 이번 사건을 '성폭행'으로 규정했다.
▲ 많은 매체가 이번 사건을 '성폭행'으로 규정했다.

피해자 부모는 국민청원 글에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당연히 처벌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언론도 처벌에 비중을 둬야 하는가. 

이번 사건을 다루며 언론이 또 강조한 부분은 ‘가해 아동의 처벌 여부’였다. 형법상 처벌이 안 된다는 문제를 떠나 미취학 아동을 현실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있을까. 아이에게 벌금을 물리면 될까. 복지부 장관도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데 그 부모를 감옥에 넣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동 성범죄 보도를 다룬 연구에선 언론이 성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수사기관의 유능이나 무능을 중심에 두는 현상을 우려한다. 법을 집행하는 검·경이 아동 성폭력을 해결하는 사회적 권위와 정통성을 가졌다는 지나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즉 언론에선 아동 성범죄가 벌어졌을 때 유능한 수사기관을 통해 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아동 간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을 경찰이 내사에 돌입했다는 사실 내지 조사는 하지만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과하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외국 사례를 찾아본 좋은 시도도 있었지만 해당 언론은 외국에서 아동 간 성폭력을 어떻게 예방하고 사후 대처하는지 등이 아닌 외국에선 어떻게 처벌하는지를 다뤘다. 

미디어가 초점을 둘 내용은 원인을 규명하고 사회적 파급효과를 예측하는 일이다. 이번 사건에선 책임주체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성폭력 사건보도 공감기준을 보면 언론은 성폭력 예방 및 구조적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론에서 처벌에 중점을 두면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 가능성이 크고 가해자를 극단·예외 사례로 치부하게 된다. 자연스레 이번 사태의 원인이나 문화적 토대, 육아 시스템의 한계, 성문화·성교육 변화 등은 공론장에서 밀려난다. 

▲ 지난해 1월 SBS 뉴스화면 갈무리. 아동에게도 성교육과 함께 상대방이 싫은 행동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 지난해 1월 SBS 뉴스화면 갈무리. 아동에게도 성교육과 함께 상대방이 싫은 행동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의미있는 보도들도 있다.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가 지난 3일 쓴 기사 ‘전문가 “성남 어린이집 사건, ‘성’보다 ‘폭력’에 주목해야”’인데 의사 등 전문가 의견을 들어 5세 아이가 성적 의도를 가졌다기 보단 괴롭힘이나 폭력 관점에서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공감능력, 행동조절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폭력성이 지속되지 않게 도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등장한다. 

과거 아동 성교육을 강조한 보도나 리포트는 꽤 있었다. 한 예로 지난해 1월20일 SBS는 “유아의 ‘성적인 행위’에 난감한 부모들”, “유아에게도 올바른 성교육 필요” 등 리포트에서 아이들이 친구에게 성적 행동을 한 사례를 전하며 성교육이 필요하고 동시에 다른 아이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다면 잘못을 알려주고 사과하게 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적절한 비상경보기였지만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이제라도 언론이 근본 해결을 고민할 공론장이어야 한다. 

※ 참고문헌 
양정혜, 뉴스 미디어가 재현하는 범죄현실 :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의 프레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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