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지라시들은 지난달부터 다음 총리로 손꼽히는 ‘김진표 수혜주’로 도매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경복고 1966년 졸업생과 서울대 법학과 66학번 동기가 운영하는 S, H기업이 김진표 인맥주로 급등하고 있다고도 했다. 

첫 정권 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네 정권이 집권 후반기에 기용한 국무총리를 보면 진보와 보수가 확연히 나뉜다. 진보 정권은 집권 후반기에 경제관료를 총리로 삼았고 보수 정권은 법조인을 총리로 내세웠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총리는 판사 출신의 김석수 총리였지만 이미 대선 열풍이 불던 2002년 9월에 지명돼 별 역할을 못했다. 직전에 장상, 장대환 두 총리 후보가 서리 꼬리표도 떼지 못하고 낙마하는 사이 전윤철 경제부총리가 직무대행으로 사실상 김대중 정부 후반기 총리였다. 참여정부 마지막 1년여 기간도 경제관료 출신 한덕수 총리가 책임졌다. 그가 한미 FTA를 주도했다. 

반면 보수 정권은 후반기 총리로 한결같이 법률가를 선호했다. 이명박 정부가 판사 출신 김황식을, 박근혜 정부가 검사 출신 황교안을 후반기 총리로 활용했다. 

보수는 집권 후반기엔 법률가 출신을 기용해 뒷정리에 들어가는데, 진보는 끝까지 뭐라도 해보려고 아등바등한다. 

문재인 정부가 후반기를 맡길 총리를 김진표 의원으로 낙점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4선의 김진표 의원은 정치인이라기보다 경제관료다. 김 의원은 강만수 윤증현 같은 경제관료들과 서울대 인맥으로 묶여 있다. 참여정부 때 경제와 교육 수장을 지냈지만 김 의원은 늘 진보와 거리가 멀었다. 법인세 인하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했음은 물론이고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종교인 과세에 반대해온 건 잘 알려졌다. 모두 자유한국당의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73년 행정고시 합격 이후 줄곧 경제관료로 일했던 김 의원을 총리로 기용한다고 경제가 살아날 것 같지도 않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핵심인 소득주도성장과 김 의원은 누가 봐도 이종교배다. 

중앙일보는 3일자 1면에 ‘총리 김진표 굳혔다’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썼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문 대통령이 김 의원을 낙점한 것은 후반기 국정운영의 역점을 ‘경제 살리기’에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정경제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사회부총리를 역임한 김 의원은 민주당 내 대표적 ‘경제통’ 인사로 꼽힌다”고 했다. 중앙일보가 명명한 ‘경제통’은 ‘대기업이 좋아할’ 정도로 읽힌다. 

지난달 30일 토요일 오후 진보진영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민중대회를 열었다. 바로 옆 서울광장에선 태극기 세력이 맞불 집회를 열었다. 태극기 집회에 모인 인파는 서울광장을 넘어 동아면세점 앞까지 빼곡히 들어찼다. 2시간가량 ‘문재인 구속, 조국 구속’을 외쳤던 이들은 너도나도 휴대폰을 켜 다음 행선지를 안내받았다. 내 옆의 한 60대 여성은 안양의 한 교회 단체카톡방에서 ‘여의도역 4번 출구’로 오라는 문자를 받고 5호선 광화문역 아래로 사라졌다. 현 정부 초기 쪼그라들었던 이들을 불과 2년 만에 이렇게 급성장시킨 건 누굴까. 

차라리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처럼 행정관료 출신이 안정감은 더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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